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演] 극단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임형진 연출가 인터뷰(上)

글 입력 2018.08.28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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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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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로고
ⓒ테아터라움 페이스북
 

연극은 ‘말을 할 수 있는’ 예술이다. 이것은 의도하는 바를 작품에 담아 사회를 향해 제 목소리를 외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보편의 공연예술과 달리 연극은 작품이란 울타리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 연극은 시대의 문제를 바라보며, 부재한 시대의 정신은 무엇인지 탐구한다. 고민의 끝은 결국 ‘무엇을 외칠 것인가’로 귀결된다. 연극은 다양한 시선을 통해서 사회 문제를 겨냥하고 있다. 유의미한 메시지를 작품 속에 담으면서 문제의식의 자각, 존재의 인식을 통해 세상을 복합적으로 바라본다.
 
이에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은 ‘말 할 수 있는 연극’의 실체를 보여주는 집단으로, 얼마 전 연극 ‘낯선사람’을 선보였다.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항상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즉, 당연하게 여겨오는 무의식의 인식으로부터 벗어나 낯설음이 주는 새로운 인식을 마주하라는 것이다. 연극과 사회는 공존해야하며, 연출가는 늘 깨어있는 시선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 어느 집단보다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는 ‘철학하는 몸’이다.
 
8월의 ‘In-演’에서는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의 임형진 연출가와의 대화를 통해 이들의 나아감을 살펴보려 한다. 인터뷰는 상편과 하편으로 나뉜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의 탄생과 신작 ‘낯선사람’의 못 다한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철학, 연극을 담다극단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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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임형진 연출가


Q. 사유 부재의 시대에 생각하는 연극을 몸소 선보이는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입니다. 독자들께 간단한 인사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아트인사이트 독자 여러분. 연극 공동체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에서 연출을 하고 있는 임형진입니다.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문화와 예술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관점들을 지켜보던 입장에서, 이번에는 여러분들에게 직접 인사를 드리게 되었네요. 개인적으로 매우 기쁩니다. 반갑습니다.
   
 
Q. ‘철학하는 몸’이란 공동체의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베를린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에 길들여진 예술의 한계와 문제점을 직접 경험하고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와 원인이 궁금했는데요, 결국 예술에서 철학과 몸의 부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2011년 베를린 달렘 지역에 있던 음악극 연구소 모임에서 ‘철학하는 몸’이라는 연극 공동체의 성격과 방향을 동료들에게 ‘선언’하기에 이르렀고, 이후 2015년 5월, 활동지역을 서울로 옮겨 현재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Q. 독어인 ‘테아터라움’에서 마주할 수 있는 극단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요?
 
테아터라움은 우리말로 ‘연극 공간’을 의미합니다. 독일에서 이 단어는 극장이나 연극이 행해지는 공간을 의미할 때 사용되곤 합니다. 저는 이것을 단지 물리적인 극장이나 공연장의 개념으로 해석하지 않고, 보다 근본적인 공간, 즉 몸을 연결시켰습니다. 철학하는 몸 그 자체가 결국 연극 공간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저는 순전히 유물론적 관점에서 연극과 몸의 관계를 설정하였고, 장치적인 개념으로서의 연극 공간을 생리(학)적이면서도 사회적인, 동시에 철학적인 공간의 개념으로 확장시키고자 하였습니다.
 
저희 공동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분들을 소개하자면, 독일 베를린에서 만나 예술과 동시대성의 관계를 함께 모색하고 작업했던 퍼포먼스 그룹 ‘리그나(Ligna)’, 만하임국립극장 모차르트 페스티벌에서 연출 방법론을 지도해 주신 연출가 크리스토프 넬(Christof Nel), 베를린에서 수행성과 음악 및 소리의 사회성에 대한 개념을 정립시켜 주신 연극학자 에리카 피셔-리히테(Erika Fischer-Lichte) 등이 계십니다.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은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동시대성에 대한 수행적 개념과 포스트드라마 음악극의 연극적 특징들을 구체화할 수 있었습니다.


Q. 그렇다면 연출님께 있어서 연극과 철학의 관계는 무엇인가요?

철학이 부재한 연극은 결국 자본주의 시스템 가운데 소비의 감성과 기계적 생산력에 지배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연극의 형식만 남아 경제적 생산과 소비의 즐거움에 종속되기 마련이죠. 반면 연극의 가치와 영향력은 예술의 사회적 비판 가능성 여부를 통해 확인 될 수 있습니다. 이때 연극의 사유하는 주체는 몸으로서 존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연극의 행동과 실천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몸이 부재한, 실천이 사라진 예술적인 것의 시도는 사회적 허상과 허위를 생산할 뿐입니다. 연극은 정답을 찾아 관객들에게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이 아닌, 은폐된 진실을 함께 발견하고 문제를 공유하며 스스로 사유하는 과정에 이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합니다.



'나는 분열한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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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낯선사람' 공연 이미지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Q. 얼마 전 ‘낯선 사람’을 선보였습니다. ‘낯선 사람’은 어떤 작품이었나요?

내용과 구성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역사와 개인 사이에서 발견되는 한 인물의 정신적 분열을 다룬 현대 비극에 해당합니다. 실제로 1900년 경 중국을 침략한 유럽 연합군의 폭력성, 그리고 이에 맞선 중국인들의 저항과 민족 정체성, 이후 현재 이 모두가 신자유주의 자본 환경에 의해 급격하게 무너지는 상황을 순차적으로 그렸습니다. 동시에 이 작품의 의식의 흐름은 그 반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연합군 장교 울리히는 나이가 들어 정신병원에 갇혀 있고, 자신을 마치 과거에 풀어준 중국인 천샤오보라고 생각하면서 의식은 시작됩니다. 그리고 무대의 모든 사건과 행동은 병원에서 일어난 정신 착란, 즉 환영입니다. 소녀와 손녀딸, 성악가였던 바넷사-린은 실제로 병원에서 할아버지를 돌보는 간호사이고, 사병, 성악가였던 리웨이는 담당 의사입니다.

