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이돌의 연애 이후 탈덕하는 진짜 이유 [문화 전반]

이던에게 실망한 이유는 그가 연애해서가 아니다
글 입력 2018.09.05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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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펜타곤 공식 사이트]


펜타곤이라는 그룹을 좋아한다. 아니, 좋아했다. ‘빛나리’ 활동부터 좋아했으니 따지고 보면 정말 짧은 기간 ‘덕질’했던 셈이지만 그래도 좋아하던 마음이 뒤쳐지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펜타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이제 그들을 덕질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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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덕질의 역사는 초등학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억하기론 5학년 때 나는 아이돌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당시에는 욕이라도 한마디 하면 진짜 하늘에서 벌이라도 줄줄 알았던 순수했던 때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내 ‘덕통사고’의 계기는 간단했다. 할아버지의 생신 때 도시 외곽 어딘가에서 밥을 먹었고 우연히 그 근처에서 아이돌들이 대거 등장하는 음악 방송 라이브가 있었다. 내가 그 때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된 존재가 ‘샤이니’였다. 내가 샤이니라는 그룹에서 알던 멤버는 key밖에 없었지만,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는 그들을 보며 이유 모를 동경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웃기게도 그 날 이후부터 누군가 좋아하는 가수가 있냐 물어보면 당연하게 샤이니라고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니까 진짜 좋아하게 되었다. 고작 다섯 명이 소속된 그룹의 멤버 모두의 얼굴과 이름조차 매치하지 못하면서 나는 샤이니의 팬이 되었다. 본격적으로 ‘덕질’을 시작하게 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였다. 어쩌다 친해진 언니 한 명이 알고 보니 나와 같은 샤이니 팬이었고, 그녀는 팬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내 또래 아이들 중 아이돌을 좋아하는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그룹을 덕질하는 블로그 공간을 운영하는 일이 흔했다. 나도 자연스럽게 블로그를 만들었다. 샤이니에 대한 소식을 누구보다 빠르게 접하게 되었고, 샤이니 이야기를 하며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샤이니의 얼굴을 더 예쁘게 보정하고 싶어 포토샵 프로그램을 독학하고 샤이니가 등장하는 팬픽(*팬이 아이돌을 대상으로 창작한 인터넷 소설)도 많이 읽었다. 그 당시 내 일상은 ‘샤이니’로 가득 찼었다. 이성을 좋아한다는 감정 조차 잘 모르던 때, 샤이니는 내 이상향의 기준이 되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보다 어른이 되고자 팬 블로그는 때려 쳤지만 그렇다고 샤이니를 좋아하는 마음이 식었던 건 아니었다. 나는 꾸준히 트위터를 비롯한 각종 SNS를 통해 그들과 소통했고 종종 직접 무대를 보러 ‘공방을 뛰었다.’(*음악방송에 출연하는 가수를 보러 팬이 가는 것을 의미한다.) 줄곧 서울에 살던 중학생인 내게 조금 멀었던 지역에서 한 공연을 부모님과 가기도 했다. 10만원을 웃돌던 콘서트도 밤을 새 가며 취소 표를 잡아 결국 갔고, 생일 선물로는 그때의 콘서트 실황 DVD를 받았다. 고등학생 때까지 그랬다. 입시 직전까지, 나는 샤이니의 열렬한 팬이었다. 내 유년기의 가장 친한 동반자는 그들이었다. 나는 샤이니의 노래 ‘너와 나의 거리’의 가사처럼 ‘매일 밤을 함께 했음에도 다가갈 수 없는’ 존재인 그들과 함께 성장했다. 내 인생 최초이자 가장 길었던 덕질이었다.

