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니키와 나눈 대화 '니키 드 생팔 展' [전시]

글 입력 2018.08.10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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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드 생팔 展
마즈다 컬렉션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
2018.06.30 -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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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를 접하기 전, 니키 드 생팔이라는 예술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프리뷰 자료로 니키를 접했을 때, 그는 세상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 강렬하고 도발적인 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격회화의 실물은 어떨까?', '나나의 실제 크기는 얼마나 클까?'와 같은 궁금증과 기대감을 가지고 전시회 입구의 검은 장막을 젖히며 들어갔다. 장막 안은 내 예상을 빗나간 공간이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전시는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01. 개인적 상처와 치유


첫번째 섹션 '개인적 상처와 치유'에서 먼저 만나본 작품은 니키의 사격회화들이다. 사격회화란 물감이 담긴 깡통이나 봉지를 부착한 석고 작품에 총을 쏘는 방법으로 제작된 회화, 조각, 퍼포먼스를 뜻한다. 니키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받은 성적 학대와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굴복된 여성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격회화 양식을 사용했다. 고통과 상처를 총으로 겨누면서 치유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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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마녀


여러 사격회화 작품들 중 뇌리에 박힌 작품은 '붉은 마녀'였다. 석고로 제작된 한 여성이 담긴 이 작품을 보며 나는 니키가 자신의 자화상을 그린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작품 속 여성은 신체 중간 중간 구멍이 뚫려있다. 마치 핏빛과도 같은 붉은 색 물감을 뒤집어 써 더욱더 고통스러워보이기도 한다. 이 여성은 '붉은 마녀'이다. 과거 중세시대부터 현재까지 마녀가 주는 어감을 생각해보았을 때, 작품 속 여성의 삶은 평탄해보이지 않는다.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이었던 1960년대, 가부장적 사회에 반하는 의견을 표출했던 니키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을 것이다. 특히 남성이 대다수인 미술계에서 니키에게 그다지 좋은 시선을 보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니키는 오히려 그들에게 당당히 '그래, 나 마녀야'라고 외친 듯 하다. 작품의 옆 면 벽을 차지한 영상 속에서 결연하게 총구를 겨누는 니키의 눈빛이 말해주고 있었다.

전시는 바로 '나나' 연작들로 이어졌다. 조각상들은 생각보다 훨씬 커서 놀라웠고 칠이 벗겨진 부분이 거의 없어 보존 상태에 두 번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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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임신을 보고 만든 작품인 나나들은 전시회장을 자유롭게 누비고 있었다. 어딘가로 금방이라도 뛰어갈 듯한 나나, 거꾸로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는 나나는 이 전시회장에서 가장 즐거워보였다. 널찍하게 공간배치를 한 전시회장 덕분인지 보는 관람객의 입장도 자유롭고 속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사진과 별반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한 것과 달리 조각은 훨씬 생동감 넘쳤다.

'나나'들은 모두 사회가 주입한 여성의 미와는 거리가 멀다. 조금은 뚱뚱하고 비율이 좋지 않으면 어떠랴? 그 누구에게도 여성의 몸을 품평하거나 획일화 할 권리는 없다. '너가 나를 보며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지금 내가 너무 좋고 나는 자유로워!'라고 마치 '나나'는 말하는 듯 했다.



02. 만남과 예술


나나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두번째 섹션, '만남과 예술'로 넘어갔다. 니키는 1956년 조각가 장 팅켈리를 만난다. 뜨거운 사랑과 갈등, 이별을 겪은 뒤 1971년 둘은 서로가 평생을 위한 동반자라는걸 확신하며 결혼한다. 기계 작품들을 이용한 장 팅켈리의 조각들은 니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장과의 예술적 교류로 니키는 3차원적 구조물과 조형 예술물들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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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등을 맞대고 앉은 니키와 장 팅켈리의 머리 속에는 각자 서로의 생각 뿐이다. 따뜻한 색감들과 이목구비를 이용한 조각의 감정표현을 봤을 때, 장 팅켈리를 향한 니키의 사랑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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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당신은 무얼 하나요?


이 뿐만 아니다. 니키는 종이에도 많은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여기에서도 연인에 대한 니키의 사랑이 물씬 느껴진다. '내 사랑, 당신은 무얼 하나요?'에서는 연인과 떨어져 있을 때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궁금해하던 니키의 관심과 사랑이 느껴졌다. 마치 잡지들을 오려붙여 콜라주 한 것 같은 니키의 그림은 디테일 하고 그림 하나하나마다 니키의 자필로 설명이 적혀있어 해석하며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 무렵 니키는 지구 반대편 일본의 요코 마즈다 시즈에와 만나게 된다. 니키의 그림을 보고 한눈에 매료된 요코와의 인연은 20년동안 지속되었다. 둘의 우정은 요코에게 보냈던 니키의 그림 편지에서 잘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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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에게
2000년 8월 17일
로라는 상을 받은 것 보다
나스에 온 걸 황홀해했어요
당신의 금빛 쇼지 스크린이 도착했어요
아주 멋지고 나는 그게 매우매우 좋아요
나는 그것을 프린세스 스트릿에 있는
나의 침실에 놓을 거에요
그것은 내 방을 마법의 공간으로 바꾸겠지요
그것 앞에 작은 부처와 난초를 놓았어요
나의 모든 사람과 감사를 담아서 니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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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의 내용은 작품에 대한 고민부터 보내준 미소 시루를 잘 먹었다는 일상적인 이야기까지 다양했다. 바다 건너편 친구를 위해 일일히 그림을 그리고 알록달록 색칠한 니키의 편지들과 그 편지를 구김없이 온전한 상태로 보관한 요코의 정성을 보면서 둘은 멀리 떨어져있었어도 항상 서로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여겨졌다. 요코에 대한 니키의 사랑이 정성어린 편지였다면 요코는 니키의 작품을 수집하고, 각종 매체에 니키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요코의 노력은 세계 최초로 니키의 작품만을 담은 일본 니키 미술관을 건립하기도 했다.



03. 대중을 위로하는 상징


1970년 후반부터 니키는 타로공원 건립에 박차를 가한다. 가우디의 구엘 공원에서 영감을 받은 니키는 신화와 전설들에 상상력을 혼합한 환상적인 공간인 타로공원을 이탈리아에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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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들은 타로카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왜 하필 타로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니키는 타로공원을 치유의 공간으로 제작한 것 같다. 흔히 우리는 뭔가 고민이 있거나 막막할 때 타로를 보곤 한다. 미신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결과에 위로를 받기도하고 걱정을 한시름 덜기도 한다. 니키 역시 타로공원에서 대중들이 자신의 작품들로 위로받고 가길 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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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작품을 다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마치 타로 공원처럼 배치된 전시장에서 니키의 예술품들과 사진들을 살펴보며 타로공원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전시를 다 보고 나오며 타로공원을 촬영한 영상 앞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엄청난 크기의 작품들을 실제로 본다면 경이로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언젠가 꼭 타로공원을 방문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출구의 검은 장막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안녕 니키, 다음에는 타로공원에서 만나요.


[정선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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