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베리드>: 영화의 틀을 깨다 [영화]

글 입력 2018.12.2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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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를 자주 타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멈춰서 갇히면 어떡하지? 이 생각이 스치는 순간 엘리베이터는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편리한 수단에서 공포의 대상으로 변한다. 어느 곳이든 갇히는 것은 유쾌한 경험은 아니지만, 유독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것이 무섭게 다가오는 이유는 엘리베이터의 폐쇄된 좁은 공간 때문이다. ‘폐소공포증’이라는 병명이 따로 있을 만큼 인간은 폐쇄된 좁은 공간에 있을 때 불안, 심하면 극심한 공포를 느낀다.


영화 <베리드(Buried)>는 이런 폐쇄된 공간이 주는 공포를 잘 이용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에는 주인공을 죽이려는 연쇄살인마도, 갑자기 튀어나오는 귀신도 없지만, 폐쇄된 공간이 주는 심리적 불안감으로 공포를 느끼게 한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위와 같은 생각으로 잠시 오싹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더 쉽게 영화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과감한 영화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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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보다 공간의 제약에서 자유로운 영화는 공간을 이용해 다양한 것들을 표현한다. 시대적인 배경, 시간의 흐름, 때로는 인물의 감정까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공간에 더 공을 들이면, 아름다운 배경을 내세우는 영상미가 돋보이는 영화가 탄생한다. 이처럼 공간은 감독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단순한 배경에서부터 영화의 색을 결정하는 요소까지 될 수 있다. 그런데 <베리드>는 이 ‘공간’을 과감하게 한정한다.


<베리드>의 공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관’ 속이다. 카메라는 단 1초도 관 속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일어날 수도 아니, 앉을 수도 없는 좁고 어두운 공간. 이렇게 극단적으로 한정된 공간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이 극도로 한정된 공간은 다른 영화에서 발휘되는 다양한 기능은 상실하는 반면에, 공간의 폐쇄성과 그로 인한 공포는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그뿐만 아니다. 영화의 공간이 ‘관’으로 한정된 만큼, 등장하는 인물도 한 명이다. 주인공 폴 콘로이(라이언 레이놀즈)가 유일한 등장인물이다. 이쯤 되면 이런 의문이 든다. 도대체 그렇게 영화를 어떻게 만든다는 거지? 공간의 제약이 있다면 인물들이 갈등하며 사건을 유발하면 되지만 인물도 한 명이다. 주인공이 1인 2역을 하는 것이 아니고서야 95분이라는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지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영화는 다행히도 라이언 레이놀즈가 95분 동안 1인 2역을 하도록 하지는 않는다. 대신, 사건을 유발하는 장치를 영화 사이사이에 적절히 배치해 놓는다. 휴대폰, 뱀, 모래가 그 장치이다. 특히 휴대폰은 영화 진행의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다. (참고로 스마트폰이 아님을 밝힌다) 영화에서 휴대폰은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공간에서 유일하게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다. 폴은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데 휴대폰을 이용한다. 그 외에도 구조팀과 상황을 주고받는 것, 가족에게 연락하는 것, 심지어는 주인공을 묻은 테러리스트에게 협박을 받는 것도 모두 휴대폰으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휴대폰은 외부와 관 속을 연결하며 사건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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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중간에 조금 지루해질 때쯤 등장하는 것이 뱀이다. 뱀은 갑자기 관 속에 등장해서 주인공과 관객에게 새로운 긴장감을 유발한다. 지금까지 온 신경이 탈출에만 쏠려있던 폴에게 새롭게 제시되는 과제이기도 하다. 폴이 새롭게 맞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뱀을 관에서 쫓아내야 한다. 6피트 땅속에서 폴이 도망갈 수는 없지 않은가. 폴은 가지고 있던 술과 라이터를 이용하여 뱀을 쫓아내며 사건을 마무리 짓는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관 속에 쏟아지는 모래로 상황변화를 모색한다. 폴과 관객이 관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쯤 공간에 새로운 변화를 주는 것이다. 관 속에 쏟아지는 모래는 단순히 관 속에 갇힌 것보다 상황을 훨씬 위협적으로 만든다. 사람 하나 누울 정도의 작은 공간마저 확보할 수 없다는 사실은 폐쇄된 공간의 공포를 한층 짙어지게 한다.




현실 앞에서 가벼워지는 인간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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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폴과 관객의 목표는 단 하나다. 관을 탈출하는 것. 그런데 이 목표를 이루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다. 우선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폴은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911, FBI, 폴의 회사인 CRT, 국방부에 전화를 건다. 폴의 목숨이 달린 매우 긴박한 순간임에도 그들은 사무적인 태도로 절차를 우선시한다. 폴이 택배 반품 신청을 하고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다. 또한 그들은 관할 구역이 아니라서, 그 일의 담당 책임자가 아니라서 폴의 구조 요청을 거절하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당연히 100만 달러를 보내주면 풀어주겠다는 테러리스트의 제안도 가볍게 묵살된다. 이유는 정부 정책상 협상을 할 수 없기 때문. 그러면서도 이 상황이 언론에 새나가지 않게 폴의 입단속을 하는 것은 잊지 않는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쏟아지는 모래를 막고 있던 폴에게 회사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의미 없는 위로도 잠시, 담당자는 갑자기 통화 녹음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폴과 동료를 부적절한 관계로 몰아가더니 대뜸 해고 통보를 한다. 게다가 폴이 살아있을 때 해고했기에 보상금도 줄 수 없다고 한다. ‘난 너를 책임지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어’ 결국 몇 시간 후면 죽을지도 모르는 회사 직원에게 회사가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었다. 돈 앞에서 그들은 최소한의 예의도 없었다.

 

폴은 영화 내내 많은 곳에 전화를 걸며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결국 그 상황을 견뎌내는 건 폴 혼자였다. 그 누구도 그의 안위에는 진정으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가도 회사도 ‘폴 콘로이’라는 한 인간의 목숨은 최우선사항이 아니었다. 우리는 자라면서 인간의 생명은 그 무엇보다 가치 있다고 배우지만 그것이 얼마나 이상적이며 허황된 말인지 영화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부의 정책, 국제관계, 돈. 인간의 생명 위에 있는 것은 이렇게나 많다.

 





신선하고 참신하다. <베리드>는 이런 의미의 단어들이 아주 잘 어울리는 영화였다. 이 영화의 신선함은 흥미롭게도 새로운 무언가를 첨가해서가 아니라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을 없애는 데에서 나온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신선함을 주는 동시에 기존의 영화의 틀을 깨는 역할도 수행한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너무 무리한 설정이 아닌가 생각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되겠어?’라는 나의 의심을 ‘되는구나’로 바꿔놓으며 <베리드>는 영화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 시도만으로 그치지 않고 괜찮은 결과물까지 만들었다는 점에서 나는 이 영화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정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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