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타인의 창②: 최악의 하루 – 진심과 거짓의 경계 [영화]

진짜라는 게 뭘까요. 전, 사실 다 솔직했는걸요.
글 입력 2018.07.29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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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내 감정과 생각들을 글자로 옮기면서 어떤 것들은 과장되기도 하고 가끔은 욕심에 끼워 넣은 수식어구 뒤로 가려지기도 한다. 이를 경계하면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신중하게 분별하는 작업이 항상 이루어지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쓰다 보면 스스로 의심이 들 때도 많다. 있어 보이고 싶어 내 진심을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는 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박제되어 버린 언어가 치기 어린 투정이 될까 겁나서 망설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쓰는 글이 거짓말인지 아닌지 분별할 수 없게 될 때도 있다.

사람을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대하는 것이 어려웠다. 아무렇지 않게 살다가도, 이전의 나와 일관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게 되면 혼란스러웠다. 이게 나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행동인가?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맞을까? ‘나’라는 사람에 대해 더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고민은 가중되었다. 그 때 나는 나에 대한 하나의 ‘진짜’ 이미지를 찾고 싶었고 그것에 벗어나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의 가장 가식적이라고 느꼈던 면모부터 벗어 던지고자 마음먹었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그러고 나서는 무엇을 어떻게 할지 몰랐다는 것이다. 무방비의 민달팽이처럼 맨 얼굴이 되어 한동안 힘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학교 선배와 대화를 나눴는데, 선배는 무엇이든 좋아하고,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밝은 척했던 지난 날의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얼마 동안은 날 부담으로 몰아 넣은 그 가면이 너무 무거웠다고 생각해서 약간 미웠지만, 대화를 하면서 결국 그것도 나였구나 싶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내가 인정 받고 싶었던 모습대로 보였고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알았는데, 내가 ‘사실은 아니었어’하고 어떤 설명도 없이 뒤돌아 버리니 남은 사람들은 좀 당황스럽지 않았을까.

언제부턴가 정말 편한 사람들 몇몇을 제외하고는 사람을 대할 때 난 항상 어떤 벽을 느껴왔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한 척’들을 했었는데, 거기에 스스로 지쳐버린 상태가 되고 말았다. 사실 마주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그런데 나는 또 다시 이분법에 갇혀 진심이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졌던 것이다. 이전처럼 행동하기에는 마음에 걸렸고 다르게 하자니 방법을 모르겠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그 시점에 ‘최악의 하루’를 연출한 김종관 감독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약간 충격을 받았다. “상대방에게 진심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거다.” 는 말 때문이었다.


긴긴 하루였어요. 
하나님이 제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한 날이에요.
안 그러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겠어요.
그쪽이 저한테 뭘 원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원하는 걸 드릴 수도 있지만,
그게 진짜는 아닐 거에요.
진짜라는 게 뭘까요.
전, 사실 다 솔직했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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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하루’를 보내는 장본인인 은희는 배우 지망생이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 하루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안 좋은 경우의 수가 겹친 날을 그리고 있다. 은희는 남자친구 현오를 만나러 가는 길, 자신에게 길을 묻는 료헤이를 목적지로 데려다 주게 된다. 차를 사주겠다는 그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은 은희는 료헤이와 시간을 보낸다. 료헤이가 자신을 ‘거짓말을 하는 직업’, 소설가라고 소개하자 은희는 자신도 비슷하다며 대화를 이어 간다. 그러던 중 현오에게 연락이 오자 길이 막혀 늦는다고 거짓말을 한다. 계속되는 재촉에 마지 못해 일어난 은희는, 현오를 만나 일본인 소설가를 만나고 오는 길이라고 털어놓지만 그가 의심하자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말다툼은 사실 귀여운 수준이고, 최악의 하루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남산까지 가서 만난 현오와 티격태격하던 은희는 자신의 이름을 다른 여자와 착각한 현오 때문에 화가 나서 산을 내려간다. 그러던 중 자신의 SNS에 올린 게시물을 보고 찾아온 전 애인 운철에게 붙잡혀 남산 아래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온갖 미련으로 점철된 태도를 보이던 그는 갑자기 와이프와 재결합하기로 했다며 은희의 뒤통수를 친다. 은희는 또 다시 화가 나서 운철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경고하고 혼자 남산으로 올라가는데, 남산에 남아 있던 운철과 일을 마치고 내려오던 현오가 마주치는 극한의 위기가 닥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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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었던 지점은, 료헤이와 현오, 운철을 대하는 은희의 태도가 굉장히 제각각이어서 자칫하면 ‘밥 먹듯이 거짓말 하는 사람’으로 비춰질 법한 데도 은희가 그렇게 밉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행동을 보면서 어장 관리 같은 속물적인 단어가 연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건 ‘그녀의 사정’을 모두가 비슷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세 사람에 대한 은희의 태도가 너무 달라서 무엇이 진짜인지 헷갈리게 만들기는 하지만, 어쨌든 은희는 모두에게 어느 정도 진심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거짓말을 많이 하는 상대에게 관계의 중심을 내 주고 싶지 않아서 한 거짓말, 자신의 슬픔을 애도하기 위해서 보인 과장된 태도까지도 진심의 경계에 속하는 만큼, 단편적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플한 관계 속에서 오히려 더 복잡한 생각과 감정이 생긴다는 것은 극중 료헤이가 자신의 소설에 쓴 모티프이기도 하다. 그는 ‘연애에는 사람의 욕구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상대에 대한 이타심 때문에 고민이 생기기도 한다’고 언급하는데, 마치 은희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한 비유다. 은희를 중심으로 얽힌 연애 관계 또한 각자가 가진 욕망, 자존심, 감정, 이기심, 자기방어로 인해 무엇이 진심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되는 상황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극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각자의 욕망이 충돌하는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두 남자는 떠나고 은희는 한숨을 내쉬며 주저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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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즐겁게 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인물들이 아무리 명치를 때리고 싶은 면모를 지녔을지라도 참을 만 한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못나고 초라한 자신을 들키지 않으려는 모습이나 각자 지닌 합리화의 선 밖으로 나가지 않는 방어적인 태도 같은 것들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다수 영화들과 달리 망신당하는 주인공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연출 또한 신선한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작가는 이처럼 모순적인 인물들을 소설가 료헤이의 손을 빌려 감싸준다. 그러니 표면적인 의사소통은 가장 원활하지 않았지만 어떻게 보면 은희와 가장 말이 잘 통했던 인물인 료헤이는, 소설 속 인물들뿐만 아니라 극중 인물들의 운명을 쥐고 있는 결정권자인 셈이다.

