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연말 증후군 [문화 전반]

연말,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글 입력 2018.12.1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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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강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지긋지긋했던 이번 학기도 끝이 보이긴 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아직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개인 과제와 조별 과제, 시험, 정산을 끝내지 못한 봉사활동, 대외활동, 이것저것 마무리해야 할 일들과 종강 후 파도처럼 밀려 올 약속들까지. 몇 년 전까지는 거리에서 캐럴이 시끄럽게 울려댔는데 요새는 조용하다는 이야기를 몇 년째 하며 바삐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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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다.



연말 증후군?



연말이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우울해지고 마음이 허해지는 게 비단 나의 일만은 아닌가 보다. 이런 용어까지 생기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런데 은근 심각한 문제다. 2014년 통계를 보면 성인 10명 중 5.5명은 연말 증후군에 시달린다고 한다(출처: 알바천국). 4년 전 통계이긴 하지만 4년 동안 세상이 그다지 변한 게 없으니 당장 오늘 설문을 실시한다 하여도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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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을 보면 씁쓸함이 더해진다. 실천하지 못한 죄책감과 실천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1, 2위다. 원인이 병이 되고 병이 원인이 되는 굴레가 어쩐지 슬프기까지 하다. 12월은 그나마 축제 분위기라도 나지, 1월로 넘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새해가 시작되고, 나도 무엇인가 시작해야 할 것 같은 압박에 시달린다. 내가 12월보다 1월을 싫어하는 이유다.



마무리할 게 있다는 것, 그래도 무언가 이뤘다는 것.



올해 1월에 패기 있게 다이어리를 샀다. 당연히 두어 페이지만 채우고 공백으로 가득 찬 채 12월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다이어리가 예뻤기 때문에 소비에 후회는 없다. 무튼 1월에 처음 다이어리를 사고 적었던 ‘2018년 새해 목표’를 정확히 11달 만에 들추어 보았다.


1. 다이어리 꾸준히 쓰기 (여기서부터 실패했다.)
2. 물 많이 마시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
3. 수영 꾸준히 하기 (수영은 한 달 전에 관뒀다.)
4. 학점 X.XX 넘기기 (이건 성공했다. 나도 의외지만.)
5. 관극 줄이기 (당연히 실패했다.)


다섯 개 목표 중 네 개를 실패했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가장 이루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던 4번을 이루었기 때문에, 그리고 나머지 목표들은 1월의 내가 생각하기에도 불가능할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굳이 매 년 목표로 써두는 이유가 무엇이냐 물으면 할 말은 없다. 그래도 시도는 해보자, 는 의도이다.

분명 내 목표의 80%를 이루지 못했는데 나의 연말은 왜 이리 바쁜가. 목표와 실제가 괴리되면 안 된다는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배우지만 아마 죽을 때까지 실천하지 못할 것 같다. 그저 목표가 비대했을 뿐, 올해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산 게 아닐까. 그러니 이렇게 정리할 게 많지. 물론 나보다 열심히 산 수많은 현대인들이 있을 것이고, 나는 열심히 산 축에도 못 들 수 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떨까, 내 연말은 이렇게 바쁜데 말이다.



조금 더 감성적으로 마무리해보자.


종강을 앞두고 이런저런 일들로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와중에 이번 주는 어떤 주제로 글을 쓸까, 고민했다. 문화예술을 글로 전하는 에디터가 문화예술을 즐기지 못하고 있는 모순에 대해서 쓸까, 아무 책이나 한 권 읽어버릴까, 하다가 이런 고민 자체도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질적 소비가 문화 향유의 필요조건은 아니듯이.

2018년 1월 1일에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던 12월이 어느새 우리 앞에 다가온 것도 내 인생의 문화다. 계획한 것을 이루지 못한 갈등, 그래도 무엇인가 정리해야 하는 모순, 울며 겨자먹기로 한 해를 정리하다 문득 떠오르는 ‘어, 이것도 했네?’란 깨달음,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며 얻은 교훈 - ‘내년에는 진짜 열심히 살아야지.’ 기승전결이 이리도 뚜렷한 작품이 있을까? 오픈런으로 평생 공연되는 작품이 있을까? 주인공 한 명이 모든 서사를 책임지는 작품은?

연말 증후군, 연초 증후군으로 우울하고 힘든 요즈음이다.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으니 나라도 나에게 “올해도 힘들게 잘 살았다”라고 다독여주자. 우리는 오픈런 공연 속 유일한 원 캐스트 배우이자 1인 관객이자 1인 스태프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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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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