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귀 기울여주세요, 몰락의 소리에 : 연극 <사막 속의 흰개미>

글 입력 2018.11.2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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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사막 속의 흰 개미> 

-귀 기울여주세요, 몰락의 소리에-




망각 위에 사는 우리



인간의 인생은 망각 위에서 가능해진다. 어제의 지독한 실수가 오늘, 내일, 글피에도 떠오른다면 우리는 버티지 못할 것이다. 오늘의 슬픔이 일주일, 한 달, 10년 동안 이어진다면 우리는 삶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천 년을 갈 것 같던 슬픔은 초침의 운동 속에서 희미해져 가고, 1분 1초 나를 괴롭히던 감정은 일상에 희석되어 문득문득 노크만 한다. 어쩌면 ‘냄비근성’이란 것도 어떤 정열적인 감정이 만만치 않은 내일의 일상에 희미해지고 희석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우리 사회의 그리고 개인의 가장 맹렬했던 슬픔이 떠오르지만 그건 당면한 감정은 아니다. 생각하면 울컥하고 치밀지만, 이미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가 그을음만 진하게 남긴 잔상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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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식으로 말하자면, 이건 '코나투스'다. 스피노자 윤리학의 토대가 되는 개념인데, 모든 사물이 가능한 한, 그리고 자신의 힘이 미치는 한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뜻한다. 우리는 나 자신과 나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것을 망각한다. 회피한다. 은폐한다. 그래야만 슬픔에 허우적거리지 않을 수 있고, 그래야만 죄책감에 매일 시달리지 않으며, 그래야만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거다. 이 기억상실이 습관이 되어버린 사회에선 고름 찬 곳을 두꺼운 치장으로 덮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다시 일상을 살아가라 한다. 그 위에서 구성원들은 어제의 슬픔을 잊고 다시 밥을 먹고 노동을 하고 잠을 잔다.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별반 다르지 않은 내일을 살아가기 위해서. 다시 말해 망각의 역사는 비겁의 역사이자 생존의 역사다.

 



공가네 고택, 공(空)한 고택


 

연극 <사막 속의 흰개미>가 조망하는 100년이란 시간은 그런 역사를 대표한다.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대대로 다스려왔던 100년 고택. 그곳은 과학용어로 말하자면 페어리 서클(Fairy circle), 종교용어로 말하자면 성소, 연극 형식으로 말하자면 무대이며 이야기 안에서 말하자면 병폐의 온상지이다. 그리고 객석에서 말하자면 바로 한국 사회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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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다소 직접적으로 이 고택과 사회의 연관성을 드러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사실은 거대한 페어리 서클 안일 수 있지 않을까요?”라는 에밀리아의 학술논문 발표는 어떤 개인 공석필의 고택이 우리 사회 전체를 포괄하고 있다는 걸 가장 명징하게 드러낸다. 이어 아버지의 환각과 어머니의 추동 속에서 자신은 폭력과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병폐의 후계자 석필, 이 집안의 오랜 폭력이 만든 피해자 지한, 그리고 이들에게 메스를 들이대어 흰개미가 생긴 이유를 찾고자 하는 에밀리아. 크게는 이 세 사람의 구도로 한 집안, 종교, 사회의 메커니즘을 알레고리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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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택은 그런 곳이다. 사람들이 가축을 죽이며 구원을 기대했던 전근대적인 공간, 한 개인이 신처럼 군림했던 공간, 피해자의 울음을 애써 모르는 척하며 살아왔던 공간, 마을의 수분과 양분을 빨아들여 홀로 비옥해졌던 공간. 그리고 이제 흰개미가 들끓는 텅 빈 공간. <사막 속의 흰개미>는 고택과 페어리 서클이라는 설정에 다층위의 의미를 부여하며, 관객이 들어선 이 공간. 홀로 끔찍하리만치 비옥해 흰 개미가 들끓는 이 고택으로 한국 사회의 역사성을 직유한다. 공석필, 그의 아버지 공태식, 그리고 공태식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살아온 이곳은 말 그대로 공(空), 비어있는 공간이다. 그 지반 아래엔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기억할 수밖에 없는, 망각조차 허락되지 않은 지한과 같은 흰개미들이 살고 있다.




여기 흰개미가 살고 있어요



이곳에 메스를 들이미는 건 공동체 밖으로 이식된 에밀리아다. 하지만 에밀리아는 한국 사회에 유대감을 가지지 않는다. 그에게 '민족'은 말 그대로 상상의 공동체일 뿐이기에 에밀리아는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며 흰개미 연구에만 몰두한다. 에밀리아의 존재가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건 이 사회에서 기능해왔던 민족, 종교, 집안의 질서다.


