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피 터지는 싸움, 예술에 미친 두 사람의 이야기. 연극 '비평가'

글 입력 2018.08.26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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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 극작가, 모두 예술에 미쳐 있었다."

이번 아트인사이트 문화초대는
연극 '비평가'였습니다.
예술에 미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각자의 광기를 볼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본 공연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주최 측에서 제공받은 사진만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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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를 찾아간 극작가, 그들을 채우는 정적.

자신의 연극이 초연되던 날, 15분간의 관중들의 기립박수를 받은 극작가 스카르파는 자신을 혹평했던 원로 비평가 볼로디아를 찾아간다. 볼로디아는 연극 본 당일, 바로 그에 대한 비평을 써서 자정에 전화를 통해 전하는 것이 그의 방법이다. 구닥다리지만 그만의 바꾸지 않는 습관이다. 스카르파는 볼로디아가 비평을 쓰기 직전 찾아온다. 극작가 스카르파의 요구는 꽤나 독특하다.

"당신이 비평 쓰는 걸 보고만 있겠습니다."
"제 비평을 읽고 싶은 거라면 쓰자마자 바로 전화해 읽어주겠습니다."
"아뇨. 저는 비평을 읽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쓰는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볼로디아는 계속 거절하지만 스카르파는 단호했고, 어쩔 수 없이 볼로디아는 스카르파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비평을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연극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둘 사이를 채우는 정적. 서걱거리는 펜촉의 소리와, 멈춰져 있는 공기.  그리고 스카르파의 시선과 볼로디아의 집중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최근 어느 작가의 인터뷰에서 여백이 있는 글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공감했다. 창작자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여백은 그 창작물을 받아들이는 모두가 각자 채워 모두들에게 다 다른 창작물이 된다. 마치 존 케이지의 4분 33초처럼 말이다.  본 공연은 그런 여백이 많았다.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있는 순간, 서로 대화를 주고받지 않는 꽤 오랜 순간, 관객들은 무대 위 두 사람의 감정을 상상하고, 느낀다. 여백이 있음으로 인해 관객들에게 감정을 이입할 시간을 주며, 휘몰아치는 그 두 사람의 오래 묵혀 있던 감정들을 이해하게 한다.  주고받는 대사들보다 감정들은 그러한 여백 속에서 자고로 관객들에 의해 완성된다.  자신을 혹평해온 비평가의 앞에 선 극작가의 마음이 어땠을지, 자신이 혹평해온 극작가를 만난 비평가의 마음이 어땠을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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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링 위의 복싱 선수들, 관객들은 피 터지는 싸움을 보는 관중들.

극 중 극작가 스카르파가 써서 대중의 극찬을 받은 작품에는 '복싱선수'가 주인공이다. '늙은 복싱 코치'와 '젊고 부족함 없는 복싱 선수', 그리고 '늙은 복싱 코치의 아내'(이하 '코치의 아내')까지.  볼로디아는 이번에도 스카르파의 작품을 혹평했다. 이에 분노하고 흥분한 스카르파는 자신의 극 중 장면을 묘사하기 시작한다. 이 부분이 연극을 절정까지 끌고 간다.

'늙은 복싱 코치'(이하 '늙은 코치')는 과거 선수의 영광을 가졌는지 모르지만 '젊고 부족함 없는 복싱 선수'(이하 ' 젊은 선수')를 잘 키워냈다. 하지만 '젊은 선수'는 매번 5라운드까지는 '늙은 코치'의 말을 듣지만 그 이후에는 사람들의 환호에 휩쓸려 말 그대로 오버 페이스를 한다. 그래서 끝에는 부족한 경기를 만들어낸다. '젊은 선수'는 더 큰 무대로 나가고자 하지만 '늙은 코치' 그를 반대한다. 5라운드 이후의 부족함 때문이다. '늙은 코치'는 5라운드만 지나면 모두가 너를 이길 수 있다고 말하고 '젊은 선수'는 이에 분노하여 시합을 해보자고 한다. 체급 조건이 전혀 맞지 않을 시합, 그런 피 터지는 시합은 계속된다. '젊은 선수'가 일방적으로 우세하다가 마지막 순간 '늙은 코치'의 주먹이 '젊은 선수'를 타격한다. 그런 '늙은 코치'의 묵직한 타격은 '젊은 선수'의 날개를 빼앗는다.

스카르파는 이러한 시합을 처음에는 볼로디아와 대본을 나눠 읽으며 진행하지만 끝으로 가면 갈수록 홀로 책상 위에 올라가 연기를 선보인다.

