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형의 집 [연극]

예술의 전당 개관 30주년 기념극, 헨릭 입센 원작 '인형의 집'
글 입력 2018.11.11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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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 크기조정.jpg
 


예술의 전당의 개관 30주년 기념극, 헨릭 입센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 '인형의 집'을 관람했다. 


그런데 이 연극, 독특하다. 현대미술을 처음 접했을 때 받았던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이게 대체 뭐지? 무슨 뜻이지? 근데 왜 감동적이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면서 마음은 웃고 울며 공감하는 기이한 감정을 느꼈다. 난해한데 전하는 메세지는 분명한, 참으로 독특했던 연극 '인형의 집'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줄거리



주인공 노라는 남편 토르발의 사랑을 받는 아내이자, 세 아이의 어머니이다. 토르발은 노라를 ‘어여쁜 종달새’, ‘귀여운 다람쥐’라고 부르며 그녀에 대한 아낌없는 애정을 표한다. 하지만 사실 노라를 향한 그의 감정은 그저 가사에 충실하며 자신의 말에 복종하는 외모가 뛰어난 아내를 가졌다는 만족감이 전부였다. 그에게 노라는 하루 종일 쿠키를 입에서 떼지 못 하며, 취미라고는 쇼핑 뿐인 천박한 여자일 뿐이었다.


노라에게는 한 가지 비밀이 있다. 남편인 토르발이 아파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때 고리대금업자이자 은행에서 일하는 크로그시타에게 거액의 돈을 빌렸던 것. 심지어 차용증에 아버지의 서명을 날조하기까지 했다. 그 이후 다행히 토르발의 건강은 나아져갔고, 그는 노력 끝에 은행장이 된다.


은행장이 된 토르발은 크로그시타의 평소 행실을 문제삼고 그를 해고시키려 한다. 이 사실에 격노한 크로그시타는 노라에게 남편이 자신을 해고하는 것을 막지 않으면 이 사실을 알리겠다고 협박한다. 노라가 토르발에게 그를 해고하지 말라고 사정하지만, 토르발을 그 부탁을 외면한 채 크로그시타를 해고시켜 버린다.


모든 것을 잃은 크로그시타는 악에 가득 차서 토르발에게 편지를 남긴다. 당신의 아내는 거액의 돈을 빌린 빚쟁이이며, 아버지의 서명을 날조한 사기꾼이라는 말이 담긴 편지였다. 노라는 편지를 읽은 토르발이 자신을 감쌀 것이라 확신했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그랬음을 알고 오히려 미안해 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히도 노라의 예상은 빗나간다. 편지를 읽은 토르발은 노라를 거짓말쟁이, 사기꾼, 천박한 여자라 매도한다. 노라는 깨닫는다. 자신은 그저 예쁘고 아름다운 작은 종달새였다. 자신은 그저 예쁘게 꾸며진 인형이었다.


후에 노라의 비밀을 폭로한 것을 후회한 크로그시타는 노라에게 차용증을 다시 돌려준다. 그리고 차용증을 돌려받은 토르발은 그제야 노라에게 말한다. 걱정하지 말라고. 가장인 내가, 남자인 내가 다 책임지겠다고.

 



“이제는 스스로 사고하며,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



자신이 다 책임지겠다는 남편의 말에 노라는 덤덤하게 말한다. 나는 이제 내가 직접 생각하며 내가 생각한대로 살아가겠다고. 더 이상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지 않다는 말도 덧붙인다. ‘당신은 당신 대로 살아갔을 뿐이야. 당신이 태어나서 살아온 방식대로.’ 어떠한 원망도 없다. 어쩌면 그녀는 인형놀이에 길들여진 아내의 모습에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숨기고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난해하다. 그런데 공감이 간다.



연출가들은 말한다. “예술에는 정답이 없다. 그저 관객의 주관적인 감상만이 존재할 뿐.”


그래서 나는 내 주관적인 감상으로 과감히 말할 수 있다. 대중성이라곤 1도 없다. 몰입하는 순간 빠르게 관객과의 거리를 유지한다. 갑자기 현대무용을 하고, 갑자기 대본을 읊더니, 갑자기 이유모를 오브제들이 등장한다. 필연적이지 않은 많은 것들의 개입으로 모든 상황이 필연적으로 느껴진다.

 

오브제의 사용이 정말 흥미롭다. 특히나 무대에 수시로 등장하는 양철통이 그랬다. 통 위에 서서 흔들림에 두려워하며 노라는 위태로웠다. 통을 던지며 온몸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는 크로그시타 또한 다른 의미에서 참 많이 위태로웠다. 타인을 절망에 빠뜨려야 자신이 회생할 수 있음을 잘 아는 자의 위태로움이 담겨있었다.


움직이는 침대의 사용 또한 흥미롭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침대에 앉아 꾸며진 미소로만 이야기하던 1막의 노라는 완벽한 인형이었다. 그랬던 그녀가 2막에서는 침대를 벗어나 양철통에 서서 대화를 하고, 3막에서는 마침내 뛰어다니고 소리를 지르며 자유로워진다. 안전한 보호막은 사라졌지만 온전히 스스로 사고하는 법을 배웠을 노라. 침대는 그런 노라의 변화를 가장 극명히 드러내는 오브제였다.




뻔하다. 그런데 지루하지 않다.



난해한 요소들과 예상 가능한 스토리가 결합하면 뻔한 것도 신선해진다. 때때로 남녀가 역할을 바꿔서 연극을 이어간다. 특히나 3막에서 크로그시타의 편지를 받고 절규하는 토르발 역의 이기돈 배우와 그 옆에 서서 안절부절 못 하며 울먹이는 노라의 정운선 배우가 역할을 바꾸었던 것이 가장 인상깊었다. 남녀가 바뀐 노라와 트로발의 연기 후로, 똑 같은 장면이 다시 한 번 이어진다. 이번에는 남녀가 바뀌지 않은 채로. 인형의 집은 전달하는 메시지가 아주 분명한 연극이다. 남자가 여자의 우위에 있다는 것을 아주 당연한 사실로 여기는 사회에 대항하며 불편함을 전한다. 남녀가 역할을 바꾸는 장면은 이러한 부조리를 너무나도 극명하게 드러내며 미러링하고 있다.



모자이크 인형의 집.jpg
 


쉽지 않다. 쉬워서 호탕하게 웃어넘기며 그 순간의 즐거움에 충실할 수 있는 극이 있다면, 계속 어딘가 찜찜하고, 이해하기 어렵지만 각각의 불분명하게 해체된 의미들을 꿰 내고 싶어 지는 극이 있다. 인형의 집은 너무나도 명백히 후자였다. 여운이 많이 남는 극이다.



[유다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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