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당신의 공기엔 물이 몇 퍼센트나 함유됐나요

글 입력 2018.10.14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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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_최종포스터.jpg
 



시놉시스



"괜찮아, 우리 모두는 유기견이야."


저택의 운전기사인 아빠와 둘이 살아가던 중학생 해일은 우연히 유기견 무스탕을 만나 우정을 키우고, 분홍 돌고래 핀핀의 이야기를 웹툰으로 그리며 비밀스런 속내를 도화지 위에 펼쳐나간다.


그 무렵 위층에 이사 온 선영 가족을 만나게 되고, 난데없이 욕을 뱉는 틱 증상에도 애정과 위로를 보여주는 선영의 믿음에 해일은 웹툰 작가의 꿈을 점점 키우게 된다.


그러다 해일은 아빠를 대신해 장강의 반려견 보쓰를 산책시키러 저택에 드나들던 중, 장강과 아빠가 없는 빈 저택의 정원에 영수와 별이, 해일과 무스탕이 드론을 날리러 가는데 뜻밖의 사건이 벌어진다.




외로움 혹은 소외



한 가지 주제만 노골적으로 나와 있는 대본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대본엔 여러 소주제들이 분포되어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른 것도 그 때문이고 연출가에 따라 전혀 다른 연극이 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내가 ‘그 개’로부터 전달받은 감정 혹은 주제는 외로움과 소외였다. 외로움과 소외 중 하나를 고르려 했지만 참 힘들었다. 그 둘의 포함관계를 파악해보려도 했지만 외로움 속에 소외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2. 그 개_영수 선영 별이 무스탕 해일(별이의 생일파티).jpg
영수, 선영, 별이, 무스탕, 해일
-별이의 생일파티-



우리 모두는 유기견



‘그 개’의 모든 인물은 외롭거나 소외되어있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인간적으로 소외되어 외롭다. 인물들은 이 모두에 해당되기도, 몇 가지에만 해당되기도, 그 경계에 걸치기도 한다. 사실 인물들이 느끼는 외로움을 세 개의 카테고리로 자르듯 나눌 순 없겠지만 일단 한 번 나눠본다면 우선 경제적으로 외로운 인물은 해일과 상근(해일의 아버지), 선영과 영수, 그들의 아들 별이, 또 무스탕이다. 반면 장강은 대기업 회장이므로 장강과 보스는 경제적으로 충만하다. 사회적으로 외로운 인물은 의지와 상관없이 욕을 뱉는 틱 장애 때문에 학교에서 소외된 해일이다. 반면 선영은 입시 미술 강사로서, 영수는 수학 보습학원 강사로서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 인간적인 외로움을 느끼는 인물은 곁에 가족이 아무도 없는 장강과 장강으로부터 원하는 사랑을 받지 못하는 보스, 그리고 엄마의 따뜻함을 느낀 지 오래된 해일이다. 모두 버려진 외로운 유기견과 다를 바가 없다.



1. 그 개_ 해일.jpg
 



누구의 탓도 아닌, 그 개 사건



선영은 해일의 틱 증상을 보고도 편견 없이 대하며 미술에 재능을 보이는 해일에게 과외까지 해준다. 그렇게 선영네 가족과 해일 그리고 무스탕은 비슷한 처지의 이웃으로서 서로를 보듬으며 행복에 가까스로 다다르게 된다. ‘그 개 사건’은 해일이 별이의 선물로 드론을 사오면서 시작된다.


행복을 산산조각 낸 사건의 시작 치고는 선의로 가득 차있다. 집 안에서 신나게 드론을 가지고 놀던 별이는 시간이 흘러 더 넓은 곳에서 놀고 싶어 하고 해일은 아빠가 일하는 장강의 저택 정원이 엄청 넓고 좋다고 말해버린다. 아빠에게 허락은 맡았냐고 묻는 영수에게 해일은 실은 허락을 받지 않았지만 잠깐 놀다 가는 것이니 괜찮다고 생각해 거짓말을 한다. 영수는 그래도 망설여져 선영에게 전화를 걸지만 선영은 하필이면 이 때 전화를 받지 않는다. 결국 해일, 영수, 별이, 그리고 무스탕은 장강의 저택에 가게 되고 그 곳에서 보스와 함께 드론을 날리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영수에게 선영의 전화가 걸려온다. 이들은 과납한 보험료 3만원을 돌려받기 위해 해촉증명서를 작성하느라 골머리를 썩히던 중이었는데, 옷장 안에 있는 해촉증명서 양식을 급하게 보내달라는 전화였다. 곤란해 하는 영수에게 해일은 자신이 별이와 개들을 잘 보고 있을테니 다녀오라고 한다. 그리고 사건이 터진다. 보스가 별이를 물어 결국 별이가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별이는 이 때 아마 3살이었다. 드론을 쫓던 별이와 개들이 해일의 시야에서 멀어졌을 때 아마 별이가 보스를 밀치거나 보스의 발을 밟았을 것이다. 또 폭력적인 성향을 갖고 있던 보스는 이성을 잃고 우발적으로 별이를 물었을 것이다.



