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도망칠 수 있는 세계에서 도망칠 수 없을 때 [공연]

발이 땅에 닿지 않을 때 오는 공포는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글 입력 2018.11.02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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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공포를 느끼기 위해 놀이기구를 탄다. 공포감이 뇌하수체를 자극하여 아드레날린이나 도파민이 분비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스트레스를 감소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착각을 통해 조작된 공포가 인체의 자기방어기제를 통해 곧 쾌락으로 바뀐다는 점을 공략한 것이다. 그렇다면 놀이기구의 어떤 점이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유발하는 걸까? 개인차가 있겠지만 나는 아무래도 발이 땅에서 떨어질 때 가장 큰 공포감을 느낀다.


가령 자이로드롭을 탈 때, 아직 아무 것도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나는 단지 발이 공중에서 흐느적대고 있는 사실만으로 공포를 느끼곤 한다. 가장 높은 데에서 멈추어 있을 때, 내려갈 듯 말 듯 조금씩 속도를 가속할 때, 빠른 속도로 하강할 때 모두가 긴장감을 유발하는 요소들이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의 공포감이 배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발이 땅에 닿아 있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강아지를 비롯한 반려 동물을 품에 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을 품에 껴 안고 다니는 것을 즐기는 주인과 달리 동물들은 안기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발이 땅에 닿아 있지 않다는 바로 그 점 때문이다. 그들은 달리기에 적합한 동물들로 외부의 위험에 노출되었을 때 되려 공격하기보다는 도망을 빨리 갈 수 있도록 진화되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의식보다는 본능에 의지하는 그들에게 외부는 항상 위험이 잠재되어 있는 곳이고, 그렇기에 그들은 언제라도 도망갈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어야 안심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런 그들을 안아 들어 올린다는 것은 그러한 ‘도망가려는 본능’을 억지로 막아 두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도망갈 수 있는 세계에서 억지로 분리되는 것. 바로 이 점에서 공포는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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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예로부터 어머니로 비유될 만큼 우리가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 위에서 인류는 어디로든 갈 수 있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세계를 구성하는 3요소인 물, 흙, 공기 중에서 주체가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멈춰 있어도 멀쩡히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은 흙 위 뿐이다. 물 속에서는 숨을 쉴 수 없고 공기 중에선 끊임없이 날개를 움직여야 한다. 즉 땅에서만 모든 존재가 비로소 자유 의지를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자유 의지를 통해 자신의 이기심을 최대한으로 충족할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기심은 대체로 보다 안정적인 생명이자 삶을 보전하기 위한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땅은 어느 방향으로든 뻗어 있고 어떠한 공간 과도 연결되어 있다. 곧 땅이란 늘 돌파구를 포함하는 곳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발만 땅에 붙어 있다면 우리에겐 거대한 땅 위에서 안전한 공간으로 도망 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땅에서 태어난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는 본능이다. 의자에 앉을 때 높이가 높아 발이 바닥에 닿지 않을 때 느끼는 사소한 불안함조차 그 증거가 될 수 있다.


땅은 우리의 도피처이고 안식처이다. 정확히 말하면 도망칠 곳이 존재하기에 안심할 수 있는 세계이다. 의지할 수 있는 안전 지대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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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도망갈 수 있는 세계에서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은 더 큰 공포로 다가온다. 명주잠자리의 유충 개미 귀신은 모래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그 속에서 개미는 더 이상 도망칠 수 없게 된다. 그가 개미를 먹기 위해 만드는 개미 지옥은 끊임없이 무너지는 모래 무더기로 그 위에 서 있는 객체는 발이 땅에 닿아 있음에도 결코 도망갈 수 없다. 경사면을 따라 미끄러지는 모래 사이 발이 그 속에 잠겨 들어가서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봉쇄해 버리기 때문이다. 걷는다는 것은 땅을 기반으로 한 가장 일상적인 행위임에도 이 위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해진다. 그렇게 의지하던 세계에게 갉아 먹힘을 인지한 객체는 공포감을 느끼지만, 오히려 포기하지는 않는다.


지금껏 당연히 의지해 왔던 세계의 전제가 무너질 리 없다는 희망을 가지기 때문이다. 계속 이 땅 위에서 걷는다면 도망칠 수 있을 거라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개미는 전진한다. 그러다가 결국 점점 더 깊이 잠식되어 개미 귀신의 먹이가 되는 것이다. 진정한 공포는 그것을 관조하는 관찰자에게 찾아온다. 그 속의 주체는 발이 땅에 붙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안심하게 되기에 그것이 도망칠 수 없는 세계라는 걸 끝까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 발생한 주체의 희망 앞에서 관찰자는 무력해진다. 그의 생명을 건 발버둥이 결국 먹힘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 진정한 공포의 순간이다.


발이 땅에 닿음에도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은 무너지는 세계와 마주하는 일이다. 사는 게 개미지옥 같다는 말. 우리가 그 말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간접적인 공포는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시놉시스>


"개미지옥 알아요?
여기서 사는 게 꼭 그거 같아요."


