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스스로를 찾기 위한 치열한 시간 [사람]

글 입력 2018.10.22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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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중 겨울을 가장 좋아한다. 가을이 지나고 느껴지는 겨울의 냄새와 분위기가 좋다. 한없이 차갑고 추울 것만 같지만 겨울의 햇살과 눈에서 느껴지는 따스함과 고요함도 좋다. 한 해가 벌써 다 지나간다며 투정부리게 하지만 그럼에도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기다리게 만드는 겨울이 좋다.


일본 영화 특유의 담담함을 좋아한다. 크게 꾸미지 않아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만의 소박함과 담백함이 좋다. 그렇기에 더 진실 되고 조용히 마음속에 스며드는 일본 영화가 좋다.


그렇기에 내가 리틀포레스트: 겨울과 봄을 좋아하는 것은 아마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두 가지가 만났으니 말이다. 올해 초, 리틀 포레스트가 한국에서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원작을 먼저 보자라는 생각에 처음으로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내게 많은 생각을 가져다주었다.




리틀포레스트2: 겨울과 봄



영화의 주인공인 이치코는 도시를 떠나 쫓기듯 자신의 고향 코모리로 다시 돌아온다. 그 곳에서 홀로 자급자족하며 열심히 농사를 짓고, 직접 농사지은 작물들과 채소, 그리고 제철마다 풍족하게 선물해주는 자연의 선물로 매일 정성껏 식사를 준비한다. 이렇게 매일매일 열심히 살아가는 이치코에게 그녀의 소꿉친구 유타는 말한다.


“있잖아, 혼자서 열심히 살아가는 거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한편으론 제일 중요한 뭔가를 회피하고 그 사실을 자신에게 조차 감추기 위해 ‘열심히’ 하는 걸로 넘기는 거 아닌가 싶어. 그냥 도망치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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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치코의 독백이 이어진다. “난 아무말도 못했다. 파란빛과 먹구름이 반으로 갈린 하늘을 봤다. 내 상태랑 똑같아. 그냥 열심히 살면서 스스로를 포장하여 본질을 피해서 도망치는게 아닐까. 하지만 나는 그 무언가에도 열심이지 않다.”


이 장면을 본 순간, 내게 겨울의 포근함이 아닌 매서움이 다가온 것만 같았다. 대학에 진학 후 원하는 학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마냥 기뻐 열심히 학업에 임했다. 매일같이 주어지는 과제와 시험 속에서도 그저 열심히였다. 어느 날은 주변의 사람들이 내게 말했다. “내 주변에서 너처럼 바쁜 사람은 처음 봐. 넌 정말 열심히 사는 거 같아”라고 말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나의 기분은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나 자신조차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영화 속 염장 채소가 주제로 나오는 부분에서 이치코는 이러한 말을 한다. “다들 일년내내 먹지만 난 ‘카바네 야미’라 항상 모자란다. ‘카바네 야미’란 게으름뱅이를 말한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나의 몸은 그 누구보다 바빴지만 생각만큼은 카바네 야미 즉, 게으름뱅이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저 상황이 계속해서 주어지니 그 상황에 열심히 임했지만, 그 속에는 나의 생각과 중심이 존재하지 않았다.




코코 카피탄: 오늘을 살아가는 너에게



그렇게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시작으로 시작된 생각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계속 생각하고 고민했다. 그리고 코코 카피탄을 만나게 되었다.


지난 8월부터 대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나는 코코 카피탄, 오늘을 살아가는 너에게(Coco Capitán: Is It Tomorrow Yet?)> 전시는 세계적인 브랜드 및 매체가 주목하고 있는 영 아트 스타 코코 카피탄(Coco Capitán)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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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전시실에는 구찌와 코코 카피탄이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그 중 하나인 노란색 구찌 후드에는 'I want to go back to be-living a story'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이것을 한국말로 번역한다면 ‘이야기를 믿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번역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는 동화 같은 세상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어린 시절에서 벗어나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실망감과 상실감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이는 정말 전시를 보기 전까지의 내 상태를 대변해주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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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4학년이 되면서 이제 정말 사회에 나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작은 사회라고 불리는 대학을 떠나 나의 미래를 준비하고, 대학생이라는 울타리를 떠나 진짜 사회로 발을 내딛어야 하는 시간이 정말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과연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인지, 미래의 나는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불안감이 크게 느껴진다. 그리고 한 없이 따뜻했던 엄마 품에 안겨 하루를 보내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실현 불가능한 꿈에 집착하게 된다. ‘이야기를 믿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라는 코코 카피탄의 글귀와 딱 맞아 떨어지는 현실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은 내게 여전히 무서운 존재이고, 육체적인 나이는 먹어가지만 정신적인 나이는 제자리에 머물러있는 내 자신을 보며 괴리감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나를 코코 카피탄은 그녀의 또 다른 글귀로 다독여주었다.




