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담겨진 메세지를 풀어내기엔 너무 짧은 4초. 4, 3, 2, 1 펑!

글 입력 2018.09.25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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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초 후에 공연이 시작됩니다.

4, 3, 2, 1. 펑!



지난 토요일, 나는 창작집단 LAS의 '우리별'을 보기 위해 서울을 방문했다. 오랜만의 혜화였다. 넘치는 젊은 에너지 속 내가 조금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낯선 분위기와는 다르게 오랜만에 만나는 언니의 반가운 얼굴과 목소리가 익숙하고 편안했던 그런 오후. 때마침 고맙게도 아는 언니가 우리가 볼 공연장 위치를 미리 알아놓은 상태라 손쉽게 공연장을 찾아갈 수 있었는데, 우리가 볼 연극을 공연하는 한양 레퍼토리씨어터는 신경쓰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정도의 작은 입구를 가지고 있었다. 너무나 소중하지만 한눈 팔다가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것들의 이야기를 그린 '우리별'의 창작 의도를 반영하기라도 한 듯 말이다.

사실 이 연극의 팜플렛을 처음 접했을 때, 연극의 컨셉이 완벽하게 이해가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지구가 사람이긴한 것 같은데, 또 달님이 나오고. 그렇다고 또 우주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일상적인 삶의 이야기도 아닌 것 같고 말야. 이해갈 듯 말듯한 설명에 더 끌렸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뭔지 모를 기대감과 함께 막이 오르고, 공연의 모든 부분을 지배했던 4초의 시간 후, 공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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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별'이라는 연극은 랩 형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제외해도 굉장히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지구'라는 이름의 주인공은 실제 이름이 지구이기도 하면서 또 정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뜻하기도 하며, 지구는 작은 원 하나를 기준으로 시간을 마음대로 움직이기도 한다.

단란한 가족들과 보내는 지구의 생일파티, 또 몇년에 한번씩만 만날 수 있는 '달님'이라는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그런 지구의 탄생과 멸망을 모두 지켜보고 있는 학생과 선생님도 등장한다. 독창적이지만 다소 정신없는 우리별이라는 이 연극은 4초라는 시간을 기준으로 역할이 바뀌기도, 극이 시작되기도 하고, 끝나기도 한다.

아, 그런데 이 4초. 공연의 내용을 다 담기엔 짧아도 너무 짧다.

나는 무엇이든지 여백이 있는 것을 좋아한다. 글 사이에 있는 여백이라던지, 사진에 남아있는 여백. 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여백, 주고 받는 말과 말 사이의 거리, 그것이 빈 공간이 아니라 여백이라는 또다른 공간과 의미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여백 없이 꽉찬 대화와 말, 행동은 글쎄, 나라는 사람의 입장에선 조금 피로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내 글에 유독 쉼표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런 내게 우리별은 처음부터 끝까지 알찬 공연이었다. 장면 장면마다 수많은 의미와 비유들, 탄생과 멸망, 삶과 죽음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끊임 없이 전달해주고자 하는 듯 했다. 정말 정교하고 섬세하게 잘 짜여진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뭐랄까. 표현하려고 하는 것들이 너무 가득차서, 내가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을 어떤 하나의 카테고리로 수렴하기가 어려웠다. 필자는 평소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를 좋아함에도 말이다. 너무 많은 이야기들, 쉼 없는 이야기들이 4초를 기준으로 왔다갔다하는데, 그것들이 탄생과 소멸에 대한 어떤 작가의 메세지와 깨달음을 느끼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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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장점은 다른 매체보다 관객들과 더 가까이서 소통하며, 원하는 것을 전달하고 또 전달한 내용을 함께 교감하는 것에 있다. 연극 '우리별'은 관객들에게 전하는 새로운 랩 형태의 방식과 신선함을 선사했을지는 모르나, 관객들과 소통하며 진정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충분히 나누었는가 하는 점에선 아쉬움이 남는다. 조금 더 한가지 이야기에 집중하여 스토리에 대한 밀도를 높였으면 더 큰 감동의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별'의 새롭고도 과감한 시도는 기존 연극의 틀을 깬 의미 있는 행보이자, 연극세계의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여과없이 보여주었다. 익숙하지 않은 것을 생각하는 것은 어렵다. 그것을 실천으로 옮겨 선보이는 것은 더더욱 어렵고 쉽지 않은 일이다. 그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고 새로운 방식의 연극을 도전한 창작 집단 LAS. 열정을 가지고 늘 도전하는 이들의 앞길이 어둠 속에서도 늘 반짝일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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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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