100년 된 고택이 있는 한 마을. 문화재연구소 연구원들은 이 마을에 갑자기 흰개미가 출몰했다는 소식을 듣고 더 큰 피해를 막고자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날은 석필의 집을 살펴보는 날이다. 대형 교회의 목사 석필은 교회 내부의 시끄러운 상황으로 머리가 복잡한 상태다. 헌데 연구원들이 흰개미 피해 여부를 살피겠다며 불시에 집에 들어온 모습을 보니 석연치가 않다.

잠시 후, 묘령의 여인 지한이 석필의 집을 방문한다. 만난 기억조차 없는 그녀가 자신을 만나기 위해 찾아왔다는 이야기에 석필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난감하다.

그런 석필에게 지한은 15년 전 이 집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석필은 그동안 잊고 있던 집의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기획 노트>


서울시극단(예술감독 김광보)은 지난 11월 '2018 서울시극단 정기공연 창작대본 공모'를 통해 최종 선정된 황정은 작가의 창작극 〈사막 속의 흰개미〉를 11월 9일(금)부터 25일(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선보인다. 황 작가는 2017년 연극 〈오리온〉을 시작으로 2017년 음악극 〈멘탈 트래블러〉, 연극 〈미녀와 야수〉의 각색과 2017년 연극 〈생각보다 괜찮은〉, 〈우리는 처음 만났거나 너무 오래 알았다〉를 집필했으며, 이번 〈사막 속의 흰개미〉를 통해 "인간과 자연에 대한 깊은 사유와 자신만의 독특한 연극성을 일구어온 새로운 작가"라고 평가받고 있는 신진 작가이다.

창작극 〈사막 속의 흰개미〉는 흰개미 떼의 서식지가 되어버린 100년 된 고택을 배경으로, 미스터리한 자연현상에 의해 무너져가는 집의 실체와 이를 감추려는 사람들의 팽팽한 긴장감을 파고드는 밀도 있는 연출로 우리 사회를 투영한다. 극심한 가뭄으로 메말라가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수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고택의 주인이자 대형교회 목사인 석필은 이 집의 미스터리한 현상이 흰개미 떼의 페어리 서클(fairy-circle, 아프리카 사막에서 발견되는 둥근 원)이라며 집안을 살피는 곤충 연구원 에밀리아를 만난다. 죽은 아버지 공태식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석필에게 묘령의 여인 지한이 찾아오고, 되돌릴 수 없는 15년 전 그 날의 이야기가 밝혀진다.

〈옥상밭 고추는 왜〉, 〈함익〉, 〈줄리어스 시저〉, 〈그게 아닌데〉 등 통찰력 있는 해석으로 모던하고 감각적인 연출을 보여주는 미니멀리즘의 대가 김광보 연출이 이번에는 신진 작가의 창작극을 통해 또 한번 관객을 사로잡는다. 김광보 연출은 "집을 갉아먹고 있는 흰개미와 무너져가는 고택은 마치 우리 사회가 지닌 불안과 위태로움, 허위와 가식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밝혔다. 또한 이번 작품은 〈옥상 밭 고추는 왜〉로 한국문화공간상 무대디자인부문을 수상한 박상봉 디자이너가 무대를 맡아 무너져가는 고택의 공간과 분위기를 사실감 있게 만들어내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일 예정이다.

고택의 주인 '공석필' 역은 뛰어난 연기력으로 최고의 실력파 배우라 인정받고 있는 김주완이 맡았으며, 이를 파헤치는 '에밀리아 피셔' 역은 매 무대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최나라가 맡았다. 석필의 아버지 '공태식' 역은 굵직한 연기선을 보여주는 강신구가, 어머니 '윤현숙' 역은 무대와 방송을 넘나들며 주목받고 있는 백지원이 함께 호흡을 맞춘다. 묘령의 여인 '임지한' 역은 천의 얼굴로 섬세한 연기를 펼치는 황선화가, 문화재연구소의 총괄 관리감독 팀장 '노윤재' 역에는 대한민국 대표 베테랑 배우 한동규가, 그리고 문화재연구소 인턴사원은 내일이 기대되는 신예 배우 경지은이 열연한다.

세종S씨어터는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다양한 예술작품의 기획과 제작이 가능한 300석 규모의 블랙박스형 공연장으로 10월 18일부터 11월 3일까지 개관 페스티벌을 진행하며, 11월 9일부터 서울시극단의 〈사막 속의 흰개미〉를 공연한다.





사막 속의 흰개미
- 세종S씨어터 개관기념작 -


일자 : 2018.11.09(금) ~ 11.25(일)

시간
평일 - 오후 8시
토 - 오후 3시, 7시
일 - 오후 3시
화 - 공연없음

장소 :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티켓가격
R석 30,000원
S석 20,000원

주최
(재)세종문화회관

주관
서울시극단

관람연령
만 13세이상

공연시간
100분




문의
서울시극단
02-399-1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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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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