내 인생이 학생 때보다 더 복잡해지고, 샤이니보다 더 가까이에 있으면서 그들보다 자신에게 더 집중해 달라 요구하던 애인이 생길 무렵 10년 가까이의 시간 동안 별 일 없던 샤이니에게 사건이 터졌다. 종결이 나긴 했지만 논란이 많은 주제이니 직접적인 언급은 삼가겠다. 나는 샤이니의 팬이기 이전에 여성으로서 그 멤버에게 실망했고, 더군다나 리더인 그가 그들이 쌓아 왔던 이미지를 망쳤고 10주년을 앞둔 그룹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무책임한 대처와 난데 없는 굿즈(*연예인 팬 물품) 팔이에 넌더리가 났고 나는 점차 무관심해졌다. 샤이니는 내 인생에서 뗄 수 없는 존재였고 난 여전히 그들을 사랑했지만 나는 전처럼 그들을 위해 기꺼이 삶을 투자하지 않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우선 순위에서 밀려 났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한 문장으로 표현해야만 하는 것이 답답한데, 이후 찾아온 종현의 죽음으로 나는 큰 충격을 받았고 한동안 우울에 빠져 살았으며, 그 소식을 듣는 것이 괴로워 도피하고자 SNS를 완전히 끊었다. 그리고 다시는 아이돌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6개월 뒤, ‘빛나리’를 흥얼거리는 나를 발견했다.

펜타곤은 정확히 말하면 이제 겨우 빛을 보기 시작한 중고 신인에 속했다. 그룹의 컨셉과 딱 맞는 무대와 중독성 강한 노래로 소소하게 역주행을 시작했고, 꾸준히 상승세를 기록해 결국 차트인(*음원 사이트 100위권 안에 듦)에 성공했다. 나는 그들의 노래가 좋았고, 무대를 보며 즐거웠다. 다른 노래는 없나 흥미를 갖게 되었고 유튜브로 그들이 과거에 나왔던 예능을 찾아봤다. 그들이 데뷔 전에 찍었던 예능 ‘펜타곤 메이커’를 16,000원 주고 결제할까 고민하던 순간부터 나는 그들에게 입덕(*좋아하기 시작함)했음을 깨달았다. 팬카페에 가입하고 그들의 공식 계정을 모두 팔로우한 뒤 ‘먼저보기’ 설정도 잊지 않았다. 대형 소속사 아이돌을 좋아할 때와 달리 상대적으로 중소에 속하는 소속사의 아이돌을 좋아하니 떡밥(*아이돌에 관한 소식)이 너무 많았다. 공식 팬카페에 거의 매일 그들이 직접 올리는 ‘From 펜타곤’을 보면 즐거웠다. 그들은 브이앱(*아이돌이 소통하기 위해 촬영하는 라이브 동영상 SNS)도 자주 올려줬다. 팬들을 생각하는 그런 소소한 행동들이 애틋했다. 그들이 더 성장하길 바랐고 왜 더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알아 주지 않는지 야속했다! 이렇게 착하고 매력 있는 친구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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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로 터진 게 이던의 연애였다. 같은 멤버였던 후이와 소속사 선배 현아와 ‘Triple H’라는 유닛으로 활동하던 막바지였다. 그들은 회사가 아니라 부인했던 열애설을 굳이 나서서 정정까지 하며 그들의 사랑을 세상에 알리려고 안달이 나 있었다. 솔직히 그에게 입덕하고 나서 각종 영상을 찾아 보며 그 둘이 사귀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다.  사귀는 건 상관이 없다. 나도 연애하며 잘 살고 있는데 잘생기고 예쁘고 신체 건강하고 주변에 이성이 차고 넘치는 환경에서 자기 일만 잘 한다면 굳이 독신을 고집할 이유가 없겠지. 문제는 자기 일을 잘 못 했다는 데에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이던은 둘 다 잘 병행해 온 것인지도 모른다. 팬들이 몰랐고, 그는 무대 위에서의 역할에 충실했으며 팬들을 존중했으니까! 내가 그의 팬이 된 것도 그가 순수하게 열정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의 열애 이후의 행보는 이전과 조금 달라졌다. 그는 책임이 아닌 회피를 택했다. 회사가 그를 막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물론 회사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했으니 당연히 밉보일 수밖에 없겠지.) 적어도 팬들 앞에서 그는 눈치가 없었다. 팬들의 입장을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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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탈덕은 조용히 하라 했다. 이건 이던에게 내 지나간 덕질을 보상하라 화를 내는 글도, 그의 예의 없음을 탓하고 비난하고자 하는 글도 아니다. 나는 이던은 몰라도 펜타곤이 진심으로 잘 되길 빈다. 오히려 이던이 그들에게 입힌 피해만큼 그가 떠난 뒤 남은 멤버들이 더더욱 성공하길 바란다. 다만 나는 덕후가 멤버의 연애에 격노하는 것이 단순히 유사연애감정으로 그들을 소비 해서가 아님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어떤 감정으로 얼만큼 아이돌을 좋아했는지 굳이 앞서 밝힌 것도 그렇고 펜타곤 타 멤버들의 연애설 또한 한꺼번에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던을 짚어 이야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덕후가 아이돌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다. 처음에 가지고 있던 간절함을 잃지 않는 것. 자고로 현대는 백만 아이돌의 시대다. 과거 한 두 그룹의 대성한 아이돌만이 존재했던 때와 달리 이제는 몇 세대를 거쳐 매년 수 많은 아이돌이 데뷔하고 알게 모르게 활동하다가 단기간에 망해 버리며 그 중 몇 몇만 기적적으로 인지도를 얻어 살아 남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 많은 아이돌 중에 굳이 이 아이돌이 내 그룹이 된 이유는 각자 다양할 것이다. 최애의 얼굴에 덕통사고 당했을 수도(*가장 좋아하는 멤버의 얼굴에 갑자기 반해 버린 것), 나도 모르게 그들의 노래를 플레이 리스트에서 수십 번 재생하다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일 수도 있다. 처음은 이렇게 단순한 이유 였을 지라도 덕후가 그들을 여전히 좋아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간절함이다. 음악을 업으로 삼고 싶은데 그러면서 먹고 살려면 일단 떠야 하니까 성공을 하고 싶다는 간절함일수도, 자신의 노래가 더 많은 사람에게 닿아 그들에게 행복을 주고 싶다는 간절함일수도 있다. 팬들은 그들의 간절함이 무너지지 않도록 죽어라 스밍을 돌리고(*음원이 나오면 스트리밍을 통해 음원 순위를 높이는 것), 투표를 하고 앨범을 사는 것이다. 그들이 그 결과로 상을 받고 칭찬도 받고 높은 입지를 다지게 되면, 덕후들은 마치 그게 본인의 일인 양 기뻐한다. 그들의 팬으로 존재하는 이상 나는 ‘00의 팬’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우는 한 배를 탄 존재이기에,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사실상 하나의 팀이고, 서로가 서로를 대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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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샤이니 공식 페이스북]


