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이름은, 「레이디 버드」 [영화]

글 입력 2018.07.31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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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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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레이디 버드” 맥퍼슨. 참 유별난 이름이다. ‘크리스틴’은 부모님이 지어주셨고, 따옴표 안의 ‘레이디 버드’는 그녀가 직접 지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그녀를 ‘크리스틴’이 아닌, ‘레이디 버드’라고 부른다. 그녀의 부모님이라도 예외는 아니다.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을 부정하고, 스스로를 ‘레이디 버드’로 정체화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부정하는 건 비단 이름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집, 가족, 고향, 학교, 외모처럼 본인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온갖 것들을 싫어한다. 그래서 가끔은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레이디 버드’의 가장 큰 목표는 지긋지긋한 ‘새크라멘토’를 벗어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만 아니라면 뉴욕이든 햄프셔든 상관없다. 그래서 뉴욕에 있는 대학교 몇 개에 원서를 쓰기도 했다. 모두가 일말의 가능성조차 없다고 입을 모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순탄치 않았다. 비싼 학비를 감당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며 엄마가 그녀를 막아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탈(脫) 새크라멘토’에 대한 그녀의 열망을 말릴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레이디 버드’는 부잣집 아이들에 대한 질투 어린 동경이 가득하다. 아마 ‘철도변의 구린 쪽’에 위치한 집과, 모든 걸 돈에 치환하는 엄마의 말버릇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짓말로 자신을 포장하며 그토록 동경하던 무리들과 친해지게 된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거짓말이 들통나고 관계가 으스러질 위기에 처하자 ‘레이디 버드’는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한다. “그래도 우리 아직 친구지?”

  

하나씩 되찾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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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의 관계에 집착하던 때도 있었지만, 부잣집 아이들의 삶이라고 특별히 다를 건 없었다. 허울과 거짓뿐인 관계는 청산하고, 이제 진심이 통하는 친구에게 돌아갈 시간이다. 함께 있으면 서로가 온전히 서로일 수 있는 친구 말이다. ‘레이디 버드’는 한동안 멀어졌던 친구인 ‘줄리’에게 다시 돌아온다. 어느 누가 물어봐도 당당히 ‘절친’이라고 소개할,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친구에게로.
   
‘레이디 버드’가 뉴욕에 있는 대학에 지원했다는 사실은 그녀의 엄마에게 꽤나 큰 충격이었다. 자신 몰래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던 딸에 대한 배신감과 서운함 때문이다. 한동안 그녀의 엄마는 말문을 닫았고, 둘 사이의 대화는 자연스레 끊겼다. ‘레이디버드’는 그렇게 뉴욕으로 떠나고, 그 낯선 땅에서 아빠가 몰래 넣어둔 엄마의 편지를 읽게 된다. 엄마의 서툰 마음이 담긴, 실수투성이의 편지였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을 되찾는다. 술에 취해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 띠에 적힌 이름도, 누군가 이름을 물어봤을 때 주저 없이 대답한 이름도, 모두 ‘레이디 버드’가 아닌 ‘크리스틴’이었다. 영화의 끝을 장식한 마지막 음성 메시지에서도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나야, 크리스틴.” 그토록 부정했던 태초의 이름으로 돌아간 것이다. 꽉 찬 해피엔딩은 아닐지 몰라도, 잔잔한 감동이 묻어나는 참 따뜻한 결말이다.



‘레이디 버드’로 사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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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길거리를 배회하는 그녀의 모습이 예전과 닮아 보인다. 달라진 것은 배경과 주변인, 그리고 그녀의 이름뿐. 그때는 ‘레이디 버드’였고, 지금은 ‘크리스틴’이다. 하지만, 주변 환경이 어떻든 그녀가 그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레이디 버드’로 사는 동안, 그녀는 누구보다 빛이 났다. 그렇기에, ‘크리스틴’으로서의 그녀 앞에 다시 펼쳐질 나날들도 틀림없이 빛날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빛날지도 모르겠다. 바람 잘 날 없던 사춘기가, 웬만한 풍파에는 끄떡없을 만큼, 그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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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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