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헤비 리스너 배순탁 작가님과의 헤비한 만남 [사람]

글 입력 2018.10.16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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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헛헛함을 달래주는 그녀의 드라마, MBC 김지현 PD"라는 제목으로 전공 수업에 오셨던 김 PD님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9월 28일 특강에서는 너무나 기다렸던 배순탁 작가님을 만났다. 그의 글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작가님은 2008년부터 10년이 넘게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를 맡아오셨다. 본인을 각종 음악, 영화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뿐만 아니라, 예능에도 출연하신 유일무이한 라디오 작가라고 소개하셨다. 재치 넘치는 입담도 작가님의 매력 포인트이지만, 나는 작가님이 쓰시는 모든 종류의 글에 더 애정을 느낀다. 짤막한 앨범 소개나 SNS의 글부터 음악 평론까지 즐겨보곤 한다.


 

 

1. 가까이서 듣는 과거의 음성



작가님께서는 먼저 라디오가 어떤 매체인지 자세하게 설명해주셨다. 첫째, 라디오는 친숙하다. 대규모의 제작진이 참여하는 TV 프로그램과 달리 라디오는 DJ를 포함한 인원이 최대 5명 정도라고 하셨다. 따라서 방송을 하는 주체가 굉장히 가족적인 분위기인 것이다. 이러한 라디오의 분위기는 청취자와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청취자들은 라디오를 들으며 DJ가 ‘一 대 多’가 아닌 나에게 이야기를 해준다고 생각하며 실시간으로 소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취자들은 라디오를 통해 정서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느낌을 받게 된다. 둘째, 라디오는 젊은 시절의 추억을 환기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인 음악을 사용한다. 최신의 것에 예민한 시각과는 달리 청각은 과거에 반응한다. 시간이 흘러도 젊을 때 자주 듣던 음악을 찾아듣지, 그 미래의 신곡을 듣지는 않을 것이라 말씀하셨다. 매우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23살밖에 되지 않은 나도 내 취향에 맞는 노래를 찾기 위해 요즘 나오는 앨범을 들어보기는 하지만, 고등학교 때 듣던 노래를 들으며 그 시절을 추억하는 것을 즐긴다. 셋째, 라디오의 매력은 ‘old-fashioned’하다는 것이다. 라디오라는 매체 자체도 다른 미디어보다 역사가 오래되었을 뿐 아니라, 청취자들도 여전히 과거의 방식인 편지와 사연으로 마음을 전한다. 구식이지만 싫지 않은 이유는 느린 속도에서 오는 안정감과 여유 때문이다.



 

2. 다양한 음악의 속사정



다음으로는 준비하신 음악, 영화 영상을 보여주셨는데, 하나 같이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영상이었다. 먼저 윤종신이 작사하고 김연우가 부른 ‘이별택시’라는 곡의 라이브 영상을 감상하였다. 연인과 결별한 후 택시를 타고 떠나면서 택시 기사에게 말을 거는 형식으로 상실감과 슬픔을 토해내는 내용인데, 매우 일상적인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곡의 온도는 이별의 아픔으로 잠 못 이루는 새벽을 보내는 청취자에게 알맞을 것이다. 이와 같이 사연과 이에 어울리는 음악을 절묘하게 배치했을 때 감정의 수위가 극대화되고, 이렇게 청취자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이 라디오의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하셨다. 때문에 작가님은 라디오가 사양 산업이라는 견해를 뒤로 하고 아직도 미래의 가능성을 믿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가수 이소라의 ‘금지된’이라는 곡을 들려주셨는데 유일하게 처음 접해보는 곡이었다. 도덕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사랑에 빠져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그럼에도 그 사랑을 해보겠다는 내용이다. 윤종신의 가사와는 달리, 또 가요 가사에서는 보기 힘든 매우 특수한 언어로 쓰여 있었다.





검은 밤이 내 진의를 숨쉬게 하면

얕은 잠이 새 밀화를 꿈꾸게 하면

음험한 얘기들 못내 그리고

선행의 시간들 다 멈추니

내 고귀한 이성이 매를 높이 들어

나를 병들게 해 숨이 막히는 죄의식

저 원칙의 엄숙이 자를 높이 들어

나를 미치게 해 줄에 매인 시간들

저기 멀리 새 밀애의 시간이 보이면

이미 여기 내 도덕의 종말이 닥치면

황홀의 머리를 올려 세우고

굴욕의 지옥을 다 볼테니


(후략)



이후로 마이클 잭슨의 완벽주의로 90번이 넘는 믹싱 과정을 거친 ‘Billie Jean’과 영국의 Glastonbury 축제에서 콜드플레이가 선보인 ‘Fix You’의 라이브 영상을 보여주셨다. ‘Fix You’라는 곡은 리드보컬이 자신의 아내인 기네스 펠트로가 아버지를 여의고 힘들어할 때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곡이었다. 이렇게 여러 곡들의 뒷이야기를 말씀해 주시면서, 작가님이 자신이 정말 많은 음악을 듣고, 보고, 공부한 결과라고 하셨다. 하지만 작가님은 음악만 공부한 것이 아니라며, ‘나는 깊게 파기 위해 넓게 파기 시작했다.’는 스피노자의 말을 인용하셨다. 대중문화에서는 한 분야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분야를 동시에 섭렵해야 좋은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하셨다. 심지어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거나, 공존하기 힘들어 보이는 양 극단에 대해서도 함께 가져가보자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양립 불가능의 양립 가능성’에 대해 논하셨다.