“다른 사람이 잘하고 있다고 해서 네가 못하는 것이 아니야.

너는 잘하고 있어. 단지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을 뿐.”



리틀 포레스트를 시작으로 안이 비어있다는 생각을 달고 다녔던 나를 이 글귀가 어루만졌다. 끝없는 경쟁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은 불가피하다. 당장의 대학수업만 하더라도 경쟁의 장이다. 이런 경쟁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 본인도 모르게 지치게 된다. 스스로는 괜찮다 생각하고, 경쟁이 곧 일상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속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모르고 외면한 채 조금씩 지쳐간다. 그리고 이를 그저 ‘열심히’라는 단어로 감추었다. 무엇 하나 잘하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나를 찾아오고, 이러한 내가 앞으로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나를 덮쳐올 때마다 이를 지우기 위해 그저 무엇이든 열심히 해왔다. 하지만 코코 카피탄은 말한다. 남이 잘 한다고 해서 내가 못하는 것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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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내 삶에 있어 열심히, 그리고 잘 하고 있다. 다만 자신감이 없을 뿐이다. ‘Tomorrow is now yesterday.' 그리고 내가 두려워하는 내일은 지금 그저 어제가 될 뿐이다.




“다양한 생각들과 기억, 감정들은 나를 구성하는 전부야.

스스로를 알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시간들은 그 무엇보다 중요해“


 

3층의 전시는 그녀가 자라오면서 느낀 수많은 감정적 충돌들과 그녀 스스로를 치열하게 탐구한 시간들을 담은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녀는 스페인 남부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10대에 런던으로 이주하여 영국식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고 한다. 서로 다른 문화는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게 했고, 그녀가 믿는 것과 사회가 바라는 것 사이의 차이를 발견하게 하며 가치관의 혼란과 셀 수 없는 감정적인 충돌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그녀는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다.


2층의 전시를 통해 위로를 받았다면, 3층의 전시를 통해 하나의 해답을 얻은 것 같았다. 내게 없었던 것, 부족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의 나는 미래에 어떻게 먹고 살 것인지, 무슨 일을 할 것인지 등과 같은 삶과 관련된 생각들로만 가득 차 있었다. 물론 이러한 생각과 계획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해 나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정작 그 삶을 살아갈 주체인 내 자신을 알아가는 것에는 소홀했던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내 자신은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것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러한 상태에서 계속 스스로를 채찍질만 해왔으니 지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녀의 전시를 보고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바라보는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타인에게 보여지고 싶은 나는 또 어떠한 사람인가.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삶은 어떠한 삶인가. 하는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내 자신을 알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졌다.


그동안 다양한 생각들과 기억과 감정들이 나를 구성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 스스로를 알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지도 않았다. 내 자신에게 너무나 소홀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에 대한 질문들로 가득하다. 이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열심히 꿈을 쫓는 사람들. 그렇게 살아가는 너를 응원해.

그러한 노력은 오지 않은 내일보다 ‘오늘’을 살 수 있게 할 거야”



코코 카피탄은 이번 전시를 통해 아티스트이자 한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쏟은 고민과 노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치열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나는 1시간이면 둘러 볼 수 있는 크지도, 그렇다고 너무 작지도 않은 이 전시를 통해 나를 발견하고 위로를 받고, 그리고 해답을 향한 길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보낸 응원의 메시지를 제대로 받아간 것이다. 그 여운이 나를 떠나지 않아 몇 번이고 2층에서부터 4층을 오르내렸는지 모른다.


앞서 말했듯이 이번 전시는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용기를 얻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녀가 보낸 응원을 온 몸으로 받아들였고, 개운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릴 수 있었다. 4층 전시실에 있던 8미터의 대형 핸드라이팅 작품은 긴장과 두려움, 불안의 감정 속에서 물방울보다도 작을 수는 있지만 이로써 세상의 전부가 될 수 있는 모두의 노력과 그로 인한 우리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긍정의 가치를 발견케 한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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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포레스트에서의 이치코는 마을을 떠났지만 결국엔 다시 돌아온다. 이번에는 도망치는 것이 아닌 본인의 선택으로, 웃는 얼굴로 말이다. 리틀포레스트의 이치코처럼, 코코 카피탄이 전한 응원처럼 아주 작지만 세상의 전부가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중심에 내 자신이 있기를 소망한다.



[김태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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