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더 이상 한국영화를 안 보는 사람들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08.15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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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윤종빈 감독의 영화 《공작》이 개봉했다. 진부한 액션 없이도 서사적으로 서스펜스를 끌어냈다는 평단의 호평과 함께 현재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영화를 보기도 전에 이미 영화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는 반응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런 영화에 질렸다는 의견이다. 작품의 완성도가 어느 정도 정평이 나 있음에도 영화의 기본 정보만을 보고 대중이 기대감을 상실해버린 상황이다. ‘이런 영화’는 어떤 영화를 가리키는 것일까? 어떤 영화이기에 개봉 일주일 만에 ‘질렸다’는 반응이 아무렇지 않게 속출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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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영화가 맞닥뜨린 위기의 형세가 심상치 않다. 거대한 자본과 손을 잡은 영화판은 날이 갈수록 몸집을 불리고 있고 ‘천만 영화’는 늘어만 가고 있는데 동시에 한국 영화에 발길을 끊은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이런 영화’에 대한 대중의 싫증이 한국 영화의 이러한 국면과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필자는 영화 《공작》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현재 한국 영화계가 마주한 위기와 결부하여 그 문제점을 분석하고자 한다.



똑같은 감독, 똑같은 배우


《공작》의 윤종빈 감독은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 《군도:민란의 시대》, 《검사외전》 등 다수 흥행작의 감독 및 제작을 맡은 상업영화 전문 감독이다. 주연 배우 황정민, 이성민, 조진웅, 주지훈은 모두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의 주·조연을 맡은 전적이 있다. 이들은 흔히 ‘흥행 보증수표’, ‘믿고 보는 감독(배우)’ 등의 호칭으로 불린다.

필자는 이러한 흥행 전문 감독과 배우들의 앙상블이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고 본다. 한국 영화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감독과 출연진들이 모두 흥행작에 적지 않게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관객이 그들을 자주 마주했다는 말이 된다. 관객이 그들을 너무 많이 봤다. 영화 제작자 입장에서는 연기력이나 ‘티켓 파워’가 증명된 배우를 고용하는 것이 안전할 수 있겠지만, 관객이 피로감을 느끼는 정도에 이른 지금 캐스팅 기준이 배우의 연기력이나 캐릭터와의 적합성보다 흥행 성공 가능성에 과도하게 편중되어 있는 것이 아닌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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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부지런히 자신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을 비판할 거리는 아니다. 그러나, 최고의 전문성을 가진 배우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연기 스타일은 결국 한정되어 있다. 본연의 캐릭터를 버리고 영화 속 인물로 탈바꿈하는 능력이 아무리 출중해도 그 능력의 범위를 넘어설 정도로 관객은 그들과 이미 친해졌다. 연기에서 느껴지는 신선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선택지를 모색하지 않고 좁은 시야에서 익숙한 얼굴들만을 바라보는 제작자들의 안일함을 탓하고 싶다.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예술인의 용기를 발휘해야 할 시점이다.



