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의미 밖에서 누리는 자유, 연극 < 이방인 > [공연]

글 입력 2018.09.08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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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_포스터.jpg

 
연극 <이방인>
극단 산울림


프리뷰에서 언급했던 궁금증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기록으로써
리뷰를 남긴다.



뫼르소가, 이 소설이 아주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프리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상해서, 두려워서, 무서워서, 낯설어서, 충격을 받아서, 소설을 채 읽지도 못한 채 책을 덮고야 말았었다.

뫼르소는 진짜 이상한 건가? 내가 자라온, 그래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의 기준에서 뫼르소는 이상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개념을 바라보는 시각도, 대상을 대하는 태도도, 나와 내 주변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의 여러 현상과 개념 등과 그에 주어지는 의미, 그리고 이를 연결 짓고 해석하는 방법을 사는 내내 배워왔다. 어떠한 대상이 사회적 맥락 안에서 특정하고 강력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도, 그래서 숭고한 의미를 띤다는 것도 안다. 나는 무엇이 사회적으로 적합한 행동인지를 체득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으로 적합한 행동은 사회가 제시하는 기준을 가진다. 우리의 언행은 그 기준에 맞춰 해석된다. 기준에 맞춰 해석될 때 앞서 말한 사회적 맥락 내에서 의미가 생긴다. 의미는 단 하나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여러 가지 의미가 엮이고 섞이고 연결되어 끝없이 복잡한 동시에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연쇄 상태에 있다.

사회적인 기준은 보편적인 의미를 만들어 낸다. 당연하게 여겨진다. 뫼르소의 행동과 태도를 이에 비춰보면 그가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그의 시각에서 상황을 보다 보면 ‘그러게, 그럴 수도 있을 텐데’ 혹은 ‘그러게. 왜 이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재미있게도 이런 생각이 드는 상황에서는 묘한 해방감까지도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뫼르소가 차이점을 갖는 지점은, 세상이 말하는 의미와 자신의 상황을 연결 짓는 것을 매우 귀찮게 여겼다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뫼르소는 이상한 사람이라기보다는, 내가 살아온 세상을 기반으로 삼고, 나 자신을 중심점으로 한 스펙트럼에서 어느 한 극단 가까이에 있기에 낯선 사람이다. 이상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해할 순 없고, 이해할 순 없지만 마냥 배척할 이유까지는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의 방향을 조금 틀어본다.



억압과 부조리, 실존주의 문학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얕은 수준에서 언급하자니 조심스럽다. 실존주의에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문장과 이와 관련해 들었던 고등학생 눈높이에 맞춘 설명 정도다. 이 문장은 고등학교 재학 시절 윤리 수업을 들었을 때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대단히 인상 깊었던 문장인지, 윤리 과목의 다른 내용은 다 잊었어도 저 문장 하나만은 기억하고 있다.

실존과 본질에 대해 당시 윤리 선생님의 설명을 끌어와야겠다. 선생님께서는 ‘의자’를 예로 들어 설명하셨다. 의자는 앉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다. 앉기 위한 도구가 필요하므로 의자가 만들어졌다. 여기서 앉기 위한 용도가 의자의 본질이 된다. 의자는 의자의 본질이 결정된 후에 실제로 존재하게 된다. 반면 사람은 의자와는 다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일단 실존하고 본다.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다. 먼저 존재하고, 그 후에 삶을 살아가며 개인의 본질이 형성된다.

인간은 물건처럼 애초에 어떤 용도와 목적을 위해서만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태어나기는 꽤나 말랑하게 태어났을지도 모르지만, 커가면서 사회가 제시하는 의미에 맞춰 점점 견고해진다. 인간은 평생을 살면서 자신의 본질을 탐색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회화 과정에서 결국 사회가 정해놓은 테두리 안에 존재하는 의미 안에서 무한히 돌게 된다. 물론 인간이 의미를 재창조해내기도 하지만 이미 큰 틀이 짜인 의미의 연결 속에 억압되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해석한 <이방인>과 실존주의 문학이 만나는 지점은 이 ‘본질’이라는 의미 영역의 어휘다. 이방인은 인간에게 요구되는 본질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의 테두리, 의미의 연결망 구조 안에서 본질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데, 실존하는 개인이 탐색하고자 하는 의미 자체가 세상의 의미 연결망 내에서 용납되지 못한다면 이 사람은 자기 자신의 본질을 설명할 수가 없다.

