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따스한, 너무나도 포근한, 도서 <맨땅에 헤딩하기>

글 입력 2018.11.24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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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끝이 시린 계절이 왔다. 따뜻한 무언가를 찾게 되는 시기가 다시금 돌아온 것이다. 포근한 이불, 따뜻한 국물, 훈기가 도는 붕어빵. 그 모든 게 다 좋다.


그렇지만 이런 물리적인 따스함과 또 다르게 좋은 뭔가가 있다면,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글이다. 소설가 고금란이 쓴 도서 맨땅에 헤딩하기는 그런 작품이었다. 아트인사이트(www.artinsight.co.kr)의 소개 덕분에 만난, 아주 귀한 책이다.





< 출판사의 소개글 >


우리는 저마다 각박하고 무거운 현실을 짊어진 채 전전긍긍 살아가고 있다. 저자는 살던 집이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는 바람에 지은 지 5년밖에 되지 않은 이층 주택이 공기업인 토지주택공사에 수용된다. 다시 집을 지을 곳을 찾아 도시를 헤매지만 땅을 구할 수 없어 결국 변두리로 밀려나게 된다. 그리고 시골에 전원주택을 지어 이사를 하면서 삶과 인간 존재에 대하여 새로운 성찰을 하게 된다. 시골은 도시에 비해 여유롭고 한적한 공간이 분명하지만 그 이면에는 사람살이의 다양한 면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다.


평생 살아온 도시를 떠나 ‘맨땅에 헤딩하듯’ 시골 생활을 시작한 저자에게 시골은 결코 낭만적인 곳이 아니었다. 남편과 네 탓이니 내 탓이니 싸우기 시작했고 지인들은 이사를 잘못했다거나 집터가 세다며 얼마 버티지 못하고 도시로 돌아갈 거라고 쑥덕거렸다. 저자는 이런 모든 얘기들이 기우였음을 보여주기 위해 이를 악물지만 결국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등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는다. 어느 날 야반도주를 하듯 인도로 떠난 저자는 결국 그 모든 고통들이 자신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깨달음을 얻고 다시 시골로 돌아온다.





맨땅에 헤딩하기에 담겨있는 소설가 고금란의 인생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보다 더 적은 시간을 살아온 내 눈에는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것처럼 보였다. 부산에서 살면서 자신만의 집을 지은 저자는 5년만에 그 집을 한국토지주택공사에 빼앗기게 된다. 그 지역에 재개발사업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련했던 '내집'은 없어지고 저자는 고향에서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남편의 말을 따라 고등골로 이사를 간다.


그러나 평생 살았던 도시와는 다른 시골의 삶이 저자에게 마냥 행복을 안겨준 것은 아니었다. 당장에 시골노래를 불렀던 남편이 막상 고등골에 오자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부산으로 돌아갔고, 더군다나 그는 홀로 연세가 지긋이 드신 데다 치매가 있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했다. 그런 탓에 집안에는 싸움과 고성이 가득했다. 도시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이를 악물며 시골살이를 버텼지만 다시 도시로 돌아가게 되기도 했다. 그는 견디다 못해 인도로 훌쩍 떠났다 왔다. 모든 문제가 스스로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달은 저자는 다시금 고등골로 돌아간다.


맨땅에 헤딩하기는 각각의 꼭지가 옴니버스식으로 쓰여 있어 저자의 삶의 양상을 연대기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시간적인 흐름을 살펴보자면 위와 같았다. 과연 저 일련의 과정이 쉬운 일일까. 시골에서 태어나 도시로 나와서 공부하고 일하며 먹고 살고 있는 나로서는 그게 얼마나 어려울 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시골에서 살았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도시생활이 익숙해지면 시골살이로 돌아갔을 때 느끼는 불편함들이 분명 있다. 더군다나 이전까지 모시지도 않았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면 더더욱 그 어려움이 가중되지 않겠는가. 그 일련의 과정에서 회피하듯 부산으로 가버리고, 싸우면서 저자를 탓하기 바쁜 저자의 남편은 도대체 뭐하는 작자인지 화가 날 정도였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아주 놀랍게도 삶을 헤쳐나갔다. 그 나이라고 해서 쉬울 일이 아닌 것을, 그조차도 처음 사는 인생인지라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을, 소설가 고금란은 용케 힘을 내며 그 풍파를 뚫어 나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도 저자는 삶과 세상, 사람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았다. 힘을 내서 열심히 살아가는 그 과정에서 따뜻한 그 마음을 잊지 않은 것이다. 마치 이 대목에서처럼 말이다.



"아무리 씨앗을 뿌리고 거름을 주더라도 저 투명한 햇살과 적당한 바람과 때맞추어 내리는 비가 없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라는 것을요, 그것이 바로 신이 인간에게 주는 은총이고 사랑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우주가 우리를 얼마나 잘 보살피고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요. (도서 맨땅에 헤딩하기, 115쪽 중에서)"



시골살이가 쉽지 않은 것에도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려운 그 상황에서 저자는 오카리나를 배우며 어려운 그 상황을 긍정했다. 긴 터널의 시간을 지나고 나면 한단계 성장해 있을 거라는 말을, 남에게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그러나 그 상황을 내가 겪어가면서 스스로에게 되뇌이기는 마냥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걸 알면서도 힘든 지금에 압도되는 순간이 많기 때문이다. 그 시간이 다 지난 후에 아주 담담하게 펼쳐낸 저자의 마음은 담담하기에 오히려 큰 울림이 되었다.



