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니키가 주는 위로와 용기 [전시]

글 입력 2018.08.1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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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지탱해온 무언가가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보통 대체할 만한 또 다른 무언가를 찾는다. 니키 드 생팔은 울타리가 되어줄 것이라 믿었던 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았고, 자신의 동반자라 생각했던 남편에게 전통적인 여성상을 강요받았다. 그리고 이는 그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결국 그녀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었던 분노와 증오의 감정, 자기 연민의 감정에서 해방되기 위해 예술이라는 돌파구를 선택했다.

최근에는 '미투 운동'으로 인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부당한 것에 맞서기 위해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여성이 사회에 적극적으로 소리내는 것은 힘들었다. 그러나, 니키는 당당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고통을 준 남성을 향해, 그리고 가부장적인 사회를 향해 과감히 총을 겨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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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으로 들어서며 처음 눈에 띈 작품은 사격 회화(shooting painting)이다. 사실 이 작품은 보기에 유쾌하거나 즐거운 작품은 아니였다. 석고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감들이 피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한참동안 서서 작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니키가 "사격회화를 통해 부친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남자들, 어머니, 심지어는 나 자신에게도 총을 겨누어 쏘았다"라고 했던 말을 떠올렸는데, 자신에게까지 총을 겨눌때 그녀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어떤 기분이었을까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조금 극단적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니키가 총을 쏘았을 때 무언가를 죽였다고 생각했다. 총구가 향해있는 대상(남성, 사회, 자신)이 아닌 그 대상이 표상하고 있는 것(성폭력을 저지른 부친, 가부장적 사회, 무력했던 과거의 자신)을 죽인 것이다. 그렇게 총을 쏘는 행위를 통해 분노를 표출하고, 공격성을 해소하면서 치유의 단계를 거쳐가던 니키는 연작인 '나나'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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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 회화에서 죽었던 과거의 무기력한 니키는 '나나'를 통해 다시 되살아난 것 같다. 사회가 요구하는 마르고 연약한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에 반하여 니키는 풍만한 곡선을 가진 자유분방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니키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고통 뿐 아니라 첫 남편에게서, 그리고 사회로부터 정형화된 여성상을 강요받으며 고통받았다. 치유를 통해 분노를 다스린 그녀가 이제는 그녀를 가장 고통스럽게 했던 기존의 전통적인 여성상을 뒤집는다. 이는 그녀가 새로운 이상적인 여성상을 만들어냈다기 보다 있는 그대로의 여성이 가장 아름다우며, 여성상에 대해 함부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을 나나를 통해 보여주었다고 할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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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드 생팔의 작품 스타일은 < 사격 회화 >의 어둡고 과격한 분위기에서 < 나나 > 연작 이후로 원색적이고 발랄한 분위기로 바뀌었는데, 이러한 그녀의 스타일과 분위기는 < 타로정원 >에 이르기까지 크게 변함이 없다. 이러한 변화에 큰 영향을 준 건 아마 사랑하는 연인 장 팅겔리와 국경을 초월하는 우정, 요코 일 것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타일로 만든 작품은 팅겔리와의 만남과 헤어짐, 또다시 만남 등 사랑의 과정을 보여준다. 일부러 꾸며내거나 정제되지 않은 솔직한 표현, 쨍한 색감이 마음에 든다. 또한 요코에게 보낸 그림편지에는 서로가 얼마나 서로를 생각하고 아끼는지가 보여서 보고 있는 자신이 괜히 뿌듯할 정도였다.니키는 비록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지만 사람을 통해 상처를 회복하고, 다시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몸은 지구 반대편에 있지만 니키의 작품을 발견하고, 끝가지 후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는 요코와 의견 충돌이 잦고, 서로 다른 연인이 있지만 평생의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는 동지임에 틀림없는 팅겔리. 그들이 없었다면 니키의 삶과 예술활동은 어땠을까? 그들이 없었다면 니키는 지금처럼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없었을까? 아니다. 시작은 니키가 완성은 팅켈리 그리고 요코와 함께 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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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 관계를 맺는 동안 작업한 화려하고, 통통 튀는 그림과 조형작품들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녀는 이처럼 밝은 작품을 하기까지 어둡고 우울한 시간을 거쳐왔다. 만약 그녀가 자신의 고통을 마주하기 꺼려 했다면, 피했더라면 여전히 절망의 시간 속에 갇혀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니키는 자기 안의 가장 어두운 것들을 끄집어내어 작품으로 승화시키면서 치유의 시간을 거쳤다. 그뿐만 아니라 작품 안에 녹아있는 그녀의 고통과 절망, 그리고 비극적이었던 과거의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전해주었다.

니키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거나, 말못 할 고민이나 상처를 안고 가는 사람들에게 달라지고 싶은데 무언가 하기 무섭다면 전시장으로 걸음을 옮길 용기는 한번 내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현재 미투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데, 미투가 하나의 목소리가 이처럼 큰 파동이 되었듯이 그녀가 작품을 통해 사회에 외치는 고발 역시 되돌아오는 메아리가 아닌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닿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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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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