법정 장면에서처럼 개별적 사건을 엮어 인과적 논리를 구성하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때 형성된 새로운 의미가 사회적으로 선하다고 여겨지는 기준과 멀수록 더 강하게 배척당한다. 이미 세상에 내던져져 실존하는 개인은 자신의 본질을 스스로 증명할 기회조차 거부당한다. 이방인은 이 세상 어디로든지 떠돌지만 어디에서도 억압당하며 어디로라도 완전히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 단 하나 도망칠 구멍이 있다면 결국 세상으로부터의 해방, 죽음뿐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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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산울림, 문학의 언어를 무대의 언어로


원작 소설을 더함도 덜함도 없이 무대 위로 옮긴 듯했다. 상상의 영역에 있는 원작을, 실제 현실 속의 무대로 옮겨낸 극단 산울림의 열정과 노력이 엿보였다. 과함이 없는 무대 연출, 배우들의 독백과 움직임, 그리고 관객의 상상력이 동원되는 조화로움이 돋보이는 공연이었다.

소설 <이방인>은 뫼르소의 1인칭 시점에서 진행되며, 짧고 건조한 문장의 독백이 계속된다. 이 독백은 자칫하면 어색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뫼르소 역의 전박찬 배우만의 흡인력 있는 연기와 대사 조절 덕분에 부담스럽지도 어색하지도 않았다.

작품 속의 문학 언어를 일상 속의 언어로 적절히 변용한 점 또한 좋았다. 레이몽 역의 경우에는 그가 꼭 사용했을 법한 단어, 그가 꼭 지어 보였을 표정과 말투로 연기했다. 때문에 연극을 보는 중에 ‘레이몽 같은 사람이 내 주변에 있으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진작 피했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또한, 소설 <이방인>의 특징 중 하나인 섬세한 묘사를 보다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었다. 바다 풍경, 작열하는 태양빛 등은 묘사하는 대사로 전달되었고, 이에 현실감을 곁들여 주듯 효과음이 활용되었다. 대사의 경우 원작의 문장을 그대로 옮겼고, 효과음의 경우 소리의 남용이 없었다.

연극을 보기 전, 배경을 보다 현실감 있고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시설물을 다양하게 사용할 수도 있겠다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간소한 무대 구성을 취하고 그 구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으로 무대를 진행했다. 오히려 이 점이 좋았다. 구조물이 비어있는 자리에는 뫼르소의 독백 대사가 있었다. 이를 들으며 상상할 수 있었다.

원작이 주는 분위기를 떠올리면서도 연극 무대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을, 관객으로서 실제로 체감할 수 있었다.

*

사회가 나에게 요구하는 질서를 착실히 익혀왔다. 의미의 연결망 속에서 내게 주어진 가치들을 내면화했다. 그러려고 노력하며 살았다. 그중에는 사회의 다수가 최고라 명예롭다 추켜세워도 진정 내가 원하지 않기에 외면하고픈 것들도 있었다. 당연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맹목적으로 믿고 따라야 했던 것들도 수두룩했다. 이런 것들은 사회가 만들어 내게 내주는 부담스러운 과제 같았고, 이럴 때에 나는 의미를 위해 동원된 부품이 된 것만 같았다.

벅찬 과제를 부품으로서의 삶을 피해 본다. 뜨겁고 숨 막히는 의미의 세상 밖으로 슬쩍 빗겨 선다. 의문을 가져본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이방인이 된다. 어색하지만 자유롭다. 잠깐일지라도 태양을 피한 그늘 아래에서 내 스스로 나의 숨통을 터준다. 비로소 나는 그동안 꽉 막혔던 숨을 크게 몰아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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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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