한국인 은희와 일본인 료헤이가 둘 다에게 낯선 언어인 영어로 소통할 때 가장 마음이 잘 통했던 것은, 서툰 언어가 욕망을 채 담을 수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음이 틀에 박힌 익숙한 언어로 박제되기 시작하면 포장된 것을 담기가 훨씬 쉬워지니까. 서로에게 익숙한 말이 아닌 낯선 언어, 그리고 언어조차 벗어난 춤, 몸짓, 눈빛으로 소통할 때 더 자유로워지고 순도 높은 마음을 전달할 수 있게 된다. 각자 최악의 하루를 보내고 다시 만난 은희와 료헤이가 그랬던 것처럼. 둘 다 거짓말을 만드는 직업을 가졌지만, 해가 져 버린 밤의 남산에서 은희가 춤을 추고 료헤이가 일본어로 시를 읊을 때 둘 사이의 장벽은 작품 속 그 어느 관계에서보다 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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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꾸며낸 것일지언정, 거짓말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김종관 감독의 말처럼, “거짓말을 훌륭하게 하는 사람들은 그게 진심이라 생각하며 할 거라 생각하니, 거짓말을 하는 것이 진심을 다 하는 행동이기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진 감독의 말은 료헤이가 ‘거짓말을 만든다’고 자신을 소개한 이유를 보여준다. “그런데 소설가가 쓴 소설도 그렇다. 온갖 거짓말을 동원하는 행동이지만 자기 경험을 투영한 창작물이 나올 때도 있다. 그렇다고 그게 일기는 아니지. 사실 거짓말에는 자신이 되고 싶었던 모습이나 비전이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그건 창작이라는 거짓말의 특징이기도 한데 어찌 보면 은희도 그런 걸 하고 있는 셈이라 생각했다.”

나는 거짓말을 쓰는 소설가 료헤이가 현실에서 자신의 해피앤딩을 바라며 자신의 소설을 해피앤딩으로 맺을 것이라고 말하는 지점에서, 내가 한 거짓말조차도 나의 일부일 수 있다는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는 나의 면모가 다를지라도, 결국 그 행동과 생각의 주체는 나인 것이다. 글을 쓸 때나 말을 할 때 거짓말을 한다는 자괴감으로 괴롭다면, 자신을 다면적으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결과적으로 내가 행한 것이 나를 나타내기도 하는 거니까. 그래도 진심을 모르겠다면 언어를 뒤로 밀어 놓고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가장 편안한 순간 자연스럽게 나왔던 은희의 나비 같은 몸짓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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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영화 '최악의 하루' 캡쳐


[임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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