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 가을, 제법 저녁 바람이 쌀쌀해 질 무렵, 학교 근처 체육관에 열린음악회 녹화를 하는데 꽃미남 아이돌 밴드 FT아일랜드가 온다는 얘기를 들었다. FT아일랜드의 팬클럽인 프리마돈나의 회원인 친구 두 명과 함께 학교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을 빠지고 그곳에 달려갔다. FT아일랜드의 무대는 가장 마지막 순서였다. 그날 녹화의 오프닝 무대는 바로 크라잉넛이었다. 첫 곡으로 대중적으로 히트한 '말 달리자'를 불렀는데, 그 무대를 보고 나는 이미 이 밴드에 반했다. 반한 이유는 첫째, 그들이 생각보다 젊고 잘생겼다. 사춘기 소녀한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 둘째, 무대를 진정으로 즐기는 그들의 모습이 멋있었다. 밴드의 라이브 무대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무대 말미에 온몸으로 베이스와 기타를 쳤던 한경록과 박윤식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즐거워 보이는 표정과 강렬한 일렉 기타의 사운드, 무대를 말 그대로 '달렸던' 그들의 에너지는 나뿐만 아니라 내 옆에 앉아있던 프리마돈나 두 명마저 크라잉넛의 팬으로 이끌었다. 두시간 동안 자리를 지켜 FT아일랜드의 무대까지 봤으나 집에 와서 머리에 남은 것은 오로지 크라잉넛의 무대였다. 다음 날 아침 담임선생님께 보충수업을 빠진 것에 대해 크게 혼났지만, 그날은 내 열일곱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이후 나는 크라잉넛의 앨범과 콘서트 DVD를 사고, 그들이 펴낸 책까지 사 읽었다. 그 책이 바로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심지어 나는 대학도 그들의 영향으로 왔다. 크라잉넛의 보컬 박윤식이 다녔기 때문에 알게 된 대학에 진학했고, 대학에 와서 처음 간 락페스티벌은 라인업에 크라잉넛이 있는 것만 보고 동기들을 직접 모아 함께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그들과 사진도 찍고 싸인도 받고 대화도 나누었으며, 무대의 맨 앞줄에서 그들의 모든 노래를 따라 불렀다. '덕질' 3년 만에 나름 '성공한 덕후'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크라잉넛의 '덕질'을 멈추었다.
고등학교 3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산 시기이다. '공부 못하는 아이'로 낙인찍혔던 중학생 시절이 암흑기였다면, 고등학생 시절은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었으며, 대부분의 친구와도 잘 어울렸다. 재수 없이 들리겠지만, 정말 공부와 노는 것 모두 잘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 원동력은 바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입학했을 당시에는 '무시당하지 말자'라는 목표가 있었다. 중학교 때 한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는 백 등 안에도 못 드냐?" 10년이 지났지만, 그 친구의 이름, 표정, 목소리, 그 상황의 모든 게 생생하다. 나는 자존심이 세다.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 말은 나에게 자극제가 되었고, '백 등 안에도 못 들던 애'가 바로 다음 시험에서 50등 안에 들게 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자격지심이 생긴 상태였다. 다시는 그런 무시를 당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다. 고등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담임선생님의 눈빛에서 그 친구에게서 받았던 느낌을 받았다. 그저 내 착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오로지 그 무시를 갚아주겠다는 생각만으로 공부했고, 첫 시험에서 반 1등을 했다. 그렇게 초반에는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목표가 있었고, 크라잉넛 공연을 본 이후에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수도권 대학에 진학해서 크라잉넛의 공연을 직접 자주 봐야겠다는 목표였다. 정말 나는 이 생각 하나만 가지고 공부를 해서 결국 크라잉넛 멤버가 다녔던 대학에 진학했다.
보통 학생들은 원하는 직업을 얻기 원활한 대학과 학과를 목표로 공부한다. 하지만 나는 그저 수도권 대학이 목표였고, 학과는 대학마다 모두 다른 학과를 지원했다. 그렇다고 내가 가고 싶었던 학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꿈이 정말 확실했다. 바로 국어 교사와 여행 작가다. 국어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 나는 국어 선생님을 꿈꿨다. 동시에 세계 여행에 대한 꿈을 이룰 수 있는 여행 작가도 꿈꿨다. 따라서 국어교육과 및 국어국문학과를 희망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 때, 존경하는 국어 선생님들께 이를 말씀드렸더니 모두 나를 말렸다. 그 사실은 나한테 충격이었고 큰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수시 여섯 군데는 모두 어문학과들이 아닌 곳들을 지원했다. 결국 갈 수 있는 대학에서 그나마 재밌어 보이는 학과를 급하게 선택했고, 합격해서 다니게 됐다.
중학생 시절이 암흑기, 고등학생 시절이 황금기라면 내 대학생 시절은 방황기라고 할 수 있다. 학창시절 내내 확실하게 꿈꿨던 국어 선생님과 여행 작가라는 꿈은 문화경영학과라는 생뚱맞은 학과에 진학하며 잊혔다. 관심이 없으니 이해가 되지 않는, 의미 없는 공부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토록 원했던 크라잉넛을 만나고 나니 더는 크라잉넛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다. 한편, 대학 생활 자체는 재밌었다. 각기 다른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과 서울 곳곳을 쏘다니는 것, 미팅, 연애, 동아리, 술, 문화생활, 각종 대외활동 등 고등학교 때와는 전혀 다른 신세계가 펼쳐졌다. 매일매일을 놀았고, 그렇게 앞일을 생각하기보단 현재를 최선을 다해 즐겼다. 3학년 때는 더 재밌다는 이유로 복수전공을 하던 문화콘텐츠학과로 전과를 했고, 역시 관심이 간단 이유로 시각 정보디자인학과를 부전공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뭘 하고 싶은지를 몰라, 일단 현재 흥미 있는 것들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때그때 재밌다고 느껴지는 것들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채워왔다.
유시민 작가의 <어떻게 살 것인가> 책 리뷰를 한다고 해놓고 내 인생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펼친 것은, 바로 이 책을 읽고 위의 흐름대로 내 인생을 되돌아봤기 때문이다. 이 책의 맨 첫 장인 '제1장 -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저자는 크라잉넛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언급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기서 나는 한대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다. 크라잉넛을 지난 4년 동안 잊고 살았는데, 인생의 방황기에서 해답을 얻고 싶어 찾은 책에서 만난 게 크라잉넛이라니! 바로 내가 고등학생 시절을 황금기로 살게 해 주었던 그 자극제가 아닌가. 한때 나의 세상에서 가장 큰 부피를 차지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타자를 통해 전달받으니 느낌이 묘했다. 더불어 잊고 있던 내 고등학생 시절도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