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일상이 예술이 되려면 [도서]

사울레이터의 모든 것 리뷰
글 입력 2018.09.02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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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 우산을 살짝 들어서, 시야를 가리는 철창 구멍 사이로, 지하철 플랫폼 기둥을 살짝 비껴서, 햇살이 밝은 날 난간 위에서, 버스 안에서, 카페 창문 밖으로,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비가 내리건, 눈이 내리건, 햇살이 밝은 날이건 상관없이, 그저, 바라보고 있다, 오직 당신만을. 아, 이렇게 말하면 스토커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말한 ‘당신’은 사진을 찍을 때, 그 찰나의 순간의 ‘당신’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니 안심해도 좋다. 하나하나의 당신은, 그의 사진에 담긴 후 바로 사라질 것이니.
 

“나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을 확신하지 못할 때를 좋아한다.
우리가 왜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는지 모를 때,
갑자기 우리는 보기 시작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125
 

그는 ‘건너서’ 본다. 깨진 유리창 너머, 철창 너머, 사람들 너머, 기둥 너머, 계단 너머… 이런 표현은 그가 그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처럼 보인다. 정확한 무엇을 설명하고 지시하는 대신 포착하기. 예상하건대 그는 사진을 찍을 때 왜 그 장면을 들여다보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포착하기 전까지 의미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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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레이터의 사진은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것’이 담겨있다. ‘지나가는 것.’ 보통 ‘지나가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들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도 사울레이터의 사진은 어쩌면 우리가 평소에 익히 알고 있는 사진의 의미에서는 조금 벗어난 것 같다. 보통 특별한 시간을, 특별한 장면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지 않는가. 특히 SNS에 사진을 업로드할 땐 그렇게 찍은 수많은 사진들 중에서도 가장 잘 나온 A컷을 고르고 골라 공유하고, 좋아요를 누르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장소나 사물이 아니라 자신의 시각이다.” -91
 

그런데, 정말 그런지 그의 사진을 찬찬히 머금으며 생각했다. ‘지나가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게 아닌가? 그의 말대로라면, 지나가는 것들에 관한 자신의 시각, 생각, 철학이 있다면 그 ‘지나가는 것’, 일상의 순간순간은 다시금 ‘중요한 것’이 된다. 언젠가 들었다. 뒤샹의 <샘>이 현대 예술에 끼친 영향이 큰 것으로 평가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예술가의 ‘생각’이라고 말이다. 이전까지 재현된 이미지가 예술이었다면 이후로는 ‘생각’이 예술이 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사는 동네를 찍는다.
친숙한 장소에서 신비로운 일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늘 세상 반대편으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35
 

보통의 우리에게 ‘일상’은 반복되는 것이다. 아침에 해가 뜨고, 사람이 일어나서 밥을 먹고, 정해진 시간에 일을 하고, 또 때가 되면 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와 하루를 마치는 각자의 의식을 치르고, 깜깜해진 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면 다시 아침이 된다. 간단하게 한 문장으로 축약된 이 매일 매일이 반복된다는 사실이 때로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지루하게 느껴진다. 한때 트렌드 콘텐츠가 ‘여행’, ‘퇴사’였던 사실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현대인들은 더욱 일상에서 벗어나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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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레이터는 이 끊임없는 반복, 친숙한 일상에서 새로움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쩌면 이 생각의 재현 도구가 사진이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는 그림도 그렸다. 그림이나 사진이라는 매체는 예술가가 선택하면 된다. 중요한 건 매체가 무엇이든, 결과물을 관통하는 하나의 생각이다.

 
“나는 염두에 둔 목적 없이, 그저 세상을 바라본다.” -134

"선생님은 사진가라는 말이 맞지 않아요. 사진을 찍지만,
선생님만의 목적을 위해서 찍으시죠.
선생님의 목적은 다른 사진들과 같지 않아요." -195


그의 사진이 다른 예술과 구별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만의 ‘생각’이 특별히 기획된 게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 투철한 역사의식처럼 특별한 의도를 지니지 않은 그의 '의도 없는 의도'는, 묘하게도 쉽게 지나쳐 중요성을 잃어버리는 순간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다른 의미를 만들어냈다.

 
“일상이 예술이 된다.”
 

는 말, 언젠가부터 미술관이나 잡지, 출판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 반감이 들었다. 왠지 ‘일상’에 괜히 ‘예술’이란 낭만적인 표현을 덧대어 지키지 못할 약속으로 사람들을 속이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참 좋은 표현이라는 생각을 한다. 예술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한 일상에 틈을 내거나, 일상 자체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은 꼭 필요할 것이다. 진심으로 모든 사람의 일상이, 예술이 되었으면 좋겠다.
 
