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엄청난 추위로 맞은 레드문 페스티벌 [공연]

축제는 사람 구경하는 재미
글 입력 2018.11.03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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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7일에 진행되었던
할로윈 레드문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엄청난 추위


잠실실내체육관은 종합운동장역에 내려서 쭉 걸어가다보면 나왔다. 종합운동장이라는 9호선의 마지막 역을 처음 가봤는데, 급행을 타고 가니 집에서 40분도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빨리 도착했다. 사람들이 다 뭔가 선물로 보이는 것을 들고 지하철로 들어가길래 뭐가 끝났나? 뭔가 특별한 행사가 있었나? 지하철을 내릴 때부터 호기심을 자극했다.

페스티벌 그 자체보다도 추위가 너무 강렬했던 날로 기억에 남는다. 남자친구랑 일주년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날인데, 일년 전의 이때즈음과 비교하면 전혀 다른 나라의 날씨같았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때 추위를 많이 타서 내복에 니트에 코트까지 입고 있었지만 더워서 코트를 벗을 정도였고, 남자친구는 긴팔셔츠를 반팔로 접어올린 정도로 더워하고 있었는데, 일년 후의 날씨는 마치 겨울처럼 우리 둘다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나는 일년 전과 같은 옷을 입고 갔기 때문에 날씨가 얼마나 추웠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밖에서 사진을 찍기도 힘들었다. 사진부스마다 사람들이 와글와글거려서 줄을 꽤 서야했는데, 추위에 지쳐 레드문 페스티벌이라는 곳 한 군데에서밖에 찍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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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도 엄청난 줄을 기다려서 찍었다. 이 추위에도 분장을 하고 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해리포터 분장을 하고, 마법학교 스타일로 길고 검은 망또를 입은 여학생들과 해그리드 분장을 한 사람이 가장 특이했다. 좀 더 파격적인 포즈를 취해주기를 바랬지만 다들 추웠는지 소심한 포즈밖에 나오지 않았다. 수녀복을 입고 온 사람도 있었고, 그 추위에도 가터벨트를 메고 경찰복을 입은 사람들 등 다들 코스프레를 하고 왔다. 우리는 안 꾸미고 가길 잘했다고 얘기했다. 어중간하게 꾸몄다간 더 이상해보일 것 같았다.

할로윈 레드문 페스티벌의 대표색은 보라색과 핑크색이 섞인 오묘한 색깔이었다. 사진으로는 잘 잡아내기 힘든 그 색깔은 할로윈 호박의 색깔도 아니고, 사탕의 색깔도 아닌 이상한 색깔들이 그라데이션도 아닌 기괴한 조합으로 뭉쳐있어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아마 그런 신비로운 느낌을 주려했던 것 같다.



<레드문>의 의미


어쩌면 저 이상한 색깔이 의미하는 것이 축제의 제목인 <레드문>과 관련되어 있지는 않을까 방금 번쩍 생각이 들었다. 레드문이란, 글자 그대로 붉은 달을 의미한다.




붉은 달 하면 개기월식이 떠오르는데, 개기월식이란 우주에서 태양 - 지구 - 달의 순서가 될 때 태양에서 나오는 빛들 중에서 푸른 빛들은 굴절되어 보이지 않고 붉은 빛만 달에서 반사되어 지구로 보이는 현상이다. 그러나 보통 개기월식의 붉은 달은 red moon이 아니라 blood moon 또는 super moon/blue moon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일부러 다르게 말을 한 건가 의아하기도 하고, 전혀 관계가 없는 추측인가 싶기도 하다.

더군다나 축제가 열렸던 10월 18일은 음력으로 보름도 그믐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날이라서 그런가 더욱더 축제의 이름의 의미를 알 수가 없다.



