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국가의 권력에 맞서 보여줄 수 있는 개인의 용기에 대해서 <어쩌나, 어쩌다, 어쩌나> [연극]

-내 멋대로 생각해보는 리뷰-
글 입력 2018.11.04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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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권력에 맞서 보여줄 수 있는

개인의 용기에 대해서

<어쩌나, 어쩌다, 어쩌나>

-내 멋대로 생각해보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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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에겐 어떨지 모르겠지만, 연극은 내게 좀 어려운 존재다. 단순 재미만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어떤 의도적인 메세지를 담고 있는 연극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그동안 연극을 관람하면서 무얼 말하고 싶은거지?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었고, 왜 저렇게 연출했을까? 궁금할 때도 있었다.

연극 <어쩌나, 어쩌다, 어쩌나>의 경우는 그 중간쯤이라고 해야할까. 연극이 담고 있는 메세지도 그리고 연출도 이해가 될 것 같다가도, 극 곳곳에서 의문이 생기는 건 어떻게 설명하지.. 리뷰를 쓰기 전 고민이 많았다. 어쨌든 고민 끝에 내린 결론.

<어쩌나, 어쩌다, 어쩌나>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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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시민이라니, 아이러니하군!

우선, 때는 1980년. 소시민 김두관에게 '용감한 시민상'을 주기 위해서 이오구는 억울하게 강도 누명을 쓰게 된다. 자연스럽게 휘둘러지는 폭력에 저항 한번 하지 못하고 애국가, 자연헌법을 줄줄 외워야만 하는 김두관이 받는 상이 '용감한 시민상'이란다. 아이러니하다. 이오구는 출소 후 자신이 '쪼다'가 아님을 증명받기 위해서 얼떨결에 용감한 시민상을 받은 김두관을 찾아가고, 칼로 그의 배를 찌르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이름도 이오구라니, 자꾸 '호구'로 들리는 건 나만 그런걸까?)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기껏 용기를 낸 것인데, 그 대상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거다. 이 역시도 아이러니하다.

개인이 모여 국가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 국가에는 어쩔 수 없이 통치자가 등장하고, 국가 권력이라는게 만들어진다. <어쩌나, 어쩌다, 어쩌나>는 국가의 권력에 맞서 보여줄 수 있는 개인의 '용기'에 대한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껏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어떠한 국가 권력에 의해 개인이 억압받을 때 그 개인은 용기를 내왔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개인은 약자이기 때문에 집단으로 뭉쳐 싸워야만 했다.


이 연극의 배경이 되는 1980년 대한민국 사회상을 생각해보면(물론 난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긴 하지만.) 국가 권력이 한참 잘못된 방식으로 작동하던 때가 아니었던가. 소시민 김두관과 이오구 두 명은 1980년대 국가 정권에 의해 이용당한 개인을 대변한다. 이 연극은 국가를 향해 용기를 내지 못하고, 철저히 이용당하다 끝내는 제대로된 윤리적인 판단마저 상실하게 되었던, 그 당시 대한민국의 모습을 꼬집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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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말미의 배경에 해당하는 2016년으로 돌아와서야 김두관과 이오구는 촛불을 든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을 보며 깨닫는다. 맞서 저항하고 용기를 내 싸워야할 대상은 바로 국가권력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국가권력이 만든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려 애를 쓰면 쓸수록 수렁에 빠졌던 두 사람이 30여 년이 훌쩍 지나서야 진정한 '용기'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다행이라고 느끼면서도 슬펐다.



재밌지만, 이해하기 어려웠던 연출 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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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나, 어쩌다, 어쩌나>는 최치언 작가의 특유의 블랙 코미디가 잘 살아있는 연극이다. 김두관을 쫓아다니며 한번만 칼로 찌르게 해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상황, 이오구를 피해 김두관이 찾아가 절에서의 불상 그리고 요가하던 스님과 시골의 약국에서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설명을 늘어놓던 약사까지. 아이러니한 상황과 곳곳에 자리잡은 웃음포인트는 관객들을 웃음짓게 했다.(물론 씁쓸한 웃음이었다.)

그러나 극 중간 중간 이해할 수 없는 연출들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교차하며 보여준 북한 군사의 모습이었다. 김두관과 이오구가 두 번째로 이용당하는 '귀순용사 및 자수간첩 기자회견' 장면을 위해 나온 것 같지만 굳이 꼭 필요한 설정이었나 싶다. 오히려 극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된 건 아닌지.

또한, 이 연극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의 독특한 구조를 십분 활용한 무대 동선이 돋보였는데 극 후반 관객석에서 진행될 때는 배우들의 모습을 따라가며 관람하기가 좀 힘들기도 했다. 배우를 더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누군가에겐 좋을 수도 있지만, 나의 경우에는 오히려 극 몰입도가 깨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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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연극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무언가 '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점이다.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스토리나 연출에서 많은 욕심을 부렸다는 게 느껴졌다. 1980년대 군사정권, 간첩, 귀순용사, 북한, 그리고 현재의 촛불집회와 같은 소재는 소모감이 크다. 관객 입장에서는 하나의 연극 안에서 이 모든 소재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기에 매우 피곤한 일이고, 사실 매일 매일이 다이나믹하고 극보다 더욱 극적으로 바뀌는 한국 사회에서 '촛불집회'라는 것도 조금은 철(?)이 지난 소재처럼 여겨진다.

<어쩌나, 어쩌다, 어쩌나>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잘 알겠다. 그런데 극 후반까지 관객의 집중력을 잘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메세지를 조금 더 컴팩트하고 쉬운 설정으로 전달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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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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