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ulnerant] 나는 불편하다 01

글 입력 2018.07.2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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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Musik mit Illust가 주 기획이었다. 하지만 최대한 퀄리티를 높게 하고 싶은 마음과 잘 나오지 않는 생각으로 인해 한 달에 한 작품을 내기도 어려웠다. 두 작품을 내야해서 그리고 싶으면서 어렵지 않게 그릴 수 있는 Clow Card 기획을 새로 냈다. 사실 땜빵 방지용이다. 하지만 그리기엔 즐거웠다. 그런데 요새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담당은 opinion이 아니기에 한 컷 혹은 그 이상의 그림과 함께 내가 겪었던 불편한 일들에 대해 한 번 적어볼 생각이다. 만화로도 나타낼 수 있겠지만 그림적인 요소보다는 '말'이 많아 글로 쓰기로 방향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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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셋. 사회가 나에게 그리고 여성에게 죄고 있는 억압. 이 코르셋에 대해 인지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오늘의 이야기는 코르셋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기에 길게 설명하지 않기로 한다. 코르셋은 다음 기회에 좀 더 진지하게 다룰 생각이다. 어쨌든 다시 돌아오자면 나는 이 코르셋을 벗는 운동, 탈코르셋에 동참하기로 했고, 탈코르셋의 가장 빠른 길인 장발의 머리를 숏단발도 아닌 숏컷으로 잘라내버렸다. 처음엔 안어울리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름대로 잘어울렸고 무엇보다도 너무 편했다. 머리를 감는데 5분도 채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말리는데에도 굳이 헤어 드라이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편안한 삶이었다. 이 삶을 남자들만 살고 여자들에겐 긴 생머리와 관리하기 힘든 단발펌을 강요하는 삶이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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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이었다. 우리 아파트 단지는 매주 주말이 분리수거일이다. 토요일에 이미 가져다 버렸는데 일요일에 또 분리수거가 생겨 버리게 생겼다. 너무 덥기도 해서, 전날 머리를 감아 또 감기는 귀찮아서 잘 보이지 않는 밤 9시쯤 버리러 단지 앞으로 내려갔다. 편하게 브래지어도 풀고 머리를 올백으로 넘겨 스냅백을 뒤로 눌러 쓰고 편안한 슬랙스 바지와 슬리퍼를 신고 나섰다. 플라스틱, 종이, 캔, 비닐 등을 분리해서 버리고 1층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엘레베이터를 타러 걸어갔다.

내 앞에는 이미 엘레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중년 부부가 서 계셨다. 나는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핸드폰을 하기로 했다. 뒤 쪽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중년 부부 중 여자분은, 소위 학교 교실에서 누가 뒷문을 열었을 때 소리가 나서 돌아보듯이 '뭐지?' 하는 느낌으로 나를 한 번 보시고 바로 시선을 거두셨다. 그런데 어디서 또다른 시선이 계속해서 느껴졌다. 중년 부부 쪽 남자가 나를 계속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뭔데 나를 계속 쳐다보는거지? 짜증이 확 치밀어 올라 '뭘 쳐다봐?' 라는 표정으로 똑같이 남자를 쳐다봐주었다. 그제서야 남자는 고개를 돌렸다. 기분이 더러웠다. 나를 동물원 우리에 갇힌 동물 구경하듯이 쳐다보는 그 시선이 역겨웠다. 분리수거를 버리러 간 나의 모습은 그저 '사람'의 모습이었다. 무릎이 늘어난 바지를 입은 것도 아니고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은 것도 아니었고 신발끈이 떨어진 슬리퍼를 신고 나갔던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티셔츠가 조금 두꺼운 편이어서 젖꼭지가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그래서 브래지어를 입지 않고 나갔던 것이고). 아니, 설령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무슨 문제인가? 나는 그저 여성들이 그동안 받아온 억압을 나 한명이라도 벗고자 머리를 짧게 친 것이었고 내 건강을 해친 브래지어를 푼 것 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나를 동물원의 동물 쳐다보듯이 쳐다볼 권리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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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니었다. 벌써 세번째였다. 앞의 두 번의 일은 인테리어 시공때문에 잠시 언니가 거주하던 원룸에서 살 때의 일이었다. 그때도 이미 나는 탈코르셋으로 머리를 짧게 자른 상태였다. 하루는 밤늦게 피시방에서 놀다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는 길에 웬 남자 한명이 뒤따라 들어와 기다리는데 나와 멀찍이 떨어져서 휘파람을 불면서 날 쳐다보는 거였다. 마치 품평하듯이. 위아래로. 빡쳐서 "뭘 쳐다봐?" 라고 되받아쳐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12시가 넘은 밤이었고 주위 상가는 거의 문을 닫고 어두운 상태였다. 솔직히 무서웠다. 나는 이렇게 더러운 기분을 받았는데 그에 대해 반박하려니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는게 서럽고 억울했다. 당시 엘레베이터가 두 대였고 기분이 나빠서 먼저 온 엘레베이터는 남자 혼자 타게 보내고 나머지 엘레베이터를 눌러 기다렸다.

도대체 나는 이러한 기분을 왜 느껴야 하는 것이고 그러한 취급을 왜 받아야 하는 것인가? 머리를 짧게 자르고 편한 복장의 차림으로 다니는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닌데. 본디 이 일은 나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대체 나는, 우리 여자들은 언제까지 이러한 더러운 경험을 해야 하는 것일까? 정말 소리치고 싶었다. 우리를 그만 쳐다보고 평가하라고. 너희들에게 그럴 권리는 없다고. 나와, 그리고 나와 같은 여자들은 너희들의 눈요기가 아니라고. 하지만 더 화나고 슬펐던 일은, 나에게는 마음 편히 소리칠 힘이 없었다는 것이다. 논리로 맞받아쳐도 힘에서 밀리면, 나는 죽을 수도 있으니까. 내가 과연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는 저 상황에서 "왜 쳐다보세요?" 라는 지극히 평범하고 '할 수 있는', '해도 되는'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그의 기분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쳐맞지 않았을까? 언제까지 이러한 공포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걸까? 모르겠다. 하지만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세상은 바뀌고 있고 나는 바뀌려고 노력할 것이다.


[배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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