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食일담] 때 이른 한파, 따끈한 팥 디저트로 겨울나기

여덟 번째 후식일담, 팥
글 입력 2018.12.1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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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영상 7도였던 기온이 오늘 영하 7도로 떨어지는 일이 일어난다. 그것도 12월 초에. 때 이른 한파에 놀란 몸은 즉각 감기에 걸려버리고, 아직도 가을에서 벗어나지 못한 옷장을 보며 하는 수 없이 시커먼 롱패딩만 매일 입고 다니는 나날이다. 이럴 때 우리는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곳이라면 어디든 들어가고 싶고, 따뜻한 음식이라면 뭐라도 좋으니 뱃속에 넣고 싶어진다. 예를 들면 김 모락모락 올라오는 뜨끈한 팥죽이라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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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동빙고'의 팥죽)


원래 이곳은 서울 빙수의 양대 산맥이라 불릴 만큼 맛있는 빙수를 파는 곳이다. ‘눈꽃 빙수’가 전국적으로 유행하기 한참 전부터, 독보적으로 부드러운 빙질과 탁월한 맛을 자랑하며 동네 주민은 물론 외지인까지 끌어들이던 집이었다. 대표 메뉴인 팥빙수뿐만 아니라 커피 빙수나 로얄밀크티 빙수도 모두 맛있는데, 겨울에는 특별히 팥죽과 전통차와 같은 따뜻한 메뉴도 마련해서 더욱 좋다. 맛있는 팥빙수는 맛있는 팥을 쓰기 마련이고, 고로 이곳에서 만든 팥죽 역시 맛있는 건 당연한 진리. 적당히 달달한 팥죽 위에 쫄깃한 떡과 은행, 고소한 잣과 밤이 정성스레 올라간다. 뜨거운 팥죽을 휘휘 젓다 보면 새알 대신 쭈욱 늘어나는 차진 떡이 수제비마냥 들어있는 게 특이하다. 배가 불러오는 지도 모르게 한 그릇 뚝딱 비우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훈훈해진다.

어르신들은 다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동지에 팥죽을 먹는 이유는 바로 팥의 색깔 때문이다. 팥의 붉은색은 귀신들이 두려워하는 색이기 때문에, 팥죽을 먹음으로써 밤이 가장 길어 음(陰)의 기운도 가장 강한 동짓날 액운을 쫓았다고 한다. 단지 먹기만 한 게 아니라 집안 곳곳에 팥죽을 뿌리거나 그릇에 담아 두기도 했다고. 물론 영양학적으로도 팥죽은 좋은 보신 음식이며, 많은 재료가 필요하지 않아 경제적인 음식이기도 해 겨울철에 많이 먹곤 했을 것이다.

나도 어렸을 땐 겨울이 되면 집에서 동그란 새알을 넣어 팥죽을 쑤어주셨던 기억이 있다. 몇몇 새알 안에는 땅콩을 넣어, 그 특별한 ‘땅콩 새알’을 먹는 사람에게는 다음 해에 행운이 찾아올 거라고 믿는 귀여운 미신도 있었다. 참고로 올해 동지는 12월 22일이다. 그 무렵쯤 따뜻한 팥죽 한 그릇 먹으며 어깨에 들러붙은 삶의 잡귀들 모조리 쫓아내고 새로운 해를 준비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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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 겨울, 하면 또 하나 생각나는 건 바로 이 친구. 국물 오뎅과 호떡과 함께 겨울철 길거리 간식에서 빠질 수 없는 붕어빵 되시겠다. 매년 먹어서 질릴 법도 한데 이번 겨울에도 어김없이 사 먹는다. 바삭거리는 끄트머리의 식감도, 뜨거울 거 뻔히 알면서도 입천장 데가며 먹는 팥소도 모두 사랑스럽다. 한때는 머리 먼저 먹나 꼬리 먼저 먹나 갖고 지금의 부먹/찍먹만큼 치열한 논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이제는 팥 붕어빵이냐 슈크림 붕어빵이냐를 갖고 새로운 취향 논쟁이 생긴 것 같다. 마트에서 붕어빵 과자를 파는가 하면, 식사대용으로 만든 피자 붕어빵과 참치 붕어빵(생선 안에 생선이라니)이 지하철 역사에서 팔리는가 싶더니, ‘유럽식 붕어빵’이라며 붕어빵 모양 페스츄리 안에 누텔라나 블루베리 잼을 넣기도 한다.

