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역시, 살기 위해." - [도서] PRISMOf : 9호 파수꾼(Bleak Night)

글 입력 2018.09.0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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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자주 보게 되면서, ‘많이 보는 것’보다 하나를 봐도 ‘제대로 보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리고 제대로 본다는 건, 포털사이트의 형식적인 리뷰로 내 생각을 정의 내리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하나의 영화를 봐도 여러 가지 생각들과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의 깊은 글들을 읽어보면서 내 생각까지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 있어 내가 만난 프리즘오브는 ‘한 권에 한 영화’를 타이틀로 하여, 심도 있는 이야기들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하나의 영화를 프리즘으로 하여, 서로 다르게 굴절하는 빛과 같은 생각들을 엮어놓았은 영화 잡지 : PRISM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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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잡지를 홍대에 있는 한 가게에서 접했다. 바로, 1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말이다. 베이비 핑크색의 매력적인 표지와 어쩌면 이 영화를 단지 ‘하나의 동화’라고만 생각하고 끝낼 뻔했던 내 단순한 생각을 고쳐준 잡지였다. 이번에는 9호인 <파수꾼>으로 만나게 되었다. 영화 <파수꾼>은 2011년에 개봉하여, 아직까지 독립영화계의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영화 개봉 당시, 한 친구가 이 영화가 너무 좋았다는 얘기를 해줬었다. 하지만 난 그 당시에 영화에 별 관심이 없었고 그렇게 <파수꾼>은 내 머릿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배우 이제훈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이 영화 역시 그와 함께 재조명을 받게 되었다. 나도 그때, <파수꾼>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잡지를 접하기 전 그 영화를 다시 한번 보았다. 지나간 시간만큼, 내 생각도 많이 달라져있었다. 늘 그렇듯, 난 영화를 보면 나 혼자만의 생각을 정리해둔다. 리뷰를 보지 않고, 내 생각부터 정리하는 습관을 길러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잡지를 펼쳤다. 그리고 이 잡지의 마지막을 읽었을 때, 이렇게 담백하게 영화를 담아낸 잡지가 또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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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늘 기태에게 감정이입을 했다. 기태의 상황들과 내 상황이 그렇게 다르지 않아서. 나도 한때, 엄마가 간식 사 왔다고 집까지 달려가는 친구들을 부러워하곤 했으니까. 친구들의 짜증 섞인 투정에 대해 ‘넌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지?’라고 생각했으니까. 매일 엄마가 새벽에 해놓은 카레를 매번 혼자 데워먹고 학교와 학원을 다녀야했고, 늦게까지 안 오는 부모님을 기다리면서 혼자만의 시간만 많아졌다. 날 달래줄 어떤 것은 늘 ‘집에 없었다'.

희준과 동윤보다는, 난 결핍이 있었던 기태였다. 날 안아주고 달래줄 어떤 것들이, 집에 없으면 밖에서 찾게 된다. 밖이라 함은, 학교이고 친구였다. ‘집이랑 밖이랑은 달라요’라고 했던 희준의 대사가 와닿았던 것이 그 지점이었다. 난 밖에서는, 결핍이 없는 아이처럼 행동했다. 마치 기태가 꽃꽃이 얘기를 할 때,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려했던 것 처럼. 난 기태처럼 친구들에게 내 결핍을 털어놓진 않았지만, 털어놓을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내 주변 친구들은 다 행복한 가정인 것 같았고, 나만 이렇게 외로운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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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태의 입장에서만 이해할 뻔했던 나를 희준과 동윤의 시점에서도 이해하도록 도움을 준 것이 바로 이 잡지였다. 한 챕터에 인물과 공간을 자세히 다루는데, 그중 3명 각각의 인물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나눠놓았다. 난 하나둘씩 떠나는 희준과 동윤이 미웠는데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도 납득이 갔다. 각 인물에 정당성에 균형을 맞춰, ‘회피’리는 것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생각을 덜어낼 수 있었다. 모든 결핍은 보이지 않는다. 희준과 동윤에게도 보이지 않았으리라. 결핍이 폭력의 형태로, 심한 욕설과 무시의 형태로 나타나도 그것을 희준과 동윤은 알 수 없었으리라.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는 게 우리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도 우리니까.


‘도망쳤기에, 기태와 동윤의 몫의 이야기까지
세상에 전할 수 있는 것이다’

-p67 : 희준, 도망자는 모두 비겁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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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 제3자가 카메라로 찍는다는 느낌이 아닌 내 눈으로 내가 직접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사의 내용, 인물의 감정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연출은 이 영화의 또 하나의 포인트다. ‘회상하는 화자들의 이행 : 정보의 심도가 주는 플롯의 효과’ ‘파수꾼의 촬영 : 키노아이로 바라본 파수꾼’을 통해 카메라의 워킹과 연출을 보여준다. 처음 이 영화의 도입부에는 깜깜한 어둠과 아이들끼리 장난을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은 보통 일반적인 영화와 달리 ‘극단적인 아웃포커싱’을 써서 인물의 정보를 덜 드러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하나의 예시로 들어, 다른 작품과도 비교할 수 있도록 설명하였는데 이런 점에서 읽는 사람의 프리즘을 더 넓혀줬다는 생각이 든다.


'키노아이는 사람의 눈보다 더 정확하게
인물의 심리와 삼정을 잡아내어
처음부터, 누구도, 잘못된 건 없었다고 말해준다.'