4. 그 개_보쓰와 장강.jpg
보쓰와 장강



영수와 선영은 자책과 타인에 대한 원망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괴로워한다. 별이의 죽음은 도대체 누구 때문일까. 별이를 물어 죽인 건 보스다. 보스의 잘못일까. 보스는 개다. 보스를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한 장강의 잘못일까. 장강은 이들이 자신의 저택에 들어왔다는 것조차 몰랐다. 그렇다면 해일의 말을 믿고 저택까지 들어온 영수의 잘못일까. 선영이 영수의 전화를 받았다면 그들은 저택에 가지 않았을테니 전화를 받지 않은 선영의 잘못일까. 영수가 현장에 계속 있었으면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영수를 집에 가게끔 전화 한 선영의 잘못일까, 선영에게 잘못된 정보를 준 직원의 잘못일까. 애초에 드론을 사오고 정원에 가자는 제안을 한 해일의 잘못일까. 3만원의 잘못일까.



8. 그 개_영수와 선영.jpg
 


누구 하나 콕 찝어 책임을 물을 수 없지만 안타깝게도 피해자는 너무 많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들은 모두 약자들이다. 별이가 있기에 힘든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었던 선영과 영수의 심경은 말할 것도 없고 해일은 유일하게 자신을 받아줬던 타인인 선영, 영수와 전처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됐다. 장강은 변호사팀을 꾸려 최소한의 합의금을 내놓으며 사건을 무마시켰고 무스탕은 보스의 죄를 뒤집어써 안락사를 당할 위기에 처해진다. 이 사건과 이에 대처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법 앞에서 강자와 약자가 감당해야할 아픔의 크기가 어떻게 다른지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창작극이지만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 법한 너무나 사실적인 이야기였다.




또또를 찾아서



해일의 웹툰 속 분홍돌고래 핀핀은 자기 자신을, 야생마 무스탕은 무스탕을 표현한 것이다. 핀핀은 사람이 되는 저주에 걸리게 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파란 돌고래 또또를 만나야한다. 선영네 가족을 표현한 거북이 가족은 그들을 도와준다. 즉 해일이 그리고 있는 웹툰은 핀핀과 무스탕이 함께 또또를 찾으러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또또는 없어



해일이 설정한 또또라는 파란 돌고래도 분명 현실 세계의 무언가를 표현하고 있다. 또또가 사람이 되어버리는 끔찍한 저주를 풀기 위한 유일한 희망인 걸 보면 해일이 겪고 있는 모든 슬픈 일들을 해결해줄 수 있는 것들, 혹은 해결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 같다.


달달한 이름으로는 이 험한 세상을 살 수 없다는 엄마의 생각에 따라 해일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내 생각대로 해일은 정말 hail이었다. 해일이 원래 다른 이름을 가졌던 유기견에게 야생마를 의미하는 무스탕이란 이름을 지어 준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달달하지 않은 이름도 험난한 세상에선 역부족이었다.



9. 그 개_해일과 무스탕 영수와 선영 장강과 보쓰.jpg
 


해일은 죽을 위기에 처한 무스탕을 데리고 바다로 도망친다. 그리고 그 곳에 무스탕을 놔두고, 버리고 온다. 이 부분에서 해일은 검은 마스크를 쓴다. 또또를 찾는 걸 포기해버린 거다. 무스탕을 바다에 데려간 건 너라도 또또를 찾아 행복해지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이 연극에 공감을 할 수 있었던 건 인물들 덕분이다. 해일의 가족과 선영의 가족은 소시민이지만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들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우리의 주위에서 충분히 볼 수 있는, 또 우리도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다. 또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아서 여운이 더 길게 남았다. 해일의 웹툰을 묘사할 때 나오는 판타지적 연출과 확실히 대비되는 현실적인 내용의 연극이었다. 그리고 파랑색이 감히 끼어들 수도 없는 빨강으로 막이 내린다.



11. 그 개_ 해일(마지막 장면).jpg





<그 개>
- 2018 서울시극단 정기공연 -



일자
2018.10.05(금) ~ 10.21(일)


시간
평일 - 오후 8시
토 - 오후 3시, 7시
일 - 오후 3시
화 - 공연없음


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티켓가격
R석 50,000원
S석 30,000원
A석 20,000원


주최
(재)세종문화회관


주관
서울시극단


관람연령
만 13세이상


공연시간
120분


*


문의
서울시극단
02-399-1114


예매하기



[강혜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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