[Opinion] 봄을 향해 가는 '겨울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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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랑 계절이 달라요
이 길에서 시작하는 이야기에요
저 길에 눈이 내리고 한 여자가 걸어옵니다
무표정하게 내리는 눈 사이를 걸어오다가
뒤를 돌아봐요
어두워진 저 산책로 너머로
하지만 안심하세요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입니다
주인공은 행복해질 거에요
-영화 ‘최악의 하루’ 중에서 -
새해다운 기분이 미처 깃들지 못한 2019년의 어색한 초입에서 다이어리를 새롭게 마련했다. 고3 시절 쓰기 시작한 다이어리가 어쩌다 보니 벌써 6권이 되어간다. 한 해의 다이어리를 돌아보면서 정리하고 새 다이어리를 끄적거리는 것이 연례행사인데 올해는 이 일이 참 더디다. 꽃길을 걷길 바라며 ‘틀림없이 행복해진다’는 말을 품고 산 이 다이어리를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지 막막해서 숨어있는 중이다.
가끔 어떤 일도 하지 않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시기가 있는데 평소의 동면기가 아닌 암흑기를 요즘은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가끔씩 미로 속에 갇히는 시기가 되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언어를 구성하기가 힘들다. 내가 무얼 생각하는지 무얼 하고 싶은지 나도 나를 잘 모르게 된다.
언젠가는 정리를 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고 동시에 새로운 것들을 담아 내야 하는 시기. 대학을 넘어 사회로 나서는 이들의 감정은 비슷하지 않을까. 새로운 도전의 설렘과 불안함, 과거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이 혼재하는 시기다. 나는 이 시기를 ‘봄을 향해 가는 겨울 나그네’라 부르고 싶다. 봄의 희망과 온기를 노래하기 전,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귤을 까먹으며 겨울을 난다. 반드시 행복해질 해피엔딩을 기다리며, 움틀 준비를 시작한다.
나는 이 곳을 서성이네
이 깊은 밤에도
어둠 속에서도
두 눈을 꼭 감고
가지는 산들 흔들려
내게 속삭이는 것 같네
'이리 내 곁으로 오라
여기서 안식을 찾으라!'
찬 바람 세차게 불어와
얼굴을 매섭게 스치고
모자가 바람에 날려도
나는 돌아보지 않았네
난 오랫동안
그곳을 떠나 있었건만
내 귀에는 아직도 속삭임이 들리네
이곳에서 안식을 찾으라
- 슈베르트 <겨울나그네> 중 ‘보리수’ 일부 -
모든 나는 왜 이유를 모를까.
어디서나 기웃둥, 기웃둥 하며
나는 획득을 딛고
발은 소멸을 딛고 있었다.
끝없는 축복.
떨어진 것은 恨대로 다 떨어지고
그 밑에서 무게를 받는 일월이여.
모두 떨어져 덤숙히 쌓인 위에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발자국이 하나씩 남는다.
손은 필요을 으며 떨어져나가고.
손은 필요를 저으며 떨어져나가고.
서서 작별을 지지하는 발
발가락 사이 이 차가운 겨울을
부수며
무엇인가 아낌없이 주어버리며
오늘도 딛고 있다.
- 오규원 <겨울 나그네> 중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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