-p74 : 키노아이로 바라본 파수꾼 – 손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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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아이들의 손을 거치는 야구공. 이 야구공에 대해서, 처음엔 심도 있게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저 마지막에 기태가 타자가 되고 싶었다고 자신의 꿈을 얘기하고, 그 야구공을 찾아내려고만 하는 장면에서 그에게 소중한 물건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섹션에서 그려낸 기태의 야구공은 또 다른 해석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의 ‘관계’라고 해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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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아버지로부터 이 야구공을 받았을 때부터 시작되는 공의 궤적을 주목한다. 그들이 기찻길에서 즐겁게 장난칠 때도, 그 공은 세명과 함께 있는다. 하지만 사이가 틀어지고 희준이 전학 가자 기태는 희준에게 마지막으로 야구공을 전한다. 그리고 기태가 죽은 다음, 그 야구공은 희준에게서 동윤으로 향한다. 그리고 영영 줄 수 없는 기태 앞에서 야구공이 멈춘다. 까맣고 닳아버린 공이 주는 의미가 무엇이었을까. 그 공의 궤적을 따라,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 이 섹션을 읽으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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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갈 때, 동윤의 회상에서 그 절정에 다다른다.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 희준과는 달리, 동윤과는 어렸을 적부터 친구였다. 동윤은 기태가 죽고 나서, 학교도 나오지 않고 장례식장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쩌면, 그 죄책감의 크기만큼 그 혼자 감당해야할 무게가 컸으리라. 처음엔 동윤이란 인물에 그다지 포커싱이 가지 않았지만, 묘하게 기태의 시선으로 전환되다 보니 그의 존재가 점차 커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동윤의 마지막 한 마디에 기태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고 느꼈기에, 동윤 자신도 그만큼 죄책감이 컸으리라 싶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라는 인터뷰를 통해, 죄의식과 죄책감을 진득하게 안고 살아갈 동윤을 통해, 어른이 되어가는 ‘어두운 성장’을 그려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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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대담’섹션은, 개인적으로 정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처음엔 단순히 고등학생들의 인터뷰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이 현재 실재하는 동윤이고, 기태이고, 희준이었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아버지의 알 권리’에 대한 부분이었다.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어서 학교에서 답을 찾으려고 했다”, ”방치로 일관했던 사람이 뒤늦게 모든 것을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라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 역시 머리를 띵하고 맞은 느낌이었다. 아버지는 단지 결핍을 제공한 인물이라고만 생각했던 나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져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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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일반적인 청소년 물에서 그리는 ‘청소년’에 대한 생각도 좋았는데, ‘비청소년이 만드는 청소년 캐릭터는 평면적이고 단일적인 인물이다’라는 점이다. 나도 청소년물을 굉장히 즐겨봤었기 때문에 공감이 갔는데, <드림하이>나 <학교>같은 드라마에서 일진과 노는 아이들을 단순히 ‘못된 아이들’,’양아치’라는 단편적인 해석을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학교2013>의 양아치 오정호(곽정욱)의 눈물을 더 집중했었더라면 어땠을까. 착한 친구들, 결핍이 없는 친구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 너무 흔하고 흔하다 보니, 폭력적으로만 묘사되는 양아치들은 그저 그들을 괴롭히는 나쁜 존재로만 해석된다. <파수꾼>에서는 그런 단편적인 해석을 피했다는 것이 다른 영상물들과의 차별적인 면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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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나는 남고 출신입니다’라는 글을 통해 섬세하고 치밀한 남자들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남동생이 중학교 1학년 때, 따돌림을 당했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런 것 같다. 그전 까지만해도 왕따는 여자들 사이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더 사소한 이유로, 균열이 깨지는 그런 관계들을 보면서 그들의 세계는 ‘예리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영화 <파수꾼>에서도 역시 그랬다.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남학생들이 보여주는 권력, 세력 다툼. 조금이라도 엇나가면 폭력을 행사하고, 불러내어 따돌림을 시키는. 글에서처럼 폭력과 결핍은 다른 문제이지만, 그 결핍을 조금 일찍 누군가 알아줬더라면 하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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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는 모호한 게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p131:유지영 영화감독 인터뷰


파수꾼의 결말은 정말 모호하다. 처음 봤을 때, “네가 최고다 친구야” 이후로 올라오는 엔팅 크레딧을 보고 ‘이게 뭐지?’ 싶었다. 대부분 상업영화에서나, 혹은 드라마에서나 사람들은 확실한 결말을 좋아한다. 나 역시 그래왔었다. 그리고 해피엔딩이면 더 좋아한다. 부모님 반대로 이뤄지지 못할 뻔 한 커플이 극적으로 사랑의 결실을 맺어야하고, 암 선고를 받은 아버지는 무조건 다시 살아나셔야한다.

하지만, 모호하고 알지 못하는 것도 하나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두 번째로 이 영화를 봤을 땐, 생각의 여지들 던져주는 이 엔딩에 대해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비슷한 독립영화 <우리들>역시 그렇다. 선과 지아가 다시 친해졌을까? 알 수없다. 모호하다. 우리의 생각에 맡길 뿐이다. 정말 큰 하나의 매력과 색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업영화와는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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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잡지를 읽고, <파수꾼>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변 인물들까지, 하나의 공이 주는 의미,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경험과 내 동생의 이야기를 떠올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단순히 영화만 보고 끝냈다면, 난 이런 여러 가지 생각을 하지 못한 채 그냥 ‘좋았던 독립영화’로 기억했을 것이다. 조금은 그들을 이해할 수 있어서, 누군가를 ‘가해자’로만, ‘피해자’로만 정의하는 생각을 멀리하게 된 것 같아서, 내 단순했던 <파수꾼>에 대한 프리즘을 넓혀줘서, 참 좋았던 영화잡지 였다. 다음 10호는 <라라랜드>호가 출간된다고 한다. 나의 인생 영화라, 정말 기대가 된다. 앞으로 관심있게, 이 잡지의 행보와 함께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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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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