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서운 추위. 10월의 끝자락과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지만, 아무튼 매서운 추위를 몰고 온 날이었다. 저번 주 까지만 해도 얇은 옷차림으로 한강에 가곤 했는데. 우리 작년 이맘 때에는 뭘 입고 다녔지? 이러다가 가을이 없어지겠어. 간만에 만난 친구와 공연장으로 향하는 내내 갑자기 추워진 날씨 얘기를 나누기 바빴다. 추운 날씨에 반항이라도 하듯 얇고 짧은 옷을 입은 나는 이내 후회를 했다. 아직 감기가 다 낫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2시쯤에 공연장에 도착했다. 페스티벌이니까 가서 맛있는 것도 사먹고 주변도 둘러보자-하는 기대감에 들떠 그렇게 되었다. 아이돌의 콘서트를 보러 가곤 했던 잠실 콘서트에서 진행되는 페스티벌이라니, 그 모습이 상상이 되질 않았다.


처음 도착했을 때, 솔직하게 말하자면 꽤나 당황스러웠다. ‘역시 우리가 너무 일찍 도착한 게 맞나봐.’라고 말하며 친구와 나 모두 당황한 기색을 숨길 수가 없었다. 부스들이 마련되어있는 야외나, 공연장 내부 모두 휑했다. 아이돌 콘서트가 진행될 때는 그렇게 커보이던 공연장이었는데. 공연장의 절반가량만 사용해서 내부가 좁게만 느껴지는데도 사람이 몇 없는 것이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F&B 부스가 하나도 마련되어있지 않았다. 한 켠에 마련되어있는 테이블 존에도 테이블들이 모두 쓰러져 있었다. 이 마저도 힙하네, 페스티벌 이름이 ‘레드문’인 데에는 이유가 있나봐, 라고 말하며 우리는 저녁이 오기를 기다렸다.


프로듀서로서의 그루비룸만 보다가 디제잉을 하는 그루비룸의 모습을 처음 보게 되어서 색달랐고, 그들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가 있었다. 우디고차일드와 식케이의 무대는 늘 그랬듯 그들만의 젊고 힙한 감성이 느껴졌다. (아쉬운 점은 아직까지는 대중적인 인지도가 없어서 사람들이 잘 따라 부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래도 친구와 내가 가장 크게 따라 부르며 신나게 즐겼다.)

셋의 무대가 끝난 뒤 제시가 등장했다. 앞서 등장했던 셋보다 호응이 확실히 컸다. 역시 대중적으로 유명한 탓이겠지. 관객들도 점점 흥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어느새 많아진 사람들을 비집고 나와 밖으로 향했다.
밖으로 나오자 갑자기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 느껴졌다. 그냥 ‘사람들’은 아니었다. 백설공주, 슈퍼 마리오, 피 흘리는 귀신, 경찰, 목이 찢어진 환자 등 하나같이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양해를 구하질 못해 사진을 함부로 찍지 못했다.) 이제야 할로윈이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매서운 추위도 잊을 만큼 열기가 가득한 날이니까, 그 열기 사이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들뜨고 기뻤다.
가지각색의 모습을 한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들은 집에서 분장을 하고 온 걸까, 라는 궁금증이 들 때쯤 공연장 내부에서 관객들에게 분장을 해주는 부스를 발견했다. 처음 우리가 도착을 했을 때는 줄이 길지 않았는데, 그 때 분장을 할 걸 그랬다. 끝없이 이어진 줄을 보고 계속 후회하기 바빴다. 특별한 분장을 한 사람들 사이에 있던 우리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들이 눈에 띄었을 텐데. 분장을 하지 않은 우리의 모습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꽤 오랫동안 후회로 남을 것 같다.


힙합 페스티벌이나 다른 뮤직 페스티벌에는 자주 참여했지만, 패션 페스티벌에 참여한 것은 처음이었다. 패션이라는 분야를 잘 알지 못해서, 이번 SFF는 새로운 도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쉽게도 친구와 나는 할로윈을 맘껏 즐기지 못하고 일찍 집으로 향했지만, 아무튼 할로윈 밤에 딱 걸맞은 축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맘껏 분장을 하고, 맘껏 즐기고 놀 수 있는 페스티벌이었다. 다음에는 꼭 따뜻한 옷을 준비해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는 꼭 레옹 분장을 하고 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