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일상의 미학,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도서]

글 입력 2018.09.05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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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13 사울레이터의 모든 것 1.jpg
 
 
 
Prologue.


일상이 소중하다지만,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정확히 말하자면 거의 느끼지 못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뇌리를 스치는 대사 한 마디가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때가 있었다.
 
연극 <우리 읍내>에서 에밀리가 죽음을 앞에 두고 주변의 모든 것들에게 하나하나 인사를 건네는 장면이 왜 그렇게 슬펐는지 모르겠지만 그 뒤로 내가 지나치는 것들을 자꾸만 한 번 더 돌아보게 되었다. 어쩌면 매일 지나치고 있었는데 그들의 아름다움을, 소중함을 몰랐다면 나중에 분명 후회하고 슬퍼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울 레이터의 시각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그의 사진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계속 생각이 나서 이 대사로 글을 시작해본다.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렸어요. 서로 쳐다볼 시간도 없었어요.
난 몰랐어요. 모든 게 이렇게 지나가는데 그걸 우린 모르고 있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보겠어요.
 
안녕 세상이여,
안녕 우리 읍내, 학교, 우리 집, 안녕히 계세요, 엄마 아빠...
째깍거리던 시계도, 엄마가 가꾸던 해바라기도,
맛있는 음식과 아침에 침대 위에 놓여진 다려놓은 원피스,
잠을 자고 아침에 눈을 뜨고,
모든 게 너무나 아름다워 그 가치를 모르고 있었던 세상이여 안녕.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얼마나 깨달을까요?
자신이 살고 있는 1분 1초를 말이에요.
 
-<우리 읍내> 中

 
 
 
소소함을 포착하다


사울 레이터가 말하는 일상의 포착은 대단하지 않다.

사진에 담긴 1950년대 미국의 지극히 보통인 순간들. 사람들은 그 안에서 대화하고 행동하며 존재한다. 그것이 더욱 사진을 특별하게 만든다.

특별히 꾸미지 않고 몇 시간을 거리에서 보내며 순간적으로 담아낸 사진 하나하나가 아주 소박한 것 같지만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잡지사와의 콜라보가 아니라 그가 거리에서 찍은 사진들은 발이나 손만 살짝, 혹은 뒷모습이 전면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이라도 절제를 통해 예민한 감각을 자극한다. 구도에서 뿐만 아니라, 색감에서도 그는 배제에 가까운 철저한 절제미를 보여주며 보는 이의 상상력과 감성을 끌어낸다. 이 모든 것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 관찰에 의한 결과물이었다는 것은 그의 작품을 한층 더 극적으로 돋보이게 한다.
 
 
180813 사울레이터의 모든 것 2.jpg
 
 
 
컬러와 흑백 사진의 경계를 허물다


그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컬러 사진의 선구자라는 사울 레이터에게 컬러는 애초부터 중요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색을 자유자재로 배치하는 섬세하고 뛰어난 감각을 가진 그이지만, 적은 수의 색상으로 많은 것을 표현하는 레이터에게 흑백 사진이냐 컬러 사진이냐는 단순히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선택이었을 것 같다.

컬러를 2개만 사용하여 서로를 강조하는 보색의 관계성을 뚜렷하게 비춰주기도 하고, 톤온톤 컬러 매칭을 통해 컬러가 가진 본연의 아름다움을 잔잔하게 전달하기도 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화려한 삶의 대척점에 선 관찰자를 넘어 관조자의 역할로 거리를 활보했을 그가 이 지점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상되고 만다.
 
 
180813 사울레이터의 모든 것 5.jpg
 
 
 
순간의 아름다움


지금은 쉽게 휴대폰이나 카메라에서 필터나 포토샵 효과를 선택하여 보정할 수 있지만 그런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던 당시의 사진들에는 특유의 아날로그 감성이 더욱 잘 담겨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적당한 노이즈로 인해 색점이 혼합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그의 사진은 여느 인상주의 화가의 그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순간의 아름다움을 조용하게 전달해주는 것이다. 아련하게 서로 버무려진 색은 멀리서보면 안개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릿하면서도 잔잔하게, 당신의 일상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사울이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는 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며 스튜디오보다 거리를 선호했던 사울 레이터. 그의 견고한 가치관만큼이나 따뜻한 진심이 담긴 사진에 나의 지나간 시간들도 환상처럼 머릿속에 떠올랐다.
     
 
180813 사울레이터의 모든 것 3.jpg

 
이토록 섬세한 감각이 어린 작품을 내 손 안에서 볼 수 있다는 것도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의 매력 중 하나이다.

사진만이 보여주는 매력을 느껴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던 요즘이었는데, 그와 같은 사진가의 작품을 한데 모아 언제든지 넘겨 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좋았다. 감각을 깨워주는 사진 하나하나에서 카메라를 든 사울 레이터와 그의 가치관을 마주할 수 있어 나의 첫 사진집으로 오래오래 남겨둬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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