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신데렐라가 아닌 예술가를 기대하며, 무용극 <궁: 장녹수전> [공연예술]

글 입력 2018.09.30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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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현대인들에게는 감정마저 사치라고들 한다. 모두가 치열하고 바쁜 삶을 살아내는 이때에, 가만히 앉아 깊이 감상하거나 철학적인 사색을 요하는 것들에 대한 거부감은 단연 클 수밖에 없다. 마치 편의점 음식처럼, 간단히 몇 마디의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 그래서 쉽게 몰입하고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익숙하고 자극적인 서사만이 매체를 통해 반복해서 생산되고 감정들은 정형화된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를 둘러싼 언어의 세계 바깥을 느끼는 경험은 즐거움보다도 그 자체만으로 에너지를 요하는 부담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특히나 춤은 언어가 완전히 배제된 장르의 예술이다. 주변에 비해 비교적 다양한 종류의 문화 예술을 경험해왔다고 생각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무용은 이러한 이유로 필자에게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두 달 전쯤인가, 국립 발레단이 주최한 공연 <안나 카레니나>를 관람하면서 생각은 조금 달라졌다. 발레에 문외한이니 세세한 기교나 구성을 논하기는 어렵지만, 연극이나 뮤지컬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 오케스트라의 선율에 맞춰 오로지 몸으로만 표현하는 드라마를 감상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인상 깊은 경험이었다.



장녹수전 상소씬.jpg
 


현재 정동 극장에서 상설 공연 중인 전통무용극 <궁: 장녹수전> 역시, 기존에 연산군의 애첩으로 알려졌던 장녹수를 춤을 통해 재조명한다. 다만 공연에서는 한국 전통 무용을 소재로 하는데, 솔직한 말로 전통 무용은 모던 발레보다도 현대인들의 감각에 거리가 먼 느낌이라 망설여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서양의 발레와는 또다른 매력을 가진 전통 무용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감상을 얻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필자와 같이 전통 무용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을 위해 프롤로그에서는 버나놀이, 콩주머니 던지기 등이 관객 참여형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더불어, 연산군이 신하들의 상소문에 얽매이는 장면에서는 현대 미술의 거장 이성근 화백의 작품이 소품으로 활용된다고 하니, 춤과 미술이 어우러진 복합 예술이 무대 위에 펼쳐지는 순간도 기대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이다.


<궁: 장녹수전>이 필자에게 가장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점은 여성의 서사를 다뤘다는 점인데, 그 어떤 설명보다도 '이 극을 반드시 보아야겠다!' 라고 생각하게 만든 것은 바로 이 한 장의 사진이다.



곤룡포.jpg
 


곤룡포를 입고 춤추는 장녹수라니!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장 오래 된 노예였던 여성들은 욕망하는 법을 배울 수가 없었다. 욕망의 뒤에는 언제나 진보가 따르기 마련이므로, 약자를 억압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욕망을 거세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는 비단 여성 뿐만 아니라 흑인, 식민지 노예, 아이들 등 강자와 약자의 관계에서 언제나 행해졌던 일이다. 그리고 이 구조를 벗어나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여성들은 요부, 마녀, 사탄, 현대에 들어서는 김치녀나 메갈 등으로 불리며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고는 했다. 자신의 욕망 한 점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악명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까지 그러한 악명을 감수함으로써 그나마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 허용되었던 '요부'들 중 누가 감히 곤룡포까지 몸에 걸칠 수 있었을까? 폭군 연산군의 곁에서 속살거리는 요부가 아니라, 권력욕이든 무엇이든 주체적으로 욕망을 내보이는 여성 캐릭터를 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가장 크다.


또한 <궁: 장녹수전>은 그동안 나라를 망친 악녀로만 소비되던 장녹수를 뒤집고 그의 예술가적인 면모를 부각시킨다. 비천한 출신의 장녹수가 무려 왕의 눈에 띄기까지, 이는 비단 뛰어난 미모 뿐만 아니라 비범한 재능을 갖추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공연은 '미모와 재주가 출중했다.'의 한 마디로만 기록되는 장녹수를 예인으로 재탄생시킨다.


역사 속에서, 여성의 재능은 동서를 막론하고 너무나도 쉽게 평가절하된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역사에 이름 한 줄 올려 보지도 못하던 세상에 혜성처럼 등장한 여성들은 인물 자체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잠시 접어두고서라도, 그 능력만큼은 주목할 만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의 재능마저도 기존의 가부장제 사회가 고수해오던 이분법적인 프레임에 갇혀, 성녀로 추앙받거나 창녀로 내던져지는 일이 부지기수다. 최근에야 조금씩 역사 속 여성에 대한 재평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기껏해야 <요부>이지만 <재주>는 뛰어났구나, 하며 관대하게 고개를 몇 번 끄덕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남성중심사회에서는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여성이라 한들 주도적으로 판을 뒤집는 역할을 맡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머리 좋은 정치가여도, 뛰어난 예술가여도 여성인 이상 그 자신의 재능보다도 그들이 (남자들이 짜 놓은)장기판의 말로서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요컨대, 남성 위주로 서술된 역사의 텍스트만을 따라가면 성녀나 창녀 이상의 주체적인 한 인간으로서의 여성을 만나보기란 힘들다는 것이다.



장녹수전 포스터.jpg
 


<궁: 장녹수전>에서는 바로 이 점을 명확히 짚어준다. <궁: 장녹수전>은 그동안 연산군을 홀린 희대의 요부로만 그려졌던 장녹수를 넘어 출신의 한계를 딛고 시대를 풍미했던 예술가 장녹수를 조명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앞서 말했다시피 폭군과 요부의 고루한 서사를 벗어나야만 한다. 공연에서는 우리 전통 무용을 통해 기존에 기록된 역사의 활자 속에서 새로운 모습의 인물들을 읽어내기를 시도한다. 폭군으로만 알려졌지만 사실 역대 왕들 가운데 가장 풍류에 통달했다는 연산군과, 비천한 출신임에도 그의 눈에 들 재능을 가진 예인 장녹수. 언어로 서술된 텍스트 바깥의, 날것의 몸짓을 가져오면서 공연은 남겨진 역사를 뒤틀어 그 이면을 비춘다.


이 점에서, 장녹수를 그저 <조선의 위험한 신데렐라>라고 표현한 캐치 프레이즈는 다소 아쉽다.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그리겠다는 포부 치고는 참 지루한 문구가 아닌지. 본 공연에서는 진부한 신데렐라 서사에서 벗어나, 욕망에 들끓는 인간 장녹수를 보여주길 바랄 뿐이다.


눈과 귀를 사로잡을 감각적인 연출과, 우리 전통 무용의 춤사위, 그리고 드라마와 춤의 연결고리 사이에서 새롭게 태어날 예인 장녹수를 기대하며 짧은 글을 마친다.



[이채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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