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상처에서 비롯된 연대 [영화]

추상미 감독의 <폴란드로 간 아이들>
글 입력 2018.11.17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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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린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다큐멘터리라고 하기에는 다소 연출된 장면이 많다. 그러나 소재에 의의를 두고 본다면, 이만큼 세대 간 소통에 이로운 작품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movie_image (5).jpg▲ 네이버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틸샷
 


치유되지 않은 상처도 흉터가 된다

오래된 상처는 가끔 상처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어릴 적, 지금보다 체력이 대단했을 때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무릎에서 피가 나는 줄도 모르고 놀이터와 학교를 쏘다녔는데, 꽤 크게 다친 상처라 피가 줄줄 흘렀는데도 알아채지 못했다. 자연의 순리대로 피가 멎고 새살이 돋은 그때의 상처는, 흉터가 되어 지금도 무릎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출혈도 없고 멍도 가라앉은 흉터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막 다쳤을 때의 고통을 떠올릴 것인지, 아니면 다쳤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쏘다녔던 기억을 떠올릴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흉이 남지 않게 제때 치료해야 했다고 후회할 것인지. 이후의 감상이 어떠하든,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오래된 흉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movie_image (1).jpg▲ 네이버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틸샷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때, 폴란드의 시골 마을인 프와코비체로 1,500명 가량의 전쟁고아들이 보내졌다. 김일성이 전쟁을 계속하기 위해 동맹국에 부탁한 아이들이다. 프와코비체의 선생님들은 낯선 외모의 아이들을 성심껏 다해 돌봤다. 아이들은 그들을 '마마', '파파'라 부르며 정을 붙였다.

그로부터 8년 후,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북한은 아이들을 북송시켰다. 아이들은 선생님들에게 가고 싶지 않다고, 자신을 데리러 와달라면서 고국으로 돌아갔다. 폴란드의 선생님들은 아직까지 그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한다.


movie_image (6).jpg▲ 네이버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틸샷
 

지구 정반대에 위치한 두 국가 간의 이야기는 폴란드의 다큐멘터리로 남았고, 배우 겸 감독 추상미는 영상을 보고 그 발자취를 찾기 위해 폴란드로 향한다. 탈북하여 남한에서 꿈을 키우고 있는 배우 이송과 함께.

한국과 폴란드는 전쟁의 상처를 간직한 국가들이다. 그 상처는 사라지지 않고 흉터가 되어 나라 곳곳에 남아 있다. 프와코비체의 선생님들이 얼굴도, 이름도 몰랐던 아이들을 애정을 다해 보살필 수 있었던 것은 같은 아픔을 겪었다는 것에서 비롯된 유대 때문이었을 거라고, 추상미 감독은 말한다.



70년이 지나도록 잊지 못한 이름들

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고충을 겪은 국가다.

프와체비코 양육원의 교사들은 아우슈비츠의 상처를 여전히 기억한다. 북한의 전쟁고아들을 마주했을 때, 그들은 아마 끔찍했던 과거를 떠올렸을 것이다. 상처에서 비롯된 유대. 아이들과 같은 아픔을 겪은 선생님들이 잊지 못했던 이름들, 얼굴들, 생생히 기억하는 그때의 기억들. <폴란드로 간 아이들>에서 추상미 감독이 보여주는 이야기를 따라가면 한국과 폴란드가 겪은 전쟁의 상처가 마음 깊이 다가온다.


movie_image (2).jpg▲ 네이버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틸샷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로서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 잘 만들어진 작품이냐 하면, 다소 아쉽긴 하지만 대답은 '아니다'이다. 과장된 듯한 연출과 분량을 채우기 위한 의미없는 장면들이 삽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네이버 영화 평점 9점대를 차지했다는 것은, 문재인 정부 이후 통일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점도 한몫할 것이다. (엔딩 크레딧 후원 목록에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삽입되어 있다.)

반백 년이 넘게 흘렀는데, 한국전쟁의 흉터는 여전히 국토를 길게 가로지르고 있다. 북한 및 탈북민과의 소통을 우리가 도외시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통일 가능성 여부를 떠나, 전쟁의 아픔을 공유한 같은 뿌리의 민족과 감정적으로 연대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한국이 정신적으로 성숙한 국가로 발전하기 위해 꼭 필요한 단계일지도 모른다.


movie_image (7).jpg▲ 네이버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틸샷
 


20대 관객도, 60대 관객도 눈물을 훔쳤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 상영하는 극장의 넓은 관객석에는, 세대를 논할 것 없이, 같은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다. 20대 관객도, 60대 관객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영화를 통해 소통하고 같은 아픔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대화 없이도 세대 간 차이를 극복하고 같은 것에 눈물 흘리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세대 간 소통에 이로운 작품이지 않을까, 하고 서두에서 말을 꺼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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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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