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 Classic guitar 독주 (창작곡 재연)
'서' 라는 곡은 최치원의 흔적을 따라 가면서 만들어진 곡이라는 설명으로 연주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아는 그 서예의 한자, 書(글, 서)가 맞다. 흔히 지나치기 쉽지만 서예는 단순한 글씨를 쓰는 행위가 아니다. 일종의 정신 수양의 과정이라 할 수 있는데 소리가 지나치게 구슬프면서도 맑아서 처음부터 아주 독특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 나는 현악기의 현을 뜯는 소리를 좋아하는 편인데, 기타 바디의 탭핑 소리와 어우러져 묘한 느낌을 받았다. 클래식 기타라는 장르가 이런 느낌이었나 반문을 자아냈던 첫 곡이다.
산, 바다 – Classic guitar 독주
(창작곡 재연)
산과 바다라는 곡은 말 그대로 산과 바다에 대한 연상을 담은 곡이라 했는데, 전체적으로 소곤소곤, 편안하게 귓속말을 전하는 느낌이었다. 중간 중간에 음이 통통 튀는 구간도 독특했다. 이 곡은 동양적인 소리보다는 조금 더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산은 시냇물이 졸졸 흘러가고, 햇빛이 따뜻하게 비치는 봄날의 숲 같은 느낌이라면, 바다는 잔잔하게 파도가 일렁이다가도 가끔씩 거세지는 힘이 느껴지는 음색이었다.
연습곡 공간 1 and 2 – Classic guitar 독주
(창작곡 재연 및 초연)
공간 1과 2는 학생들의 자유로움을 닮아있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다양함을 포용하는 느낌이랄까. 변주도 다양했고, 전체적으로 다양한 음이 만나서 위쪽으로 차오른다는 그림이 그려졌다. 공간 1은 음이 깊고 강렬했다면, 공간 2는 다소 느리고 애절했다.
석풍수 – Classic guitar 독주 (창작곡 재연)
건축가 이타미 준의 작품인 석풍수 박물관(제주도의 비오토피아)를 주제로 만들어진 이 곡은 말 그대로 이 공간을 닮아있었다. 석풍수 박물관은 자연을 테마로 한 건축물로, 매 시간, 매 계절 마다 다른 질감과 느낌을 선사하는 곳이다. 말 그대로 자연과 날씨의 변화를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인데 이 곡은 4계절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중간에 끼이익, 울리는 소리는 쇳소리와 비슷해서 녹슨 '석(돌)' 박물관이 생각났고, 풍(바람) 박물관의 철장 사이로 바람이 파고드는 장면도 연상됐다. 스산하고 차갑다가, 포근하고 웅장했다. 그림을 그리는 듯한 넓은 스펙트럼이 인상 깊었던 곡이다.
감포 앞 바다에서 - Classic guitar, 피리 이중주
(창작곡 편곡 초연)
2부에서는 피리가 등장했다. 2부의 첫 곡이었던 이곡은 문무대왕의 흔적을 쫓아 만들어진 곡으로 대번에 만파식적 일화가 생각이 났다.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어 영원히 자신이 통일한 신라를 지켜내겠다던 문무왕. 반쪽짜리 통일이라 비판 받을 수도 있지만 한 국가의 기틀을 다시 마련했던 그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사라는 설명과 함께 기타와 피리의 합주가 시작되었다.
웅장하고 깊지만 부드러웠다.
달, 대나무, 바람, 파도, 갈매기, 신령제, 용, 간절함.
문무대왕릉에 대한 나의 기억과 음악 소리가 겹치면서 내 머릿 속에 떠올랐던 단어들이다.
달이 푸른 밤, 달빛을 가득 받은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문무 대왕이 잠든 수중릉에서 피리를 불면, 바람과 파도가 거세지고 갈매기들이 끼룩 거리면서 거칠게 날아든다. 사람들은 백사장에서 흰 한복을 입은 채로 신령제를 지내고, 무언가를 원하는 간절함은 모이고 모여 바다 깊이 잠든 용을 불러낸다. 구름이 덮이고 하늘에 어둠이 내리면 전생에 나라를 통일했던 왕이 용이 되어 하늘에서 내린다.
다소 과장된 소설이 머릿 속에 떠올랐다. 정말로 말을 하는 듯 깊은 곡이었다.
가던길 – Classic guitar, 피리 이중주 (창작곡 초연)
나그네와 아리랑을 떠오르게 하는 이 곡은 약간 느낌이 달랐다. 다른 곡들은 중간 중간에 부러 주의를 분산시키는 독특한 음들이 들어가 있었는데 - 물론 그 튀는 음 조차도 조화로웠다만- 이 곡은 그런 독특함보다는 자연스럽게 휘어드는 가락이 익숙한 곡이었다. 익숙하면서도 편안한 정서였다.
Blue Hour – Classic guitar 독주 (창작곡 초연)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곡은 마지막 두 곡이었는데, 그 중에서 blue hour라는 곡은 정말 좋았다. 좋았다라는 말로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내 비루한 어휘력이 안타깝지만, 그 말 만큼 적절한 말도 없는 듯하다.
블루 아워라는 시간은 해가 지가 어스름이 남아 있을 때의 순간이다. 흔히 해질녘이라 하면 해가 지는 노을을 생각한다. 그 시간 대를 magic hour라고 부르는데, 이때는 하늘에 색의 스펙이 넓게 펼쳐져 출사 시 베스트 시간대라고 불린다. 나 역시도 늘 이 시간대 만을 생각했는데 blue hour는 꽤나 신선했다.
해가 땅 속으로 사라지면, 어스름이 내리고 별이 하나 둘 떠오른다. 밤의 장막이 서서히 펴지는 이 순간을 이 곡은 잡아챈다. 밤이 흐르고 별이 흐르고 음이 흐른다. 가끔이 톡 튀어오르는 고음은 톡 하고 떠올랐다 사라지는 붉은 별을 닮았다. 이 표현을 쓰는 지금도 다시 느끼고 싶은 감정이다
Transformation – Classic guitar 독주
(창작곡 초연)
대망의 마지막 곡, Transformation. 앞에서도 살짝 언급했지만 이 곡은 전체 구성을 마무리하는 조화를 자아내는 곳이었다. 변형은 완전한 새로움은 아니다. 기존의 자아 속에 존재하는 내부의 것이 새로운 자극과 함께 발전하고 진화해서 새로운 형태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이 곡은 앞서 언급한 서로 결이 다른 곡들 (동양적인 소리, 포근하고 따뜻한 음색, 부드럽지만 살짝씩 톡톡 튀는 소리들까지)을 모두 아우른다. 그리고 그 아우름의 중심에는 한 단어 '최 인'이라는 인물이 있다. 이 곡은 이 문장을 완성시키는 역할을 했고, 내가 글의 제목을 지은 이유를 보여준다. 딱히 다른 말로는 모든 느낌을 아우르기가 힘들었다.
이번 리사이틀은 모든 곡들이 자작곡이기에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던 말이 기억이 난다.
음악이라는 언어가 아닌 상징물로
자신의 생각과 가치에 대해 표현하는 일이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전에 이 분을 알았다면
오늘 느끼는 감정이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짧지만 가치있는 깊은 공감의 시간이었다.
내년 리사이틀이 벌써 기대가 되는 분이다.
좋은 공연,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