잠실실내체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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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실내체육관은 가운데에 일자로 열십자로 된 무대가 있고, 스탠딩석이 있었다. 그리고 스탠딩석과 2층 사이에 무대를 정비하는 음향기기, 컴퓨터들을 다루는 사람들이 앉아있었고, 2층, 3층으로 되어있었다. 불편했던 점은 스탠딩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양옆으로 2개만 있다는 건데 일일이 표를 검사했다는 것이다. 아마 무단으로 침입하지는 않을까하는 마음일텐데 안그래도 한사람 지나가기도 힘든 계단에서 그렇게 후레쉬를 켜고 손목을 확인하니 더 막히고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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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는 또 보니까 손목 확인을 안 하던데 그렇게 할거면 처음부터 하지말고, 그냥 계단을 위에 그려진대로 확 뚫어버리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그러면 계단에서도 선택적으로 서서 이야기를 하거나 앉아있거나 좀 더 다양한 동선이 제공될 것 같은데 왜 굳이 스탠딩과 2층을 그렇게 막아놓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모든 축제에서 열린 스탠딩을 할 수는 없겠지만 일시적으로 넓은 계단을 설치하면 안 되는 거였을까? 좀 자유롭게 왔다갔다 할 수 있다면 사람들도 더 흥에 취했을 것 같아 공간 설계 자체가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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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의 무대와 패션쇼가 번갈아


레드문 페스티벌의 특징적인 점은 가수의 무대와 패션쇼가 번갈아가면서 열리는 거였다. 그래서 남자친구가 처음부터 걱정한 게 "가수들이 무대를 달궈놓고, 패션쇼로 식는 거 아냐?"였다. 그런 걱정이 조금은 당연하게 들린 이유는 라인업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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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 레드문 : 서울패션페스티벌 홈페이지 타임테이블


제시의 무대 뒤에 패션쇼 GREEDILOUS가 이어지고, 선미의 무대 뒤에 O!Oi의 무대가 이어진다. 그 패션쇼 뒤에는 DROPGUN의 디제잉 EDM의 무대와 그 뒤엔 또 패션쇼 D-ANTIDOTE가 나온다. 무대를 달궈놓으면 식고, 다시 달궈놓으면 식고 이런 패턴으로 될 것 같아 조금은 걱정스럽기도 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SIK-K와 WOODIE GOCHILD의 무대가 한참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제시의 무대가 펼쳐졌다. 가수를 가까이서 직접 본 거는 싸이밖에 없어서 스탠딩석에서 제시를 그렇게 가까이서 보니 너무 신기했다. 진짜 TV에서 보는 거랑 똑같이 생겼는데, 노래를 할때와는 다르게 평소의 말투는 또 귀여웠다. 제시는 그렇게 팬들에게 악수도 해주고 셀카도 같이 찍어주면서 20분을 보내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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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가 찍은 사진


에디터로서 본분에 충실하지 못하게 사진은 한 장밖에 찍지 못해 남자친구에게서 사진을 몇 장 받아서 올린다. 다음부턴 이러지 않기로 반성한다. 공연을 볼 때 핸드폰을 끄고 봐도, 주최측에서 공연 사진을 보내주니 그게 습관이 되었던 듯하다. 안타깝게도 머릿속에만 남아있는 장면들이 너무 많다.

패션쇼가 시작되면 열기가 사라질거라는 예상과는 반대로 사람들은 전혀 빠지지 않고 패션쇼를 관람해서 정말 잘 보이지가 않았다. GREEDILOUS 패션쇼는 굉장히 난해했다. 강렬한 원색과 기하학적인 패턴을 사용했다. 평범한 옷들에 원색이 더해지고, 거기다 패턴까지 더해지니 절대 일상복으로는 입지 못할 옷들을 모델들이 입고 파워워킹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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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역시 남자친구가 찍은 사진이다. 오른쪽에 시선을 강탈하는 분장이 보이는데 그 사람은 잠시 잊고 패션모델을 보면 역시나 눈에 띄는 패턴들이 보인다. 노란색과 검정색으로 대비를 주어 강조한 옷도 꽤나 보였고, 양복도 그랬다. 주로 클래식한 옷들에 기하학적 패턴과 강한 원색을 넣어서 더욱 더 강한 이미지를 주는 것 같았다.