  

3. 불편함이 낳는 영감



나는 음악영화를 사랑한다. 국내 개봉을 학수고대했던 'A star is born(2018)'도 개봉하는 당일에 영화관에서 보고 왔다. 그러나 예술성이 짙은 음악영화는 대형 영화관에서 상영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지금은 운영하지 않지만 우리 학교의 KU 시네마트랩를 자주 이용하곤 했고, ‘Rudderless(2014)’라는 영화도 그곳에서 만났다. 이 영화는 마지막 반전을 알고 나면 주인공이 부르는 노래를 듣기가 어려워진다. 극의 후반에 그의 죽은 아들이 사실은 총기난사 사건의 희생자가 아니라, 가해자였고 자살했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리고 주인공의 노래가 아들을 위해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춰왔던 비밀을 알아버린 나의 귀에도 그의 노래는 고귀하고 쓸쓸하였다. 작가님께서는 바로 이것이 불편한 것들이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순간이라고 말씀하셨다.






무언가가 양립 불가능하다고 믿는 것은 ‘객관’과 ‘절대’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다. ‘나와 너는 양립 불가능해.’ 혹은 ‘우리 쪽이 순수해.’와 같은 순수주의와도 연결된다. 문화 영역에서는 바로 ‘절대’를 상정하고 순수주의를 고집하는 사고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작가님이 정말 좋아해서 즐겨 듣는 노래라도 진실로 좋다고 말할 증거는 없다.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가치는 없고 결국 수많은 주관이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영역에서는 ‘누가 자신의 주관을 매혹적으로 설득할 줄 아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작가님이 준비하신 영상은 이제 영화로 넘어갔다. ‘라라랜드’의 오프닝 노래 장면을 보여주시며, One-take로 촬영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보이도록 의도한 이유를 고민해보라고 하셨다. 나는 감독이 LA라는 도시의 활기, 낭만, 사람들의 개성을 끊이지 않게 보여주고 싶어서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같은 감독의 이전 작품인 ‘위플래쉬’에서 마지막 공연 장면을 보여주셨다. 이 감독은 ‘위플래쉬’에서는 ‘라라랜드’와는 전혀 다르게 셀 수 없이 많은 컷들을 촬영하여 편집하였다. 그는 인터뷰에서 “악기로 총싸움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즉 마치 전장을 방불케 하는 긴박감과 격렬함을 주기 위한 기법이었다. 왜 이렇게 찍었는지를 알아야 영화와 음악이 제대로 보이고, 그래야 자신만의 매혹적인 주관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하셨다. 음악,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 창작물뿐만 아니라, 대중문화를 배태한 사회와, 이를 연구한 사회학과 인문학까지 시선을 넓히라고 하셨다. 깊이 보기 위해 넓게 공부하라는 말씀이셨다. 그리고 그렇게 공부를 하다가 생기는 불편함으로 어느 한 쪽을 포기하지 말고, 불편함에서 오는 방황을 즐기라고 하셨다. ‘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하기’ 때문이다.




 


 

4. 아이디어에 대한 신화적인 믿음을 버려라.



우리는 또한 좋은 아이디어가 천부적인 창의성에서 온다는 생각, 혹은 그냥 놀다보면 어느 순간 떠오를 거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작가님께서는 전 세계 유명 소설가를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대다수가 소처럼 일한다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소설가라면 으레 낭만과 방탕을 허우적거리다 순간의 반짝임으로 글을 쓸 것이라고 기대하는데, 이는 명백한 편견이었다. “아마추어는 영감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프로는 그냥 일하러 나간다.”는 소설가 필립 로스의 말을 마지막으로 특강은 끝이 났다.



 

5. 작가님의 진심 어린 답변



작가님의 20대 목표는 음악을 그냥 많이 듣고, 타임지를 그냥 보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루 종일 헤드폰으로 록 음악을 듣고, 글자 속에 파묻혀 사는 작가님의 젊은 시절을 상상했다. 따라서 작가님은 스스로 자신이 많은 공부를 했다는 것에 분명 자부심을 느낀다고 하셨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뭐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가?’라고 생각하며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잃지 않으려고 하셨다. 자부심과 겸손은 불가능해 보여도 충분히 함께 지닐 수 있고, 그래야만 하는 삶의 태도라 생각하였다. 나 또한 내 실력에 대한 자만과 과신, 혹은 불안함이 아닌 떳떳함을 가지고 싶다.


좌중질의 시간에 나는 궁금했던 것을 여쭤보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작가님이 걸어오신 길과 닮은 꿈을 꾸는 학생입니다. 음악과 관련한 전문 지식과 고급 정보에 대한 대중의 접근이 용이해지고, 예술가와 대중의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라디오 작가나 음악평론가로서의 존재와 미래에 대해 우려를 표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존재 필요성과 잃지 말아야 하는 가치와 도덕은 무엇인가요?” “우선 어렵지만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아야 해요. 죽기 전까지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평론가보다는 Curator의 존재감이 부각될 거예요. 음원 사이트에서 고객의 취향을 분석하여 곡을 추천해주는 기능이 있는데, 미국에서 이게 제일 잘 나가는 일이에요. 가치를 평한다기보다 맥락을 설명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또 한 번 내 주관을 잘 설득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대중음악의 감상과 해설을 돕고 나누는 것에도 관심을 가지라는 선배님의 따뜻한 격려로 3시간이 마무리되었다.



[최희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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