펜타곤 팬들이 이던에게 실망한 이유는 그것이었다. 이거는 우리를 같은 팀이 아니라 무슨 지네 엄마로 본 거다. 내가 조별 활동 할 때 튄 조원을 욕해도 아무도 내게 잘못했다 하지 않듯이, 펜타곤 팬들은 그들의 이름을 우습게 만든 이던에게 상처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그 자리에 있는 이유는 자진해서 그들과 팀이 되고자 돈과 시간을 썼던 팬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돌의 주 수입원은 사실상 음원이 아니다. 쓸데없이 다양한 굿즈와 비싸기만 한 앨범과 팬 사인회, 팬미팅, 콘서트로 대표되는 수 많은 행사들. 대중은 그들의 음원과 이미지를 소비하지만 그건 정확히 말하면 실제적인 돈보다는 인지도를 올려주는 것뿐, 실제적인 수입의 대부분은 덕후들 지갑에서 나온다. 그런 덕후들이 자신의 현생(*현실 생활)을 덕질에 갈아 넣는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아이돌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위로를 받고, 행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잘생긴 얼굴을 보며 힐링을 하든,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공감을 하든 그들에게 기꺼이 내 것을 내줘도 아깝지 않으니까 할 수 있는 일들이다. 팬들이 이던에게서 돌아선 이유는, 그가 우리가 그를 덕질하는 이유를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며 심지어는 그에 반해서 행동하기 때문이다. 내가 내 돈 쓴다는데, 어덕행덕(어차피 덕질할 거 행복하게 덕질하자) 해야지 않겠어요? 그런데 탈덕의 이유를 단순히 유사연애감정 이라고 치부한다면 좀 화가 나는 거다. 이던은 현재 활동 중지 상태고, 세상엔 그를 지지하는 팬들과 아닌 팬들이 존재한다. 어떤 편이든 덕질엔 정답이 없지만 적어도 나는 전처럼 이제 그들을 덕질할 열망이 생기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의 계기는 이던의 연애지만, 그 이유가 연애는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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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펜타곤 공식 페이스북]


* 그런 의미에서 9월 10일 펜타곤의 신곡 많이 기대해주시고, 남은 그들이 씩씩하게 잘 성공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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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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