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오늘 우리, 꼭 친구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CYR14 내한공연 밤하늘의 트럼펫
글 입력 2018.10.25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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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꼭 친구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CYR14 내한공연 밤하늘의 트럼펫 


Review 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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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를 3분 앞두고 공연장에 도착해서 주위를 제대로 둘러 보지는 못했지만, 흘끗 살펴보니 생각보다 다양한 연령층이 온 것 같았다. 게다가 객석에서 이따금씩 일본어가 들리는 걸 보니 일본에서 찾아온 관객까지 있는 것 같았다. 다행히 무대가 잘 보이는 중간 자리에 앉아 빠르게 무대를 둘러봤다. 기타와 베이스, 드럼과 키보드, 그리고 중앙에 보컬을 두는 기본적인 밴드 구성이, 이 밴드는 대신에 트럼펫을 두겠지만, 익숙했다. 암전이 되고 100분 가까이 되는 유쾌한 공연이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치히로 야마자키 + 루트14밴드입니다!”




CYR14밴드



서투른 한국말로 자기 밴드를 소개하는 5인조 밴드를 보고 든 첫 느낌은 ‘밝음’이었다. 멤버 모두 한국말로 인사와 자기 소개까지 준비하는 철저함에 먼저 놀랐고 아직 다 외우지 못한 대사는 노트를 펼쳐 확인하는 당당한 모습에 또한번 놀랐다. 그런가하면 자신의 이름을 꼭 기억해달라고 하고는 멋지게 문워크까지 선보이던 타고난 무대기질의 기타리스트 ‘미즈’는 아마 몇년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걸그룹 여자친구 노래의 일본 가사를 미즈가 썼다고 하니 작사에도 일가견이 있나보다.



[아티스트 이미지]Chihiro Yamazaki 2.jpg
 


“오늘 우리, 꼭 친구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한 손에 트럼펫을 든 그녀가 당당하게 말하는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밝은 표정으로 이번에 새로 나온 Ain’t no distance앨범을 꼭 사달라는 이야기에 정말 그들의 앨범까지 사고싶어졌다. 소개를 끝마치고 연달아 3곡 정도씩을 연주하고, 잠깐 쉬다가 또 3~4곡을 연주하고를 반복했다. 다른 세션도 마찬가지겠지만 트럼펫이 걱정되었다. 어릴적에 클라리넷을 1시간 이상 불면 입에서 쥐가 나는 것 같아서 고통스러웠던 기억 때문이다. 내 걱정은 접어두라는 듯, 트럼펫을 든 그녀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트럼펫 소리에서 힘이 빠졌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Ready for the Party



보컬이 없는 밴드가 어떻게 관객과 소통할 수 있을까? 기타를 치는 미즈가 마이크를 잡았다. 화려한 말주변만큼 화려한 랩솜씨를 뽑내며 Ready for the Party을 외치는 이 곡은 정말 그 어떤 밴드보다 신났다.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부추기는데, 사실 아무도 안일어날 줄 알았다. 그런데 다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리듬에 맞춰 몸을 들썩이는데 안일어날 수가 없었다. 사실 어떻게 몸을 움직여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지만 일단 일어나서 드럼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어 보았다. 어린이부터 어른들까지 객석에 있는 모두가 일어나 박수를 치며 즐기는 모습이 낯설지만 즐거웠다.





국적이 다른 이 일본밴드가 가진 말이 없다는 장점 때문에 객석에 있는 모두가 일어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무대 위와 아래의 소통은 언어가 아닌 무언가로 하는 것이라는 걸 직접 느꼈다. 서투른 한국말과 약간의 영어만으로 그 밴드는 딱딱한 자세로 객석에 앉아있던 우리를 유연하게 풀어주었다. 트럼펫의 선율과 밴드 사운드만으로, 게다가 무대 위에서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을 더해 청중들을 신나게 만들었다.


그래도 그들은 우리가 제대로 즐기지 못할까봐 걱정되었는지, 한국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이문세의 붉은노을을 편곡해서 가져왔다. 신디사이저 전주만 들어도 저절로 몸이 들썩이는 그 노래를 함께 할 때가 공연의 절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계획되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간에 치히로 야마자키가 객석 통로로 난입까지 하여 진짜 파티 느낌을 내주었다. 트럼펫을 한 손에 들고 있는 그녀와 하이파이브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밤하늘처럼 서정적인 트럼펫



놀 때 신나게 잘 논다고 해서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사람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다. 이 밴드의 정체성은 일본을 대표하는, 한국과 미국에서도 공연을 계속해온 재즈팝밴드다. 프리뷰에서 소개한 바 있는 ‘Japan’에서는 각자만의 개성이 담긴 솔로 연주를 선보였다. 그 자리에서만 들을 수 있었던 솔로를 이 리뷰로 가져오지 못하는 게 정말 안타깝다. 사실 트럼펫과 함께하는 이 밴드는 서정적인 음악을 할 때 그 장점이 살아난다. 현악기인 기타와 베이스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피아노의 선율과 트럼펫의 멜로디가 선사하는 새로운 형태의 밴드셋 사운드는 CYR14밴드가 밴드 음악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가고 있다는 걸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발라드와 같이 서정적인 곡을 표현할 때 정말 매력있다. 신나는 모습과 대조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관객을 신나게 휩쓸 때보다도 훨씬 더 감정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는 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앨범에 수록된 'Your word'와 'Sprout'에는 감정의 미묘한 흐름을 잘 담아내고 있었다. 공연장에서 라이브로 듣고 집에 와서 다시 음원으로 들어보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아마 이들의 음악을 처음 듣는 사람이라면 쉽게 트럼펫 사운드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이들의 음악을 듣다보니 어쩐지 우리나라 밴드 '자우림'이 떠올랐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무대를 사로잡는 모습이, 연령대가 비슷하면서 또 노련한 그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뷰에서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즐겁게, 오랫동안 음악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썼던 기억이 난다. 아마 지금도 음악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그리고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내게도 꽤 큰 힘을 주는 공연이었다고 생각한다. 공연장에서 봤던 CYR14밴드는 네가 하고싶다면 얼마든지 해도 된다고 말해주었고 에너지를 주었다. 다음 내한 공연이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오늘 우리, 친구가 되었으니 다음번에 다시 반갑게 만나길 바란다.



[손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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