극 중 이러한 관계는 무대 위 '비평가'와 '극작가'로 이어진다. '늙은 코치'는 '원로 비평가 볼로디아', '젊은 선수'는 '천재 극작가 스카르파'. 이러한 피 터지는 감정들의 폭발은 무대 위가 마치 링 안인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왜 본 연극의 무대가 관객석 가운데에 위치하여, 사방에서 관객들이 볼 수 있게 했는지 알게 한다. 극 중 스카르파의 연극과, 우리가 보고 있는 연극 '비평가'가 묘하게 겹치고, 스카르파가 전하고 싶었던 연극의 메시지가 더욱 두드러진다.  '볼로디아'의 비평으로 상처받은 '스카르파' 본인의 아픔, 그리고 성장을 '볼로디아'에게 선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창작자가 자신의 창작물에 대해 거절 받았다면 얼마나 그 아픔이 깊을지 안다. 그리고 그 아픔을 통해 성장하기 위해 발악했을 창작자의 고뇌가 느껴진다. '젊은 선수' 스카르파에게 '늙은 코치' 볼로디아는 언젠가 꺾어야 할 묵직한 장애물이다. 그 장애물을 부수고, 설득하기 위해 스카르파는 극 중 자신의 연극을 올리고, 볼로디아의 책상 위에서 미친듯한 연기를 선보인다.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을 보면 정말 말 그대로 무대 위는 링이 된다. 흘리는 피가 자연스러운, 서로가 서로를 향하는 타격이 당연한, 그리고 승자와 패자가 있는 그곳, 잔잔했던 무대는 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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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와 극작가, 그들은 사제관계로 정의된다.

'늙은 코치', 그는 그저 '젊은 선수'의 날개를 빼앗기 위해 존재했던 것일까? 아니다. '늙은 코치'는 '젊은 선수'를 벼랑으로 밀었다. '젊은 선수'가 더 큰 날개를 펴길 바라며 말이다. 연극의 후반부, 그렇게 서로 싸우던 그들은 사제관계임을 인정한다. 독한 혹평은 성장의 발판이었다. 그 방식은 무지막지하게 혹독했지만 말이다. 마치 영화 '위플래시'처럼 과격하지만 천재를 키워내는 그런 스승 말이다. 이러한 방식이 무조건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확신할 수 있는 건, 두 사람 모두 예술에 미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이성을 잃고, 어떠한 것에 표출하고, 침착하게 비평하는 것은 모두 그 예술에 미쳐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 과정에서 존중과 존경은 삐뚤어진 감정으로 남아버렸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타인의 창작물을 평할 때, 많이 관대해진다. 그 문장들, 그 감정들을 대안 없이 부수면 무엇이 남을까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반대로 그러한 관대함은 누군가를 성장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혹시 안주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날카로운 스승과 제자는 서로에게 상처를 내어 버린다. 그래서 제자는 스승이 만족할만한 작품을 쓰기 위해 애쓰고 말이다. 결국 미행까지 하게 된다. 여기서 등장하는 또 다른 인물. '코치의 아내'다. 볼로디아는 스카르파에게 한 번도 사랑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쓴 극본이라고 비난한다. 그에 스카르파는 비웃듯 웃는다. 그리고 스카르파는 마지막까지 숨기고 있던 자신의 무기를 내세운다.

연극 속 또 다른 인물 '코치의 아내'는 볼로디아가 사랑하는 '여인'이다. 지금은 볼로디아의 곁을 떠난 그녀의 마음을 들은 것은 바로 스카르파다. 그런 그가 쓴 문장 '내가 노래할 줄 알면 나를 구원할 텐데.' '코치의 아내'가 한 그 말은 사실, '늙은 코치', '볼로디아'의 말로 정의된다. 단 한 번도 창작을 통해 스스로 노래해본 적 없는 그, 그의 이러한 결핍은 그의 아내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결국 사제 간의 오랜 싸움은 끝이 났다. 제자가 스승의 공허함을 꿰뚫으면서 말이다. 볼로디아의 이름으로 스카르파가 쓴 비평이 다음날, 신문에 실리게 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둘의 싸움이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는 싸움이었는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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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배우들이 연기한 남성역할, 그 변화

본 연극에서 색다른 점은 초연과 달리, 남성배역을 모두 여성배우들이 연기했다는 것이다. 여성의 몸으로 남성배역을 연기했다는 그 시도는 본 연극이 가진 또 다른 메세지를 전달하려는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무대 위에서는 성별을 초월한 예술가들만 있어서인지 그렇게까지 크게 드러나지 않았지는 않았다. 아마 초연을 보았다면 이러한 생각은 달랐을지 모른다. 하지만 극중 인물의 성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남성배역을 여성배우가 맡았다는 시도는 어떠한 '여성성', '남성성'의 탈피를 모두 이룬 것이라고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남성 배역이 하는 행동들이 '남성성'으로 정의 내려졌던 것 같아서 인 것 같다. 하지만 크게 느꼈던 것은 단 하나다. 흔히 정의되는 남성성이 가득한 역할을 여성 배우들이 해낼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성별을 떠나 '한 역할'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배우'라고 말이다.  무대 위에서 마주한 두 배우의 연기는 정말 뛰어났고, 압도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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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리뷰글을 쓰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저 스스로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고민했고,
비평, 예술, 서로 떨어질 수 있는지 그 둘의 관계를 고찰했습니다.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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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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