모델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화장을 했다. 생김새는 다들 달랐지만 눈꼬리를 올리고, 눈 밑에 반짝이는 은색깔로 빛나는 화장을 했던 점이 특이했다.

같은 패션쇼였지만, 뒤에 이어지는 O!Oi의 무대와는 또 너무 달랐다. 모두가 패션 모델같이 고고했던 무대와는 다르게 O!Oi의 패션쇼는 우선 스트릿패션이었고 친숙했다. 모델들도 전문 모델이 아닌 듯이, 워킹 중에도 웃고 손을 흔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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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쇼라고 하면 다 하나같이 조용하고 꼿꼿할 줄만 알았는데 그 편견을 깨는 무대였다. 후리스, 집업, 패딩, 와이드팬츠를 입은 사람들이 왔다갔다 했다. 생각보다 예쁜 옷들이 많아서 일상적으로 입고 다녀도 무리가 없겠다 싶었다. O!Oi패션쇼는 마침 선미 무대 다음이라 사람들이 꽤 많이 빠져나갔는데도 많은 사람들의 환호성 속에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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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DROPGUN의 디제잉도 이어졌다. 흥이 넘치는 EDM에 맞춰서 사람들이 들썩들썩했다. 그런데 그 흥이 장기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1-2분 정도 이어지다가 다시 가라앉았다가 해서 보는 사람들이 민망할 정도였다. 우리나라는 술이 없으면 흥이 나지 않는다고 남자친구가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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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할로윈 레드문 페스티벌에 입장할 때 19세 미만은 입장 불가라고 해서 대학교 축제처럼 술을 파는 부스가 이어지거나, 아니면 좀 과감한 의상의 패션쇼를 할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이 전혀 없어서 왜 19세 미만은 입장 불가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었다. 할로윈 칵테일을 판매한다던지 그랬으면 조금 더 흥이 나고, 할로윈 페스티벌만의 특별한 아이템이 되었을 것 같아 아쉬웠다.



23년 인생, 처음 할로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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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옛날부터 행사를 잘 챙기지 않았다. 그래서 명절도 평일이랑 늘 비슷했고, 크리스마스도 생일도 별로 다른 게 없었다. 그래서 전에 말했듯이 남자친구가 내 생일을 챙겨준 게 그렇게 특별했던 것이기도 하다. 어린이날은 그냥 마트에 가서 어린이 특별 패키지를 받아오는 게 끝이었고 가족 여행은 20년 인생에 단 한번도 없었다. 당연히 할로윈을 챙긴 적도 없다. 특별한 날도 없는 그냥 그저 그런,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일상이 길게 이어져오고 있었다.

이번에 아트인사이트 덕분에 처음으로 할로윈이라는 이벤트를 챙겼다. 막 엄청 흥분되고 떨리고 흥에 겨워서 춤을 춘다거나 코스프레를 한다거나 그러지는 않았지만, 또 그렇게 평범하지도 않을 하루. 축제가 되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직접 눈으로 봤던 하루. 추운데도 추위를 이겨내고 무언가를 본다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직접 찾으려고 했던 하루.

어떤 의미일까. 직접 축제를 가본다는 것은? 축제 그 자체가 즐겁다기보다는 사람들을 보면서 즐거웠다. 다들 평소라면 하지 못할 복장을 과감하게 입고 와서 그 추위에도 덜덜 떨면서 기다려서 인생샷을 찍고 돌아갔다. 축제가 끝나면 클럽에 가서 먹고 마시며 즐거운 토요일 밤을 즐긴다. 어쩐지 모르게 그런 평범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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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는 잘 가지 않는데, 너무 추워서 식사 후 카페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메리카노를 즐겨마시는 우리 커플이지만 이 날 따라 우유가 잔뜩 들어간 라떼와 초코가 조금 들어간 카푸치노가 그렇게 맛있었고, 평소에 걱정하는 인슐린 저항성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와 좋은 시간을 맞이할 수 있게 해준 아트인사이트에 또 한번 감사하는 하루.


[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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