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통합예술치료의 좋은 사례집, 불안에서의 자유

글 입력 2018.10.24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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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미술치료 실습 중 사진


[Review]

통합예술치료의 좋은 사례집

불안에서의 자유



대학교 2학년 때였나, 아마도 창의성 수업이었을 것이다. 지도하는 선생님이 귤을 느끼라 했다. 눈을 가리고 귤 껍질을 몸에 문대고, 냄새를 맡고, 알갱이를 터뜨려 먹으라 했다. 눈만 감았을 뿐인데, 갑자기 없는 계단을 밟은 것 처럼 내가 아는 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귤이 뭐 별달리 다른 존재로 변한 것은 아니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귤의 표피가 일어나 손에 달라붙고 달달한 냄새가 났지만, 귤은 분명 귤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나는 귤을 눈으로 느껴왔다. 아니면 미약하게 다른 감각이 뒤섞인 시각에 의존한 경험의 축적에 의존했다.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데, 그냥 그 순간 '귤'이라는 존재는 공허했다.


공허하다는 것이 빈약함이나 초라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건, 수많은 내 감각의 총체였고, 너무 가득차있어서 나에게 역설적으로 비어있었다. 귤은 내가 만들었다. 내 기억, 내 감각, 내 정서. 외부의 물질이 내가 짓지 않은 이름, 그러니까 '귤'이라는 단어의 정의로 달고 왔는데도, 귤의 정체성과 경험은 내 몸과 정신 주관적으로 받아들였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귤은 공허하다. 그것을 공허하지 않게 만든 것은 나의 모든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 개인이 팔을 뻗은 그 작은 영향력이 모두 그 개인의 삶이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하나의 작품이다. 흔하디 흔하고 그 뻔한 생각이 그날은 내 머리를 유난히 후드려 쳤다.


나는 그것이 인간의 삶같다고 생각했다. 외부의 경험은 우리의 껍데기를 치고 나갈 뿐이다. 그것을 삶으로 만드는 것은 늘 자아였다. 그리고 그 총체적 경험을 이해하기엔, 우리의 감각은 터무니없이 연약하다. 프로이트가 위대한 개척자일 수 있는 것은 그가 의식 너머의 무언가를 향해 노를 저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의식 너머의 세계에 의해 움직이지만, 그 감각을 정확히 통찰하고 이해하는데 낯선 기분을 느낀다. 정서는 존재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마음 깊은 곳에 숨는다. 그래서 우리가 삶이라 의식하는 것들은 생각보다 몇가지 감각에 의해서 지배당한 결과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유를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익숙하기 때문이고, 그것을 파헤치는 것은 종종 삶의 균형을 엉망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정신이 삶에 적응하게 만든 결과다. 그것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서 삶이 성숙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때로 우리는 '왜 나는 이곳에서 살아 숨쉬는가', '나는 왜 아등바등 살아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마주치게 되는 법이다. 수많은 선인들이 구원의 답을 다양한 곳에서 찾았던 것처럼, 우리가 해답을 구할 방법은 수만가지다. 나같은 경우에는 예술에서 찾았다. 내가 그리건, 외부의 작품을 감상하건 내 안에 끓어오르는 것은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이 되었다. 내가 그토록 예술치료에 감동을 받았던 것도, 내 안에서는 온갖 추악함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아름다운 무언가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의 삶은 이미 우리 안에서 하나의 작품으로 걸려 있었다. 아무리 아름다운 조각품들도 봐주는 이가 없으면 먼지가 쌓여지듯이, 그 안에서 숨겨지고 가려졌기 때문에 빛을 잃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안으로부터의 자유>가 민 캐치프라이즈가 마음에 와닿았다. 헤세가 데미안의 구절을 통해 우리에게 말했듯이, 우리 모두는 자유의 신 아브락사스에게 날아가기 위해 알을 깨는 존재다. 땅을 뚫고 새싹을 틔우는 민들레나, 나비가 되기 위해 고치를 찢고 나오는 애벌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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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의 거대한 에너지가 여러 작품이 되어 날아오르는 것을 보는게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내담자의 에너지 뿐만 아니라 저자의 노력을 구경하는 것도 감동적이었다. 나는 종종 여러 매체를 활용한 중재가 내담자의 집중을 다소 흐트려놓지 않을까 고민했는데, 오히려 다양한 방식으로 적절한 자극을 준 것 같아 보였다. 정말 다양한 분야를 엮어 프로그램을 기획했는데, 읽는 내내 내가 '통합예술치료'를 얼마나 국한된 영역으로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사실 개인적으로는, 읽으면서 이 중재 프로그램 기획력 자체보다는 그 안에서 저자의 적절한 반응이 큰 힘을 냈다고 생각한다.


좀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갔을 것 같은데, 글로 옮기는 과정의 한계로 전부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나는 때로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해 불가능한 일이라곤 생각하지만- 성공적인 상담회기가 녹취되어 출판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책들이 더 많아져 심리상담의 문턱이 좀 더 낮아졌으면 좋겠다. 또한 창의적인 수업기획과 연구자로서의 열정이 보여서 재미있었다. 서로 믿는 모습이 작품에서 묻어나왔다. 상담회기가 끝나갈 때 헤어지는 것도 중요한 이슈가 되었을 것 같다.


내담자의 불안 문제를 다루기에 앞서, 불안에 대한 심리학적인 설명을 제시하는 것은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좋은 서두가 되었을 것 같다. 캐치프라이즈에 맞춰 하나의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다 읽고 난 후에는 왠지 모르지만 심리치료 사례 모음 하나를 본 기분이 들었다. 사실 이 책이 <통합예술치료 개론> 수업의 실습 참고도서로 나와도 위화감이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어렵지는 않고 저자의 감수성을 잘 살려 저술되었지만, 사례모음집을 발견했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심리치료 과정에 관심을 가진 독자를 대상으로 한다면 좀 더 그 이야기를 풀어 쓰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책의 소개문을 읽으면서 좀 더 대중적인 서적을 기대했기 때문에 이 점이 많이 아쉬웠다. 하지만 이런 점들을 거르고, 책을 읽는 과정이 좋은 여정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고, 심리상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나름대로의 초대장을 내민 책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종종 생각이 날 때 참고하게 될 것 같다. 그 무엇보다도 내담자의 용기와 저자의 전문가로서의 열정이 돋보여 멋진 책이었다.



저 자 : 홍지영
규 격 : 신국판 변형(152×225)

쪽 수 : 212쪽

출간일 : 2018년 9월 27일

정  가 : 14,000원

ISBN  : 979-11-85973-40-1(03120)

출판사 : 도서출판 따스한 이야기

문의 : 김현태 (070-8699-8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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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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