"사람은 어둡고 힘든 시절을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내면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능력이 개발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고등골 마당은 내 속에 잠재되어 있던 음악성을 아낌없이 드러나게 만들어 준 큰 멍석이었습니다. (도서 맨땅에 헤딩하기, 133쪽 중에서)"



이렇게 그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 속에 따뜻함을, 온정을, 사랑을, 감사를 잊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일까. 소설가 고금란은 정말 신기할 정도로 많은 인연들을 만난 것 같았다. 이 사람이 품고 있는 그 내면의 따스함과 아름다움이, 자식의 친구네 어머니와 인연이 닿게 하고, 본인이 운영했던 단식캠프에서 머슴마냥 묵묵히 일하는 일손을 만나게 하고, 어느 외딴 집에 사는 할머니를 살뜰히 챙긴 끝에 타계하신 후 그분의 자녀가 인사드리러 오게 되기도 하고 그런 게 아닐까.


어떻게 이렇게까지 인연이 이어질까 신기할 정도였다. 물론 그렇게 많은 인연들이 왔다가 또 많은 인연들이 떠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혹은 그 몸에 주어진 숨이 다하여, 혹은 이제 더 이상 삶을 나눌 수 있는 계기들이 줄어들어. 그러나 마치 썰물이 오고 나면 밀물이 다시금 밀려드는 것처럼, 수많은 인연들이 소설가 고금란을 향했고 또 지금도 향하고 있는 것 같아 그것을 읽어내려가는 내 마음도 같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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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자가 쓴 이야기들 중에 가장 뼈에 사무치도록 와닿는 것은 저자가 그의 어머니를 반추하는 대목들이었다.


연세 드신 어머니께서 치과를 가봐야겠다며 돈을 좀 보태달라 했을 때, 월말이라 돈 나갈 데가 많은데 하필 이런 때 아프다며 어머니를 타박했던 저자는 본인이 치통을 앓는 나이가 되고서야 그 때 어머니가 얼마나 서러우셨을지를 생각했다. 이미 같은 하늘 아래 계시지 않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그 마음이 너무도 가슴에 사무쳤다.


저자만 그럴까. 사실은 누구나 다 그랬을 것이다. 가장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 가족 중에서도 특히 어머니는 항상 그런 존재이시지 않나, 내가 아프면 가장 먼저 나에게 달려와주고 나보다 더 아파하면서 나를 돌봐주시고 날 감싸 안는 그런 존재. 그러다보니 그런 사랑을 계속 받다보면 어느 순간 무감해져서 툭툭 서운하게 만드는 말들을 내뱉기도 하고 콕콕 찌르는 말들을 쏘기도 하는 것이다.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더 남아 있는지도 모르면서. 매번 있을 때 잘해야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당장의 그 순간에는 어머니가 나에게 주신 사랑보다도 내가 느끼는 서운함과 불만이 더 크게 느껴져서. 그렇게 하세월의 풍파를 견뎌내신 그 가슴에 비수를 꽂는 것이다.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고 또 안타까워 하고 그래서 더 사랑하게 되면서도, 아직도 어머니의 그 마음을 감히 헤아리지 못하는 어린 내가 너무도 부끄럽고 면구해졌다.


친정어머니로부터 장 담그는 법을 배운 저자는 본인 역시 자녀들에게 이를 알려 주고 싶어 하지만 여의치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짧은 대목에서조차 심장이 한 번 내려앉는 것 같았다. 당장에 내가 배우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더 많아서, 어머니께서 나에게 알려주고 싶어하시는 것들이 있는지, 그게 무엇인지에 대해서 나는 무심했으니까 말이다. 우리 어머니께서도 나에게 김치 담그는 법도, 맛있게 찌개를 끓이는 법도, 이런 저런 요리에 특별한 맛을 내는 법도, 다 알려 주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랬는데.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리고 저자는 용케 여기까지 살아냈다. 각자의 인생의 시계가 가리키는 지점이 다르더라도 우리가 여기까지 살아온 것이 장한 일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이제는 세상이 온통 차갑게 침잠하는 시기가 왔다. 코끝이 찡하도록 시린 공기가 매일같이 창문을 두드려댈 것이고, 오늘 서울에 내린 눈처럼 종종 세상이 하얗게 뒤덮여 모든 게 느려지기도 할 것이다. 마치 아무것도 변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그러나 그 끝에 봄이 오리라는 것도, 우리는 분명히 안다.

그리고 철이 그러하듯 인생 또한 그러한 것이기에,

그래서 우리는 가슴에 마지막까지도 그 따뜻함을 잃지 말고 살아야 하는 것 같다.

누구나 맨땅에 헤딩하며 살아가니까, 그런 우리가 서로를 보듬어가며 살 때, 마치 소설가 고금란이 살아온 삶처럼 굴곡은 있더라도 그 내면이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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