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굿바이, 스피릿 핑거스 [기타]

'스핑'이 선물한 사색의 시간
글 입력 2018.07.2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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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우연이는 평범하고 소심한 여고생이다. 여느 웹툰의 주인공처럼 예쁘지도 않고,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지만 그래서 더 응원하게 되는 우리의 주인공 우연이는 어느 날 공원에서 크로키 모임인 스피릿 핑거스를 만난다. 그 이후, 조금 수상하고 특이한 '스핑' 모임은 놀랍게도 무채색이었던 우연이의 지루한 일상을 변화시키게 된다.

하고 싶은 건 많지만 용기는 없었던 소심한 여고생이 나만의 색을 찾아 떠나는 여행 이야기, 스피릿 핑거스를 소개한다.



소심함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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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심하다. 항상 남의 눈치를 보고, 하고 싶은 말도 제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 같은게...’ 라는 생각 때문에 꿈은커녕 현실의 작은 문제 앞에서도 벌벌 떨고, 틈만 나면 환상을 꿈꾸지만 환상을 현실로 옮길 용기는 없다.

우연이는 나와 정말 많이 닮은 캐릭터이다. 무언가를 하나 고를 때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보다 남들의 시선을 먼저 생각하고, 습관처럼 자책하며 자존감을 깎아내린다. 내 모습과 너무 비슷하다는 걸 알면서도, 제3의 시선으로 본 우연이의 모습은 참 답답했다. 스스로 자신을 깎아내리고 억압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하지만 스피릿 핑거스를 만난 후 우연이는 변화한다.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가능성을 믿어 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좋아하는 것으로 하루를 채우며 살아가게 된다. 변화한 우연이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소심함이란 한 사람의 무능이 아니라 억눌린 사회가 만들어낸 불편한 선택이 아닐까. 사실 어렸을 때부터 등수를 매기는 교실에 던져져 숨 쉬듯이 평가당하고 비교당하는 세상에서 소심하지 않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가능성을 사랑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큰 변화를 겪은 우연이처럼, 자기 자신을 억누르는 소심함을 극복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은 3분 크로키처럼 생각보다 사소한 것일지도 모른다.



알록달록 나만의 색을 찾아


"좋아하는 색..? 그런 거 딱히 없는데..."

스피릿 핑거스의 멤버들은 각자 고유의 색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스핑의 새 멤버가 된 이후 우연이도 고유의 색을 정하게 되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색깔이 뭔지 고민해 본 적이 없었던 우연이는 무난해서 남들 눈에 띄지 않는 그레이를 고르려고 한다. 하지만 고유의 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색으로 정해버릴 수는 없는 법. 혼란을 겪는 우연이에게 블루 핑거는 베이비블루를 추천하고, 우연이는 처음으로 색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한다.

멤버들의 고유의 색이 모두 다 달라서인지, 스피릿 핑거스가 한자리에 모이는 신에서는 다채롭고 아름다운 색감을 느낄 수 있다. 레드, 블루, 민트, 블랙, 핑크, 카키, 베이비블루의 다양한 색으로 대비되는 스핑 멤버들은 각자의 개성이 너무 뚜렷해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오히려 모여 있을 때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색채를 띤다. 알록달록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채는 이 만화의 가장 큰 강점이자 정체성이다. 생각해보면 색깔은 색깔일 뿐, 더 좋거나 나쁜 색깔로 우열을 가릴 수 없다. 또 같은 블루라도 베이비블루, 코발트블루 등으로 수없이 분화되므로, 세상에는 정말 많은 종류의 색깔이 있을 것이다. 스피릿 핑거스는 그 중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하나의 색을 찾아 떠나는 여행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 다채로운 여행의 과정은, 우리가 세상의 수많은 색 중 더 훌륭한 색을 찾고 남들이 많이 하는 무난한 색을 좇느라 정작 나에게 어울리는 색이 무엇인지는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누구의 색이 더 빛깔이 곱고 잘났는지 비교하느라 서로 다른 색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무지개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되짚어보게 한다.

이를 대변하듯, 작품의 첫 화와 마지막 화의 색감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고유의 색을 정하라는 말에 ‘튀지 않고 무난한’ 색깔을 고르려던 우연이와 당당한 ‘베블 핑거’로 거듭난 우연이는 같은 인물이지만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전보다 행복하고 다채로운, 무채색에서 유채색으로 변한 우연이의 세상을 보며, 세상을 바꾸기 위한 첫걸음은 어쩌면 나에게 어울리는 색을 찾아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대로 하는 크로키


첫 화에서 우연이는 3분 크로키의 모델을 찾고 있던 선호의 눈에 띄어, 공원 한가운데에서 모델을 서게 된다. 우연이는 진지하고 열성적인 자세로 자신을 그리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얼마나 엄청난 결과물이 나올까 기대하지만, 3분이 끝나고 보게 된 이들의 작품은 마치 초등학생이 그린 것처럼 형편없다.

"맘에 들면 가져도 돼요!"

그림을 보고 어이가 없어 웃고 있던 우연이에게 그림의 주인인 핑크 핑거는 이렇게 말한다. 선호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그림도 다를 게 없었지만, 이들의 태도는 당당하다. 이렇게 형편없는 그림을 그려 놓고, 이 자신감은 대체 뭐란 말인가.

이것이 우연이와 스피릿 핑거스의 첫 만남이다. 스피릿 핑거스의 그림은 확실히, 객관적으로 형편없다. 정석대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선호 하나뿐이다. 하지만 정석대로 잘 그리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각자의 개성은 뚜렷하다. 실물보다 뚱뚱하고 못생기게 그리는 사람,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게 그리는 사람, 실제 형태를 마음대로 변형시켜 그리는 사람 등등. 그림은 형편없어 보일지언정 자기 개성대로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이를 평가하거나 비교하려 하지 않는 스피릿 핑거스의 표정은 항상 행복해 보인다. 좋은 평가를 얻으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니, 서로의 그림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그리는 과정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이 대목을 보면서 문득 얼마 전 읽었던 유시민 작가의 ‘어떻게 살 것인가’ 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일이다. 자기 결정권이란 스스로 결정한 삶을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의지이며 권리이다.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다."

스피릿 핑거스의 그림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림의 객관적인 훌륭함 때문이 아니라 손 가는 대로 그린 그들만의 하나뿐인 그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이 객관적으로 잘 그려졌는지 아닌지는 사실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보다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마음을 충분히 담아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꼈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이는 비단 3분 크로키에서만이 아니라, 유시민 작가의 말처럼 인생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세상을 바꾸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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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나는 모범생이었다. 항상 남들의 눈치를 보고, 시키는 것을 하면서 소심하고 얌전한 일상을 살았다. 정답이 아닐까 봐 내 의견을 말하지 못했고, 겁이 많아 내 진로를 결정하는 일마저 남들의 손에 맡겼다. 그때는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이라면 당연히 무채색의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 일상을 벗어나면 뭔가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내가 가질 수 없는 일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속으로는 즐겁고 새로운 일이 일어나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가질 수 없는 일상이란 없었으며, 내가 사는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참 간단했다. 바로 내가 바뀌는 것. ‘이런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내가 바뀌면 내 세상도 바뀐다는 걸’ 깨달은 우연이의 말처럼, 나는 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스피릿 핑거스를 읽는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웹툰 '스피릿 핑거스'
한경찰 작가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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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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