하지만 제일 맛있는 건 역시 오리지널이다. 짙은 팥소가 들어간 누런 붕어빵. 뭘 넣고 만드는 진 모르겠지만 신기하게도 어느 트럭에서 사나 다 바삭하고 맛있는 그 마성의 반죽과, 입으로 불어가며 식혀가며 먹는 뜨겁고 달콤한 팥소의 조합을 따라올 맛은 없다. 그건 기억의 맛이기 때문이다.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천원에 한 봉지 사서 나눠 먹던 맛, 밥 먹고 나와 따뜻한 식당의 온기가 몸에서 빠져나갈 때쯤 후식으로 사먹던 맛, 칼바람 맞으며 밖을 돌아다니다 집 가는 길에, 먹고 싶기보단 핫팩이 절실해서 사가던 그 맛. 그렇게 두 손 녹힌 붕어빵은 가족들에게 전부 나눠주며 같잖은 생색내던 맛. 팥소만큼이나 뜨거운 그 기억의 맛들을 다른 화려한 유사 붕어빵들이 넘어서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최근에는 한 영국 유튜버를 통해서도 한국의 붕어빵이 소개되었다. 확실히 서구권 사람들에게는 팥을 사용한 간식 자체가 낯설고 신기한 것 같다. 생선 모양을 보고 생선 맛이 날 거라고 유추하는가 하면, 반대로 팥 모양 빵 안에 생선이 들어간 간식을 상상해보는 그들의 모습이 더 신기했다. 붕어빵이 원래 일본 간식이었다는 댓글에 한 번 더 놀랐는데, ‘도미빵’이라는 일본의 간식이 한국에 들어오며 붕어빵으로 변형된 것이라고 한다. 한편 몇 년 전 한국에도 일본식 도미빵을 파는 카페가 생겨, 길거리 음식의 상징이었던 붕어빵을 고급스럽고 정갈하게 만드는 차별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붕어빵 외에도 겨울철 편의점에서 자주 보이는 호빵이나, 슈크림 빵과 함께 빵집의 대표 주자라 할 수 있는 단팥빵처럼 팥을 사용한 빵은 생각보다 많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팥 들어간 빵의 대명사는 앙버터가 아니었나 싶다. 따뜻한 겨울 간식은 아니지만, 그리고 나중에 앙버터만 따로 또 다룰 계획이기는 하지만, 말 나온 김에 간략하게 얘기해보도록 하자.

앙버터라는 메뉴가 베이커리계에 등장한지는 사실 꽤 오래됐는데, 내가 기억하기로는 7-8년 쯤 전부터였던 것 같다. 정확히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팥과 버터라는 이색적인 조합에 홀린 얼리어답터들이 입소문으로 여기 저기 퍼뜨리고 다녔을 것이다. 보통 바게트나 딱딱한 발효빵 사이에 팥 앙금과 냉장 버터를 넣어 만드는데, 이 기상천외한 조합이 세상 어디에서도 맛 볼 수 없는 기막힌 행복을 가져다준다. 앙금과 버터라는 뜻의 ‘앙버터’라는 그 이름이 귀엽기까지 하니, 대박 메뉴가 아닐 수 없다.

이제는 하도 유명해져 식빵 사이, 소보루 사이에도 팥과 버터를 끼워 넣는가 하면 심지어 빠다 코코낫을 이용한 일명 ‘앙빠’가 sns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덕분에 옛날 과자 취급받던 빠다 코코낫이 제 2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고, 패키지 디자인에도 자체적으로 앙빠 레시피를 넣고 있다고 하니 정말 디저트 세계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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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추워질 일만 남았다. 모두들 월동 준비 잘 하고 계시는지. 마주하기 싫은 겨울 찬바람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올바른 자세는 아마도 나이 수만큼 새알 동동 띄운 뜨끈한 팥죽이나, 정겨운 냄새로 추위에 종종거리는 발길 붙잡는 붕어빵 트럭에 있지 않을까. 따뜻한 팥 음식과 함께 이번 겨울 몸도 마음도 아프지 않고 무사히 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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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뜻한 겨울 보내세요!


[김해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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