거대 자본의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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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스크린쿼터제의 축소는 한국 영화 제작사의 경영난을 야기했고 그들은 CJ나 롯데 등 복합상영관을 소유하고 있는 대기업에 줄줄이 인수·합병되었다. 이후 ‘천만 영화’가 줄지어 출현하자 금융계를 비롯한 산업자본이 영화산업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 거대 자본 및 기업의 스크린 독과점으로 이어졌다. 한국 영화 상영 일수를 보장하여 자국 문화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제도의 의도가 무색하게 한국 영화 내에서 또다시 거대 자본이 영화 생태계의 다양성을 파괴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유명 감독 및 배우와 거대한 자본을 투입하여 확실한 흥행을 추구하는 ‘텐트폴 영화’에 대한 의존도가 심각하다. 국내 최고 규모 영화 브랜드를 계열사로 보유하고 있는 한국 대표 영화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는 텐트폴 영화에의 과한 의존과 더불어 스크린 독과점 논란에 꾸준히 휩싸이고 있다. 일부 네티즌들은 그들을 ‘문화 깡패’라고 부르기도 한다. 작은 규모의 영화를 밀어내고 거대한 자본으로 제작한 천편일률적인 영화로 스크린을 점령하는 행태가 마치 약자를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깡패’와도 같다는 비판이다. 영화 《공작》의 배급사 역시 CJ엔터테인먼트인데, 거대 자본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이 영화로까지 이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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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은 텐트폴 영화 혹은 거대 배급사의 것이 아닌 영화를 쉽게 볼 수 없게 되었다. 향유하고자 하는 문화를 박탈당한 것이다. 숫자를 세기에 급급할 뿐 관객의 취향에는 관심 없는 곳에서 어떤 관객이 기분 좋은 소비를 할 수 있겠는가? 관객은 단순 소비자를 넘어 하나의 문화인으로 자리해야 한다. 대기업이 영화를 다루는 저속한 태도는 문화를 선택할 수 없는 관객을 만들었고, 문화인으로서의 가능성을 배제했다. 그러한 관객들에게 향유되는 영화는 더 이상 예술로 존중받을 수 없다. 그것은 산업일 뿐이다.



시대를 선도하지 못하는 뒤처진 예술


영화 《공작》은 남북관계를 소재로 한 첩보 영화이다. 액션을 절제하고 대사에 집중하여 긴장감을 높였다는 점에서 한국 첩보 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영화에서 펼쳐질 장면이 벌써 그려진다. 남자 배우들로만 꽉 채운 출연진, 첩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긴장감 넘치는 첨예한 대립 관계, 그 가운데 관객의 정서를 이완시키며 감동을 선사하는 동지애…. 남자들의 갈등과 화합의 과정에서 ‘남성성’을 강조하는 누아르 감성의 영화가 워낙 관객의 눈을 자주 스친 탓이다. 정작 영화 자체는 신선하다는 평이 자자하지만, 대중에게는 이미 그 평이 귀에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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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에게는 시나리오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현직 배우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남성성’의 거친 아름다움을 강조하며 남배우로 출연진을 가득 채운 영화가 양산되었다.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가 그랬고 《신세계》가 그랬고 《베테랑》이 그랬다. 이 영화들에서 여성은 남성 인물의 캐릭터를 강조해주는 도구로 쓰일 뿐이다. 영화 《아가씨》는 왜 ‘n차 열풍’을 일으켰고 수많은 마니아를 생성하여 '영화 팬덤 현상’을 끌어낼 수 있었는가? 남성성을 예찬하는 등 대중적으로 통용되는 진부한 정서에 기대지 않고 본연의 개성과 신념을 유지한 채 시대를 선도하는 예술의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영화에 관객은 마음을 뺏긴다. 《공작》이 아무리 기존의 첩보 영화와는 다른 결을 가진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 해도, 여성이 더 이상 도구적 존재로 머물지 않는 시대에서 남성만이 주인공이고 여성은 그 뒤를 받치는 이야기는 고리타분하게 들릴 뿐이다.



Opinion


국가적으로 극적인 사건이 발생하면 종종 네티즌들은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의 줄거리와 등장인물을 상상하는 놀이를 벌이곤 한다. 거대 배급사와 다작(多作)을 하는 유명 배우들, 기승전결이 뚜렷한 서사 구조 그리고 그 서사에 의존하는 얕은 철학을 담은 줄거리가 그 내용이다. 줄거리와 등장인물을 모두 설정한 후에 네티즌들은 말한다. "이미 다 봤다." 한국영화의 현 세태를 반영한 풍자 섞인 유머이다. 말 그대로 대중이 '이미 다 본' 영화가 거대 자본 하에 영화관을 점령하는 형국이다. 영화 역시 향유되는 자에 의해 그 빛을 발하는 문화이다. 한국 영화가 관객과의 진보된 소통을 지금처럼 거부한다면 아무리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영화라 할지라도 결국 문화의 빛을 처참히 잃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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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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