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찬란하리만큼 순수한, 장 그르니에의 <지중해의 영감> [도서]

풍경이 주는 황홀에 대한 그의 찬미는 또 다른 풍경으로 마음에서 번져나간다.
글 입력 2018.12.24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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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니스의 해변



<지중해의 영감>을 만나보고 싶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저자 장 그르니에가 알베르 카뮈의 스승이라는 사실이었다. 대문호의 스승, 거장을 만든 거장. 일상생활에 떠밀리면 사고 능력도 퇴화되어 감정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려운 시기가 나타나곤 하는데, 나는 이 시기의 정신상태를 ‘마음 난독증’이라고 부르곤 한다. 이 증세의 극약처방은 바로 내 능력밖의 글을 읽는 것. 조금은 어려운 텍스트를 읽으면 병목에 몰려있던 수많은 잡념들이 ‘뻥’하고 뚫리는 느낌이 있다. 쉴 새 없이 달려온 몇 개월의 레이스가 종료되고 지쳐버린 마음엔 <지중해의 영감>에 펼쳐진 언어들이 제 격이었다. 역자는 이 책의 번역에 있어서 문학과 철학을 포함한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과 감수성, 그리고 행간을 읽어내는 시적 자질이 필요하다고 한다. 사실 읽으며 난해하거나 내 지식을 뛰어넘는 이야기들을 마주할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그르니에의 언어가 본질적으로 따뜻하다는 것. 지중해의 싱그러움과 닮아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렇게나 던져진 하얀 동전들의 무더기, 저것은 오랑. 자줏빛 잉크의 반점, 저것은 지중해. 은거울 위에 뿌려진 금가루, 저것은 햇빛을 통해 보이는 벌판의 소금. 나는 여전히 계속해서 올라갔고 풍경은 과장되다 싶을 정도로 점점 더 거대해져 갔다. 베토벤의 저 교향곡 주제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악장은 파성추로 때리듯 쾅쾅 울리며 전개되고 우리의 무관심, 우리의 존경, 우리의 찬양, 우리의 열광을 차례로 제압하면서 우리에게도 동일한 운동을 강요한다. 그리하여 청중인 우리를 배우로 변모시킨다. 이는 마치 우리 앞에 점점 더 넓게 열리는 공간, 더 많은 빛, 여전히 더 많은 빛으로 가득 채워지는 공간 같은 것이다.


우리는 도취하여 걷는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체를 확신하는 취기, 목표를 향해 곧장 나아가 마침내 대자연과 정신의 포옹 같은 것에 이르는 그런 도취다. 걸음을 멈추자. 한 발만 더 나아가면 모든 것이 다 부서져버릴 것 같다. 우리는 산타 크루즈에 이르기 직전에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 세계 안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들어차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정신이 돌연 멈춰버리기 때문이다. 정신은 무엇을 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정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측정해보는 것뿐이다. 너무도 광대한 풍경은 우리를 가득 채우기는커녕 오히려 비워낸다.


그러나 산타 크루즈에서는 그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다. 이런 풍경 앞에서 우리는 다만 두 눈을 감고 풍경을 자기 안에 내장하여 거기서 자양을 얻고 싶은 유혹을 느낄 뿐이다. 이리하여 풍경은 나중에 우리가 그 풍경 없이도 지낼 수 있게 허락해주리라. 그 풍경이 곧 우리 자신이 될 테니까.




사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하늘과 땅과 물이 합쳐져 그 어떤 혼합물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우리들이 몸담아 사는 풍토를 형성한다. 거기에 가까이 다가가면 발걸음이 좀 더 가벼워지고 마음은 활짝 피어난다. 침묵하던 대자연이 돌연 노래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사물들을 알아본다. 흔히 말하는 연인들의 벼락 같은 사랑이 그렇듯 어떤 풍경 앞에 서면 가슴이 방망이질치고 달코한 불안, 오래 지속되는 관능을 느낀다. 강변에 널린 돌들, 찰랑거리는 물소리, 갈아엎은 흙의 따뜻함, 석양 무렵의 구름에 대해 어떤 우정이 솟아난다. 나에게 그런 풍경들은 바로 지중해의 풍경들이었다.



그르니에는 그가 마주한 광경들을 마음속에서 채색해 나간다. 전체적인 그림을 러프하게 스케치하기도 하고, 모래 알알이 점을 찍듯 세밀하게 묘사하기도 한다. 풍경이 주는 황홀에 대한 그의 찬미는 또 다른 풍경으로 마음에서 번져나간다. 몇 개월 전, 지중해를 꽤나 많이 마주쳤다고 생각했고 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르니에의 어깨 너머로 바라본 지중해는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빛깔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빛은 너무 아름다워서 나도 이 같은 느낌을 느낄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지중해에 대한 열망으로 꿈틀대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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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페즈의 염색공장



모르는 사이에 날빛이 푸른색 타일들의 색깔에서 노란색 타일들 색깔로 변해가도 그들에게는 하루의 시간이 그냥 그대로 멈추어 있다.


 

그르니에의 언어가 또 매력적인 이유는 이처럼 그가 접한 장면들에 인간군상의 이야기들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삶에 대한 이야기도, 종교에 대한 이야기도 알알이 박혀 있다. 낯설고 이국적인 풍경을 묘사함에 있어서 자칫 폭력으로 귀결될 수도 있는 이 주제들을 그르니에는 섬세한 손길로 다룬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볼멘소리를 한껏 장착하고 있는 나일지라도, “그래도 결국 선함이 이긴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긍정으로 종결되는 그르니에의 언어가 마음에 들었는지 모른다. 



나의 모든 행복은 내가 실에 꿰어 하나의 묵주를 만들지 못하는 낱알들에 불과하다. 나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지만 한순간만 지나면 내게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전부, 그러므로 전무.


  

그래서 이런 허무주의적인 구절을 봐도 동요가 일지 않는다. 우리가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을지 몰라도 존재라는 점에서, 그리고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가치있다고 그르니에는 앞서 이미 언급했다.  이처럼 만물을 귀히 여기는 그였기에 이토록 아름다운 언어로 사색을 행할 수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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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땅끝마을, 피스테라의 바닷가



모든 힘이 소진되고, 새해니 송년회니 하는 것들은 나와는 멀게 느껴지기만 하는 번아웃 상태로 연말을 맞이하려 할 때, 그의 글을 만나게 되어 참 반가웠다. 단순히 내가 느꼈던 햇빛 부서지던 지중해를 아름다운 언어로 느껴봐야지, 하는 마음에서 주저없이 들었던 책이었는데 그 이상의 것들을 엿본 느낌이었다. 지성인의, 그것도 찬란하리만큼 순수한 지성인의 생각 조각들을 꿰어 맞춰보는 일은 스스로를 가치있게 느끼게 하도록 하는 작업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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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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