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0대에 관한 '말'들에 대하여 [사람]

그냥 요즘 느끼는 것들
글 입력 2018.09.07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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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연히 유튜브에서 장하성 교수의 2년 전 강연을 보게 되었다. '정의로운 한국 자본주의는 가능한가?'라는 제목의 강연이었다. 제목처럼 이 강연은 정의롭지 못한, 불평등한 한국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진단한다. 그리고 '제대로 된 방향을 가진 정책으로 바로잡을 수 있다'라는 낙관적인 주장으로 결론을 짓는다. 2년 전이지만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그의 관점이 잘 담겨 있었다. 이번 글에서 정책에 대해 이야기 하려는 건 아니다. 그 얘긴 ‘2년 만에 얼굴이 많이 상하셨더라’고 일단락하자.

내가 이 강연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젊은 세대, 즉 20대에 관한 내용이었다. 대한민국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20대로서, 장하성 교수가 진단한 젊은 세대의 문제점을 보며 느낀 점을 말해볼까 한다. 이번 글은 순전히 자기성찰적인 글이다. 대한민국 20대가 어떻다고 정의할 능력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저 내가 요즘 주변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젊은 세대(나 자신)에 대해 성찰한 것들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장하성 교수는 말한다. 현재 한국 사회에 불평등이 굳어진 건 기성세대가 방치했기 때문이고, 안타깝지만 이런 한국의 미래를 바꿀 세대는 젊은 세대라고. 하지만 너무나도 견고하게 굳어진 사회 격차로 인해 젊은이들은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를 하고, 잠깐의 힐링과 행복을 쫓고 있다고. 그들에게 희망을 빼앗은 건 세상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참 많은 생각과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틀에 뛰어들지 말고, 새로운 판을 짜라”는 교수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그리고 이 말은 그 후로도 지겹도록 들었다. 12년 동안 그들이 만들어놓은 틀에서 길들어졌던 나는 슬프게도 이 말을 고분고분 받아들였다. 내 탓으로 돌리고, 스스로를 비하했다. 20대가 사회에 무관심해서 그렇구나, 무기력해서 그렇구나, 투표를 안 해서 그렇구나…. 지금 생각하면 너무 화가 난다. 저런 말도 안 되는 생각들로 스스로의 자존감을 깎아내렸다는 게 화가 난다. 20대가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말이 설사 사실이라고 하더라도(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절대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젊은 세대는 뭘 해야 한다, 어떠해야 한다 구구절절 맞는 얘기들만 하는 좋은 강연들이 참 많다. 국가와 공동체를 향한 성찰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끊임없이 말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따라 나오는 얘기는 젊었을 때 자신들은 데모하며 국가 체제에 저항했다는 이야기다. 이 강연도 마찬가지다. 386세대를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제발 그런 역사로 20대를 비교하는 건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 지금 시대와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로 젊은 세대의 무력감을 더 키울 뿐이다.

국가와 공동체를 향한 성찰과 실천이 필요한 건 맞다. 그 필요성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둬야 하는 건 지금 대학생들이 세상을 향한 실천을 하기가 30년 전보다 몇 배는 힘들다는 사실이다. 당위를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청년들의 현실 속에서 얼마나 힘든지 온몸으로 느껴왔다. 수많은 모순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20대에게 세상을 바꾸라고 얘기하지만 자신들이 가진 권력은 놓으려 하지 않는 기성세대. 세상이 더 나아지길 원하지만 운동권은 무시하는 사람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삶을 바치는 사람들에게는 정작 이익이 돌아오지 않는 모순…. 이러한 모순들이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힌다. 그리고 가장 힘든 건 외로움이다. 대학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자마자 또 다시 시작되는 경쟁 속에서 다른 곳을 바라보기란 쉽지 않다. 인간이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이 외로움, 즉 나만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고통이라고 한다. 20대에게 이러한 고통을 감내해내라고 그 누가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삶의 만족도가 가장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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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에서 장하성 교수는 이런 세상에서 불행할 것만 같은 20대가 되려 전 연령대에서 삶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게 이상하다고 말한다. 이건 ‘어차피 안되니까 즐기자’라는 심리로 인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언뜻 보면 그렇게 보일 순 있다.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 같은 말이 유행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느끼는 20대의 삶은 ‘어차피 안되니까 즐기자’와는 거리가 있다. 그리고 애초에 삶의 목표를 포기하고 즐기기만 하는 건 절대 만족감을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잠깐의 행복은 느낄 수 있겠지만 ‘내 삶에 만족한다’는 문항에 표시할 정도는 결코 아니다.

그럼 왜 20대의 삶의 만족도가 높은 걸까? 물론 저 지표를 신뢰하지도 않지만, 만약 높다면 그건 포기했기 때문에 높은게 아니라, 그만큼 치열하게 살고 있어서 삶의 만족도가 높은 거라고 생각한다. 20대는 미래를 위해 치열하게 준비하고, 그만큼 치열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걸 찾아 스트레스를 관리한다. 쉽게 말하면 할 땐 하고, 놀 땐 놀며 삶의 균형을 맞춰나가고 있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잘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학자 오찬호는 「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회의 부당함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사람들은 체념한다.
사회를 붙들고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는 태도를 장착한다.
그렇게 되면 사회가 어떤지와 무관하게
‘내가 삶을 주도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청년들은 어쩌면 이 착각에 빠져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20대의 삶의 만족도를 다각도로 생각해봐야하는 이유이다.



누가 20대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나?


현대사회에선 무언가를 정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무언가를 정의하는 순간, 그것은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어떤 세대를 정의하는 건 더욱이 그렇다. 세대는 굉장히 복합적이며 쉽고 빠르게 변화한다. ‘20대는 어떻다’라고 정의하는 순간, 그건 그들에게 좋든 싫든 내재화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20대는 ‘모든 걸 포기한 채 즐기는 세대’라고 정의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사람이라고 내재화할 위험이 있다. 이는 결코 한 개인에게도, 사회에게도 생산적이지 못할 것이다.

부디 우리 사회가 젊은 세대를 체념적이고 비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생산적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를 바란다. 나 또한 그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할 것이다. 그리고 20대인 우리는 세상이 하는 말에 기죽을 필요도, 지레 겁먹고 포기할 필요도 전혀 없다. 자기 인생인데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부단히 걸어가고 있는 그 길 모두가 맞는 길이다. 단, 고민과 성찰을 멈추진 말자.




[김초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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