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전통적 여성상에 총을 겨누다 [시각예술]

니키 드 생팔의 예술 세계
글 입력 2018.11.13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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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내 죄가 아니라, 그 누군가의 죄를 위해 죽었다네.” 니키 드 생팔의 사격회화 작품 <대성당>을 접했을 때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은, 패티 스미스의 곡 ‘gloria’의 첫 구절이었다.


두 사람 모두 보수적인 가정의 엄격한 종교적 가르침에 억압받았던 어린 시절이 그들의 예술 세계를 구성하는 일부가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니키 역시 친부의 성폭행, 종교적 억압, 정신병, 조혼의 어려움 등 아픈 기억이 그녀의 작품 세계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의 개인적 역사는 ‘여성’으로서 가져야만 했던 시련이기에 보편성을 보이며 ‘여성’의 공감을 얻어냈다.


가정 내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 마녀 혹은 성녀라는 이분법적 이미지, 여성이 짊어왔던 그 많은 고통에 니키는 총을 겨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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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격이 곧 전통적 여성상에 대한 반격이었다면, <나나>는 여성상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곡예적 움직임과 밝은 색채의 조형물은 유쾌하고 자유로운 여성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거꾸로 서 있는 나나>는 나에게 온몸으로 이렇게 외치는 듯했다. ‘나처럼 뒤집어 봐! 네 마음대로 해, 세상의 편견을 전복시켜!’ <거대한 얼굴>은 자신의 고통을 그대로 드러내어 인간이 아닌 ‘여성’으로서 요구되는 ‘의무’에 반발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이렇게 니키의 작품은 전통적 여성상의 전복을 중심으로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전하며 지금까지도 그녀의 목소리는 유의미한 영향력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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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이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다른 이유는 자신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하여 다른 사람의 아픔을 치유하고 위로하고자 했던 그의 따스한 마음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요코와 나눈 수많은 그림 편지, 그의 솔직한 생각을 읽어볼 수 있는 일러스트, 그의 유작 타로정원까지. 작품을 보면 그가 얼마나 인간적인 사람인지 느낄 수 있다. 순탄하지 않았던 과거가 그를 염세적인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오히려 타인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했던 그녀의 포용력은 감동적이다. 나 역시 작품을 통해 여성으로서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하고 앞으로 닥칠 고난에 두려워하는 삶에 그의 유쾌한 색채가 덧칠해지며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니키는 장 티겔리와 요코 마즈다 시즈와 같이 평생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했고, 이집트, 일본 등 다양한 곳을 방문하여 작품 세계를 넓히며, 마지막을 그의 염원이었던 타로 정원을 완성했다. 언제부턴가 슬프고 비참한 여성의 모습만이 아니라 행복하고 삶을 즐기는 여성의 모습도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니키가 향유했던 경쾌한 삶에서 나는 앞으로의 삶을 이어갈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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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가 세상을 떠난 지 15년 정도 흘렀지만, 그녀가 주장했던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최근의 뉴스를 훑어본다.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짧은 머리를 한 여학생들을 소집해 머리를 기르도록 지시했다. 학교에서 긴 머리의 전통적인 여성상을 학생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꾸미지 않는 여성이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쫓겨났다. 몰론 남자는 꾸밈의 규칙에 해당사항이 없다. 여전히 여성은 남성이 권력을 잡은 사회가 요구하는 정형화된 이미로 존재할 것을 강요받는다. 이렇기에 어느 때보다도 페미니즘 운동이 뜨겁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영역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 치우리는 18 s/s 컬렉션의 모티브를 니키의 작품에서 따왔다.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컬렉션에 반영해온 그에게 니키의 작품이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이처럼 니키의 예술 세계는 현재 여성들에게 여성으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발판의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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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의 평생 친구였던 요코의 말을 빌려 그녀의 작품이 갖는 의의를 설명하고자 한다. “니키는 나에게 알몸의 여자아이, 호기심이 강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어린 여자아이를 되돌려주었다. 여자로서, 인간으로서 살아갈 용기와 꿈, 긍지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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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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