관객들은 모든 시선들이, 그리고 인물들의 행동이 자연스러운 구조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계속 생각을 하면서 봐야 했습니다. 저는 이 흐름의 단절이 지난 역사와 현재 우리 사이의 낯설고 불편한 느낌을 현상적으로 드러내길 바랐습니다. 현재 우리의 주변을 살피면, 자신은 물론이고, 사회의 구조와 환경, 그리고 지난 역사적 사실까지도 낯설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이것을 프로이트가 말한 낯설다는(Das Unheimliche) 개념으로 연결시켜 보았고, 이러한 분열의 순간들은 앞으로도 우리 주변에서 그리고 나의 정신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반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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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사실 극의 원작이 되는 ‘의화단 운동’은 슈니츨러 작가의 미완성 작품입니다. 미완의 소설을 완성된 희곡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은 언제인가요?
   
오스트리아의 작가였던 슈니츨러의 작품 가운데 역사적 문제를 중심에 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그는 이 작품에서 역사적 사건을 하나의 소재로서만 선택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미완성 소설의 기저에 깔린 유럽중심주의에서 비롯된 오리엔탈리즘적 경향을 감지하였는데, 중국인을 신비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 바로 그 예입니다. 하지만 저는 슈니츨러라는 유럽 백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이 소설을 동양인의 시선으로 전복시켜 무대에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일종의 도전의식이라고 할까요? 또한 미완성 작품이라는 특징은 이러한 저의 시도가 원작에서 받을 수 있는 일종의 재창작의 심리적 부담을 일정 부분 감소시켜 주었습니다. 오히려 완벽하지 않아서 더욱 시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작가의 완벽함을 재현하기 위한 연극 작업은 개인적으로 크게 매력이 없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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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현대사회의 갈등 양상이(서양-동양/자본-전통 등) 복합적으로 담겨있습니다. 다양한 갈등을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으며, 그 중 제일 강조하고자 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제국주의의 단면들은 역사적인 시기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여전히 지속적으로 다양한 모습과 방법으로 전달되고 있습니다. 서구와 동양의 대립과 충돌은 문화적인 것과 자본의 수용 과정 속에서 드러나곤 하는데, 이것은 현재 중국의 거대 자본을 서구가 무시하지 못하는 모습에서도 간단히 확인됩니다. 그리고 현재 유럽 오페라극장의 주요 음악가들 가운데 중국인의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지난 전통을 간직하기 위해 노력하였던 이들은 지금 현재 어디에,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오페라를 노래하기 위한 발성은 중국의 정체성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일까요? 혹은 이러한 오페라 발성이 자본화된 소리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조금 더 일상적으로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병원의 시스템을 보면 자본의 민낯이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지난 역사적 실천가들은 현재 곳곳에서,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시스템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아니, 싸우는 것이 아니라, 처절하게 내몰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작품에서 자본의 이면에 숨어있는 동시대적 힘의 원리는 전통적인 그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차갑고 깔끔하고 간결한 방식으로 인간의 심리에 시나브로 영향을 미치는 것,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시대의 동시대적 힘의 특징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역사적인 사건 속에서 목격되었던 직접적인 힘에 의한 폭력은 그 방식만이 바뀌었을 뿐, 여전히 그대로 우리 주변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개인의 겉모습은 평온해 보이지만, 그 내면은 조각조각 분열되어 있는 상태, 즉 이번 연극의 무대와 배우의 행동 사이에서 목격된 충돌의 장면들이 바로 그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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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품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볼 수 있을 법한데’라는 생각이 종종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왜 사회의 이면을 곧바로 파헤치지 않고, 조금은 낯선 시공간을 통해서 떠올리게 만들었나요?
  
개인적인 창작에 앞서, 슈니츨러가 가졌던 동양에 대한 시선을 전복시키려는 의도가 반영되었던 사실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이 미완성 소설의 재창작을 통해 우리 사회의 모습은 물론 중국, 그리고 더 나아가 유럽의 고정된 시선들도 함께 문제가 제기되기를 바랐습니다.
   
연극은 사회의 직접적인 부분을 구체적으로 파고 들 수도 있지만, 시공간적 특정성은 오히려 그 영향력을 제한하거나 축소시키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우, 주로 전통적인 언어의 논리성에 의존하는 경향이 확대되기도 합니다. 연극 ‘낯선 사람’의 의도적으로 구성된 익숙하지 않은 시공간 개념은 포스트드라마적인 접근 방식을 시도하려는 연출 의도와도 연관됩니다. 새로운 유형의 기호 용례를 제시하려는 의도적인 구조적인 변화로서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의 인터뷰 상편은 이쯤에서 마무리한다. 사유 없는 행동은 무의미한 몸짓에 불과하고, 행동 없는 표현은 굳어버린 지시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의 연극은 늘 깨어있다. 철학을 담은 연극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으며, 어떠한 방식으로 나아감을 행하고 있는지는 다음 인터뷰를 통해서 계속해서 전하고자 한다. 다가오는 하편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의 나아감과, 임형진 연출가의 사유를 전달하려 한다.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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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演'은 오늘의 연극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아트인사이트의 인터뷰 섹션입니다.
연극적 사유와 행함을 함께 나누는 모든 인연을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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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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