책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일상에 예술이 필요한 당신에게, 혹은 일상을 예술처럼 바라보고 싶은 당신에게, 그 방법을 실현한 사울레이터의 사진이 궁금한 당신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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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원제: All about Saul Leiter
지은이: 사울 레이터
옮긴이: 조동섭
분야: 예술·대중문화>사진집 / 에세이>사진 에세이
면수: 312쪽
ISBN: 979-11-5581-149-8 03660
판형: 148*210
정가: 20,000원
발행일: 2018년 7월 31일
펴낸곳: 윌북



[책 소개]

뉴욕이 낳은 전설,
사울 레이터 사진 에세이 한국어판 정식 출간

60년 만에 세상에 알려진 천재 포토그래퍼 사울 레이터의 작품과 언어를 담은 사진 에세이다. 사진과 회화로 구성된 대표작 230점과 그의 남긴 말들을 집대성한, 그야말로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이다.
컬러 사진의 선구자, 슈타이들이 우연히 발견한 거장, 영화 <캐롤>의 시작점, 뉴욕이 낳은 전설... 사울 레이터를 수식하는 말들은 지금도 보는 이들에 의해 재탄생되고 있다. 과감한 구도와 강렬한 색감, 몽환적 분위기와 서정적 감성이 어우러진 그의 작품은 사진이라기보다 이야기이며 한 편의 시다.
책에는 작품뿐 아니라 그만의 생각을 담은 문장들이 함께 실려 있어 사진집 이상의 울림을 준다. 스튜디오보다 거리, 유명인보다 행인, 연출된 장면보다 평범한 일상, 빛보다 비를 더 사랑하여 “나에게 철학은 없다. 다만 카메라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던 진짜 포토그래퍼. 60년이 지난 지금, 독일,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등 국경과 세대를 초월하여 뒤늦게 큰 사랑을 받는 이유다.
     

 
[목차]

작품
Fashion-Street-Color-Drawing-Nude
 
해설
화가의 면모 · 마지트 어브
뉴욕 나비파 · 폴린 버메어
뒤로 몰래 다가와 왼쪽 귀를 간질이는 사진 · 시바타 모토유키
아름답던 시절의 아름다운 순간의 기록 · 권정민

사울레이터 연보


 
[저역자 소개]

사울 레이터Saul Leiter
1923년 피츠버그의 독실한 유대교 집안에서 태어나 랍비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지만 1946년 학교를 중퇴하고 화가가 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났다. 이후 친구이자 추상표현주의 화가인 푸세트 다트에게 포토그래퍼가 될 것을 권유받았고, 30년 가까이 성공적인 패션 포토그래퍼로 활동했으며 <하퍼스 바자>, <엘르>, <에스콰이어>, 영국 <보그>, <라이프> 등에 사진을 게재했다. 이후 업무 차 뉴욕을 찾은 독일 출판사 ‘슈타이들’의 대표가 우연히 그의 작품을 보게 되면서 60년 만에 레이터가 찍은 사진들이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다. 다채로운 색감을 지닌 그의 사진들은 ‘컬러 사진의 시초’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비비안 마이어와 함께 영화 <캐롤>의 배경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2012년에는 그의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In No Great Hurry:13 Lessons in Life with Saul Leiter]가 개봉되었다. 작품집으로는 [Early Color(2006)], [Early Black and White(2014)], [In My Room(2017)] 등이 있다. 2013년 11월에 사망했다.
 
옮긴이_조동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 영화학과 대학원 과정을 수료했다. <이매진> 수석 기자, <야후 스타일> 편집장을 지냈으며, 현재 번역가와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 『파이브 데이즈』, 『더 잡』, 『템테이션』, 『파리5구의 여인』, 『모멘트』, 『빅 픽처』, 『파리에 간 고양이』, 『프로방스에 간 고양이』, 『마술사 카터, 악마를 이기다』, 『브로크백 마운틴』, 『돌아온 피터팬』, 『순결한 할리우드』, 『가위 들고 달리기』, 『거장의 노트를 훔치다』, 『일상 예술화 전략』, 『매일매일 아티스트』, 『아웃사이더 예찬』, 『심플 플랜』, 『스피벳』,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보트』, 『싱글맨』, 『정키』, 『퀴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픽업』, 『배드 대드』 , 『웨스 앤더슨 컬렉션: 일곱 가지 컬러』, 『데드 하트』, 『데이비드 보위: 그의 영향』, 『싱글 맨』, 『북숍 스토리』, 『기묘한 사람들』, 『텔리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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