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From. Iris [도서]

글 입력 2018.07.23 15: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From. Iris


<눈먼 암살자> 마거릿 애트우드 리뷰


53112874b6becda5fc62fccde7d45beb_KYyTIcVLQR3G36cN.jpg
 

사랑하는 동생과 딸을 잃고 지난날을 이야기하는 여자, 아이리스가 있다. 이 책은 아이리스가 보내온 한 통의 편지와도 같다. 누군가를 고발하면서 자신이 당한 폭력을 알아달라고 외친다. 동생을, 딸을,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도 지켜내지 못한 자신을 고백한다. 이 편지는 한 여인의 고백임과 동시에, 전쟁과 폭력의 시대 속에서 희생된 한 사람의 통찰을 담고 있다.



비극의 다른 생김새


아이리스와 로라는 캐나다의 단추공장을 운영하는 유복한 가정의 자매로 태어났다. 하지만 둘은 전혀 다른 성향을 갖고 있다. 로라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주관이 뚜렷하고, 한때는 수녀가 되겠다는 꿈을 꾸기도 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알렉스를 적극적으로 숨겨 주기도 하고,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살아가려 하는 매우 독립적인 모습도 보인다. 자신이 숭고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서는 누구보다 용기 있는 로라였다. 그렇기에 로라는 더더욱 자신의 형부인 ‘그리픈’에게 협조적이지 않았다. 결국, 로라는 언니의 남편에게 강간당하고, 정신병자로 취급받으며 강제로 낙태 수술까지 받게 된다.
 
순종, 침묵만을 강조하는 아버지의 밑에서 길들었던 아이리스는 함부로 껌을 씹을 수도, 재잘거릴 수도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마치 팔려가듯 리처드 그리픈과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그 안에서 아이리스는 충분히 불행하지만, 어찌 됐든 적응해간다. 그리픈家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치려 했고 문제를 고발하려 했던 로라가 철저하게 배제된 것과 달리 아이리스는 그럭저럭 적응해낸 것이다.

로라는 강했고, 아이리스는 약해서가 아니다. 둘의 비극은 조금은 다른 생김새였을 뿐이다. 아이리스가 로라의 이름으로 출간한 <눈먼 암살자> 소설 속에서 ‘그’는 ‘그녀’에게 당신은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와 같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부유한 집에 시집온 아이리스가 눈에 띄는 저항도 하지 않는 모습이 온실 속의 화초 같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온실 속의 화초는 온실 속에 넣어준 사람 없이는 혼자서 밖에 나올 수 없다. 아이리스는 이러한 자신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것이다. 자신이 지켜야 했던 로라를 지키는 나름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남자의 죽음을 알게 된 로라가 결국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어버린 것과 대비하여, 아이리스는 로라와 그녀의 딸인 에이미의 죽음까지 모두 지켜본 채 모든 사실을 기록한 회고록까지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불행의 모양새가, 나에게는 더 와 닿았다. 폭력과 학대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선택과 자유가 없어지는 순간 불행은 시작된다.


"나는 모래였다. 눈이었다.
누군가 쓰고, 다시 쓰고, 손으로 지워버리는."
 


이야기 속 이야기 속 이야기, 세 개의 액자 구성


이 소설은 아이리스가 써 내려가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 그리고 80대 노인이 된 지금의 이야기, 동생 로라의 이름으로 출간한 소설 <눈먼 암살자> 이야기 총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흐름을 잡아가는 것은 ‘아이리스’의 회고록이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결국 원치 않은 상대와의 정략결혼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삶에 대한 고통과 후회를 이야기한다. 그 속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동생의 죽음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어쩌면 죽음에 동조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과거를 고백한다. 아이리스는 이러한 자신의 고백이 얼마나 진실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진실을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쓰는 것을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심지어 훗날의 나 자신조차도.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이 소설의 복잡한 구성이 설득력 있는 이유를 느꼈다. 아이리스는 아름다움으로 포장되지 않은 ‘진실’을 원했을 것이다. 자신과 동생이 겪었던 끔찍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싶어 했다. 회고록만으로는 진실에 가까워질 수 없음을 알고 있었기에 로라의 이름으로 <눈먼 암살자>라는 책을 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애트우드는 회고록과 소설 이외에도 그리픈 家의 사건을 보여주는 스크랩 된 기사들이 덧붙여지는 복잡한 구성의 설정까지 선택했다. 독자들이 독립적인 세 개의 이야기를 통해 책을 덮는 순간 아이리스가 말하고자 했던 ‘진실’에 더욱 가까워지기를 바랐을 것이다.
 


아이리스의 고백


아이리스는 동생을 잃었다. 딸인 에이미까지 결국 죽음을 택했다. 더는 죽음과 불행이 에이미의 딸이자 손녀인 ‘사브리나’에게까지 미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특히, 자신만의 용기 있는 신념을 지닌, 로라와 많이 닮은 사브리나였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어둡고 쓰라린 2권 분량의 책임에도 깊은 여운으로, 어쩌면 희망일지도 모를 감정으로 책을 덮을 수 있었던 이유는 사브리나는 행복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브리나는 아이리스의 바람처럼 분명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일 것이다. 어쩌면 사브리나는 아이리스를, 할머니를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불행을 끊어낼 수 있는 것은 아이리스의 솔직한 고백, 그 회고록이 주는 ‘이야기’의 힘이었다.


사진은 행복에 관한 것이고, 이야기는 그렇지 않다. 행복이란 유리 벽으로 이 이 보호된 정원이다. 그곳으로는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다. 낙원에는 이야기가 없다. 그곳에는 여로가 없기 때문이다. 상실과 후회와 비참함과 열망이 굴곡진 길을 따라 이야기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
*


131.jpg
 

이 책의 저자는 캐나다 문학을 이끄는 페미니스트 여성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이다. 필자는 <시녀이야기>를 통해 작가를 처음 접했다. 아이를 낳는 도구로서 여성을 통제하는 디스토피아 소설로 시대를 통찰할 수 있는 강력한 메시지를 준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매력에 빠지기 입문으로 좋은 작품이다.

<눈먼 암살자>는 타임지가 선정한 현대 100대 영문소설이자 부커상을 받은 마거릿 애트우드의 대표작이다. 작가가 선사하는 엄청난 흡입력을 따라가다 보면 깊은 통찰과 여운으로 책을 덮는 기쁨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아트인사이트.jpg
 

[조연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