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는 것의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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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전쯤 저에게는 새로운 식구가 생겼습니다.
새로운 식구는 꽃기린이라는 화초로, 우연히도 종려주일에 예배를 마치고 어머니와 시장을 보던 중에 눈에 띄어서 샀던 이 꽃의 꽃말은 "고난의 꽃, 고난의 깊이를 간직하다"로 일명 예수님의 꽃으로 불린다고 했어서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이 꽃의 빨갛고 조그마한 꽃잎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구매했었는데 날이 추워서인지 꽃잎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걱정이 되기 시작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결국에는 모든 꽃잎들이 다 떨어지고 볼품없는 줄기와 초록색 이파리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내가 사랑을 덜 준 것인가, 내가 주는 사랑을 덜 받은 것인가, 환경이 열악해서인가,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가
여러가지로 제 신경은 애지중지하던 꽃기린에 쏠려서 한동안 많은 고민들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어느 날 한 가지 깨달음이 들었습니다.
그래, 꽃을 피우지 못해도 괜찮아. 일단 살아있기만 하면 돼. 꽃은 언젠가 또 피울 수도 있을테고, 설령 피우지 못하더라도 살아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 지는 알 수 없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당시 여러가지로 좌절되었던 많은 꿈들, 내 노력들, 내 시간들에 대해서 아파했었기 때문에 내 처지와 닮은 꽃기린에게 살아있어주기만 하면 된다는 위로와 위안의 말을 건네주고 싶었나 봅니다.
물론 아직도 꽃(성공)을 피우고 싶은 마음은 버리지 못하고 제 마음을 가득 채우곤 합니다. 하지만 꽃이란 것은 원래 주기적으로 피고 지는것이라는 마음을 항상 갖곤 합니다. 피울 시기가 있다면 질 시기가 있는 자연의 순환은 저에게 큰 위안이 됩니다. 그러나 그런 순환의 전제 조건은 일단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생명력을 잃어버린 식물(삶)은 당연한 말이지만 꽃의 개화를 기대한다는게 어불성설이지요.
삶이 녹록치 않아서 힘겨운 분들이 많아보이는 요즘입니다.
내 타고난 재능이 부족해서, 환경이 열악해서, 나를 사랑해주는 이가 없어서,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이가 없어서,
이런 이유들로 삶의 의욕이 없고 무기력해지다면 힘을 내시진 않아도 좋습니다. 다만 계속 살아가주세요. 살아있기만 하다면 또다시 힘을 낼 수 있는 시기가 오고 사랑할 수 있는 시기가 오고, 예상치 못하게 다시 꽃을 피울 수 있는 시기가 찾아오리라고 확신합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소중하니깐요. 마치 저의 꽃기린처럼요.
아, 그러고보니 저의 식구 꽃기린은 저에게 한 가지 더 깊은 교훈을 주는 것 같습니다.
"고난의 꽃, 고난의 깊이를 간직하다."
힘들고 지친 고난의 깊이를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견디어내서 꽃을 피워내는 자양분으로 삼는 꽃기린에게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래, 꽃을 피우지 못해도 괜찮아. 일단 살아있기만 하면 돼. 살아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
[장세호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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