무대의 대들보가 대표하는 '아버지의 질서'는 100년 넘게 이 고택을 지배해왔다. 죽은 태식은 계속해서 집안 사람들에게 환영으로 나타나고, 연극은 그의 과오와 무너지는 집안을 병치해 이 집을, 사회를 망가뜨린 것이 어떤 질서인지를 분명히 드러낸다.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아버지들의 욕심으로 가득 채운 '빈' 역사는 그들이 만들어낸 들끓는 흰개미들로 인해 몰락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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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의 폭력과 방관과 외면 사이에서 고통받던 지한이 이 집안으로 돌아왔듯, 피해자들이 사람들 앞에 나서서 공론화를 시작했듯, 공고했던 질서는 해체되고 집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무너져 간다. 몰락을 가져오는 흰개미의 운동성은 바로 '기억'과 '믿음'이 추동한다. 기억하지 못하는 석필 앞에서 지한은 끔찍했던 과거를 '상기'시키고, 종교를 지나칠 정도로 맹신하는 윤재와 선행자들의 연구를 믿는 재현은 사소한 말다툼으로 부딪쳐가며 이 집안의 비밀을 헤집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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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바로 현숙이다. 백지원 배우의 단단함으로 완성된 현숙 캐릭터는 죄의 굴레가 바로 코나투스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연극 말미에 가서 밝혀지는 것이지만, 이 집안의 우물을 막은 건 현숙의 시아버지가 아니라 시어머니였다. 신도들의 어긋난 '믿음'으로 인해 우물이 가축의 피로 가득 차면, 그 피를 길어야 하는 건 여성의 몫이었던 것. 현숙의 고백은 가장 맹아적인 권력, '아버지의 질서' 하에서 자기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죄를 은폐하고 쉬쉬했던 기제를 드러낸다. 어쩌면 이는 가장 평범하고 그래서 지독하게 끔찍한 우리의 기제다.


그래서 끝내 모든 부패의 고리를 끊고자 먼저 움직이는 건 석필이 아닌 현숙이다. 흰개미 연구를 계속하려는 에밀리아와 재현, 기억을 끌어안고 살면서 이 집안이 무너지길 바라는 지한, 질서의 또 다른 피해자이면서 간접적 가해자인 현숙. <사막 속의 흰개미>는 각기 다른 여성인물들의 움직임을 한 점으로 모아 결국 이 집안의 대들보를 무너뜨린다. 그 과정 속에서 석필은, 태식은, 그리고 윤재는 여전히 공(空)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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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서 모래가 떨어지고 대들보는 무너지며 바닥에는 수많은 개미 인영들이 지나다닌다. 그렇다면 이 작품이 말하고자 했던 건 '아버지의 질서'의 몰락이었을까? 아니, 몰락의 소리다. 에밀리아의 기계에 제일 처음 귀를 기울인 건 지한이었다. 그후 지한은 사람들에게 흰개미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어보라 한다. 여기 있다고, 이 밑에 분명히 있다고. 일상의 안온함을 위해 잊고 살았겠지만 기억해야 할 목소리들은 분명히 있다고. 그리고 그들은 언젠가 질서를 무너뜨리기 위해 움직일 것이라고 말이다.


그럼 은폐된 모든 것들이 드러나고, 사회의 매일 매일을 위해 덮어놨던 것들이 고개를 내밀며, 모든 믿음이 몰락한 자리에선 무슨 일이 일어날까? 에밀리아의 답대로 그건 '다음 연구 주제'가 될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하고 구태여 말하지 않을 것 역시 분명해 보인다. 다만 비유가 너무 명징하게 보이는 건, 주제의식으로 치닫는 것에는 공으로 작용하지만 연극적 재미에는 과로 남는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귀 기울여보시라는 것, 우리가 잊고 사는 어느 소리에. 몰락을 가져올 누군가의 목소리에.




공연정보




공 연 명

창작극 〈사막 속의 흰개미〉


장 소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일 시

2018년 11월 9일(금) ~ 11월 25일(일)

월수목금 8시/ 토 3시, 7시/ 일 3시

(*화 공연 없음)


출 연 진

강신구 백지원 한동규 김주완

최나라 황선화 경지은


제 작 진

 

작 황정은 연출 김광보

무대 박상봉 조명 김정태 영상 배준호

음악 장한솔 소품 정윤정

의상 홍문기 분장 장경숙 음향 장기영

무대감독 장연희 조연출 김하늬

기획 장인정 기획‧홍보지원 제나영 임주희


입 장 권

R석 3만원 S석 2만원


관람연령

만 13세 이상(중학생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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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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