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금치패의 마당극 '쪽빛황혼'을 보고

어, 벌써 끝났어? 한 시간 반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글 입력 2018.08.15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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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의령의 600살 넘은 은행나무


옛이야기 속 마을에는 특별한 나무가 등장하곤 한다. 나무는 오래 살았기 때문에 보통은 크고 굵다. 사람들은 아름드리나무를 베는 것을 금기시하고 신성하게 여긴다. ‘쪽빛 황혼’에는 처음에 세 명의 신이 나온다. 그들은 무대 한편의 작은 받침대에 올라서서 나무처럼 팔을 뻗어 부채를 펴들고 서있다. 마을사람들의 안녕을 지키는 수호신인 그들은 극중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받침대에서 내려와서 마당을 휘저으며 춤을 춘다. 춤에 따라 너울거리는 신들의 옷에 눈길이 갔다. 멀리서 보기에 비단 같기도 삼베 같기도 한 소재를 조각보 연결하듯 만든 옷이었다. 해질녘의 붉은 빛을 담고 있으면서도 옅은 쪽빛도 함께 비치는 그 옷은, 따뜻한 조명아래 춤추는 신들의 움직임에 따라 곡선을 그리면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쪽빛 황혼’이 저 옷 안에 모두 담겨 있는 것 같네, 직접 보러오길 잘했다. 영상으로는 담기 힘들 현장의 생생함이었다.
 
무대의 오른편에는 악단이 있다. 네 사람이 앉아있다. 가야금, 아쟁, 징, 피리, 작은 종을 가지고 있다. 잠깐의 침묵 이후에 가야금이 서서히 뚱땅뚱땅하기 시작한다. 조용했던 무대가 한 사람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뚱땅거림으로 갑자기 긴장감으로 꽉 메워지고, 자 이제부터는 좀 다른 일이 벌어질 거야, 은근히 대놓고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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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에는 불쇼가 있다. 불을 내뿜고 아슬아슬하게 자유자재로 막 다루는 듯 한 그 불쇼 말이다. 후욱 불어서 불이 크게 화르륵 피었다 꺼졌다. 거기서 5미터도 훨씬 넘게 떨어져 앉아있었는데 그 짧은 순간 뜨거움이 나에게도 훅 전해져서 놀라우면서도 신기했다. 뜨거운 공기가 나에게 밀려오기까지는 너무 짧은 순간이었는데 어떻게 내가 그 열을 느낄 수 있었던 건지 궁금했다.
 
생각에 잠길틈 없이 이제는 북을 친다. 여럿이 원을 그려 돌고 뛰면서 북을 두드린다. 둥! 둥! 둥! 둥! 그 역동적인 북소리의 크기, 색깔, 변하지 않는 간격이 둥! 둥! 둥! 둥! 내 마음을 때렸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계속하면 공연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내 뜬구름 잡는 소리에 짜증이 스멀스멀 나더니 더 읽어 내려가기를 포기할 지도 모른다! 마당극 ‘쪽빛 황혼’의 간략한 스토리는 이러하다. 시골 살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논밭 다 팔아서 자식들 주고 서울 사는 아들네로 거처를 옮긴다. 할머니가 사기꾼 약장수에게 속아서 약을 사고 자식들에게 핀잔 들으며 서러운 중에 치매에 걸린다. 할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니 마니 하는 틈에 서울 생활이 힘들고 답답한 노부부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결국 죽음에 다다르는 듯 극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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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고 치매에 걸려 한 사람으로서의 온전한 삶을 잃어가는 할머니와 죽음을 연결 짓는 장면에서는 예전에 겪은 일이 떠올랐다. 밤중에 병원 응급실에서 일할 때였는데 환자가 금빛 이불에 싸여 들것에 실려 왔다. 이불로 곱게 싸여져 있어 어떤 환자인지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속을 궁금해 하며 펼쳐보았다. 안에는 검은 파마머리와 푸른 입술에 고통스러운 인상으로 돌아가신 70대 할머니가 있었다. 목에 끈 자국 같은 것이 남아있었다. 섬뜩함에 얼어붙었고 아무 경계심 없이 이불을 풀어헤친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사는 게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런 선택을 했을까, 끝까지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슬픔이 밀려왔다.
 
죽음 이후에 굿판이 벌어진다. 굿을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아마 그게 굿이었지 싶다. 죽은 이의 혼을 달래기 위한 것이라 하지만 사실 산 사람을 위한 노래와 춤이라는 생각도 들고, 한 시간 반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어, 벌써 끝났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또 아쉬운 점은 이번 공연을 어두운 공연장 내부에서 내 좌석에 엉덩이 딱 붙여 앉은 채로 관람했다는 점인데, 만약 야외 마당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진행되는 마당극을 본다면 그 흥겨움, 절절함이 경계를 모르고 더 멀리까지 퍼져나가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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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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