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음] 아름답지 못한 세상을 아름다운 것들로 돌파하기 위하여

작가로 돌아온 이석원의 세 번째 에세이집,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글 입력 2018.12.15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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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 글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그들은 문장을 통해 우물에 깊게 잠겨있던 사색을 하나씩 끄집어내는데, 이는 내가 특히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설은 진실을 기반으로 한 허구의 서사라면, 에세이는 기억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조망하는 글이니까. 고샅고샅 짚어낸 그의 기억을 따라 걸으며 나는 아파하고, 웃고, 공감한다. 에세이를 읽으면 그 사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듯한 착각에 빠지지만, 실은 궁금한 점이 더 많아진다는 아이러니도 재미있다. 그가 만난 사랑, 그 사람과 공유한 순간, 다정하면서도 냉소적이었을 말투까지. 작가가 설명하는 상황과 느낌을 들으면서도, 전부 알 수는 없기에 머리맡에서 괜한 상상만 떠돌 뿐이다.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의 기록은 대체로 짧은 순간에 관한 것들이다. 작가의 말처럼 양면보다는 단면에, 외면보다는 이면에 가깝다. 이따금씩 시간을 지내다 보면 어떻게 정리해야 될 지 모를 순간들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의 이야기들은 넓고 깊어서 아주 명쾌하다. ‘저도 그래요-‘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맞장구치고 싶던 순간들이 열 댓 번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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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니네이발관을 좋아한다. 23년의 시간에 마침표를 찍고 은퇴를 선언한 팀이지만, 만약 다시 볼 수 없다 하더라도 그건 변하지 않을 사실이다. 멋들어진 음악을 좋아했고, 완벽에 가까운 음악을 깎아내려 자신에게 야멸찬 태도를 사랑했다. 또 하나, 내게 없는 예민함과 섬세함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가 스스로에게 무력함과 나태를 이야기한다. 짧은 문장은 삶을 관통하고, 나의 게으름과 그의 게으름의 무게는 다를 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위로가 된다.


이석원은 ‘뭐든 할 수 있어’보다는 ‘좀 못해도 괜찮아’하는 게, 마음에는 더 건강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니까. 무미건조한 말은 안 하느니 못한 순간들이 많고, 무조건적인 희망보다는 조금 어둡더라도 진실된 이야기가 살에 와닿는 법. 한 작가는 ‘온탕에서 냉탕을 본다고 시원해지지는 않는다’고 이야기했지만, 가끔씩 ‘나도 그래’ 내지 ‘내가 더 힘들어’하는 말이 묘한 안도감으로 다가오는 때가 있다.


이러한 솔직함은 이석원의 상징이다. 약점은 감추기 급급한 세상 속에서 그는 자신의 부족함과 평범함을 온전히 드러낸다. 더 나아가 아뜩한 세상의 가장자리까지도. 더 나은 내일이 반드시 온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현실적인 조언도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루지 못한 꿈에 열망이 스스로에 대한 누추함과 미련으로 남을 수 있고, 모두가 치열해 보이지만 실은 그저 눈앞의 하루를 보내는 누군가도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 ‘누군가’에 해당되는 나로서는 결국 힘이 되는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청춘이란 말은 너무나 푸른데, 나는 제대로 피어본 적 있는지 잘 모르겠다. (좌절하지만은 않기로 했다. 생각에 부는 비바람은 영원하지 못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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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연히 옅어졌다. 가끔씩 움찔하게 되던 예민함도, <보통의 존재>에 짙게 깔려있던 까만 우울감도. 문체와 문장의 농도를 맞추기 위해 고민이 많았다던 작가의 말처럼, 이석원의 세 번째 에세이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은 한결 담담하고 편안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보통의 존재>를 읽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이석원의 시니컬함을 좋아하지만, 우울의 색이 너무나 짙어 읽는 데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인 정성일의 추천사에는 '유서를 읽는 기분이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반면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은 더 많이 채색하고 정제된 느낌이다. <보통의 존재>가 발간되고 지금까지, 그는 어떤 세월을 보냈을까. <보통의 존재>를 그림으로 나타낸다면, 대체로 검은색과 회색과 하얀색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책은 드문드문 파스텔 계열도 섞여있는 느낌이다.


대부분의 매체에서는 성공한 이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는 그들을 보며 실가지같은 빛을 바라보지만, 인정해야 하는 점은 누구나 그렇게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저 나의 현재에 충실할 수밖에. 삶을 희구하고 있는 작가의 태도에서, 보통의 하루를 살고 있는 나를 위한 현실적인 조언과 자디잔 희망을 맛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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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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