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食일담] 굳이 쓰는 '잉여 음식'의 이야기

후식일담 여는 글
글 입력 2018.07.1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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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고 달콤한 역사는 손등을 타고 줄줄 흐르는 호떡 소에서 시작한다.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갓 구운 호떡을 잡고 한 입 딱 베어물면 그때는 아직 안전하다. 그러나 반절 즈음 먹어가다 보면 어느 샌가 그 뜨겁고 끈적끈적한 갈색의 설탕 소가 손가락 사이를 타고 흘러내려 접시에 뚝뚝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까운지라 설탕물 범벅인 손을 닦지도 않은 채 얼른 호떡을 먹고선 손가락과 손등에 흐른 소를 빨아먹고 접시까지 깨끗이 핥아먹는 어릴 적의 내가 있었다. 좀 이른 끼니를 먹고서 출출해질 때, 이유 없이 입이 심심할 때, 혹은 특별히 피곤하거나 우울할 때마다 귀신같이 내 상태를 알아채고는 집에서 해주셨던 그 투박한 호떡이 내 어린 시절에 가장 진득하게 남은 ‘단 것’의 기억이다.

단 것은 언제나 나의 곁에 있었다. 아빠가 마트에 장 보러 가실 때면 나 역시 쫄래쫄래 따라가기를 좋아했는데, 왜냐하면 항상 먹고 싶은 과자 하나를 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기 때문이다(지금 생각해보니 어린 짐꾼을 부리기 위한 유인책이었을 수도 있겠다). 딱 하나만 살 수 있었기에 나는 작은 머리를 굴려가며 열심히 고민하곤 했다. 나의 선택은 언제나 단 과자였다. 초코송이며 칸쵸며 홈런볼같은 과자들이 내겐 장 보러 갈 때만 얻어먹을 수 있는 특별한 간식이었다. 그 자잘하고 하찮은 것들만큼 지금도 소중하게 남아있는 추억은 몇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중학생이 되면서 나의 달달한 역사도 한 단계 진화하게 된다. 카페인의 세계를 알게 된 것이다. 시험기간이 다가올수록 빛을 발하는 편의점 커피와 초코바의 조합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또 인스턴트 커피에 에이스나 치즈 쿠키를 찍어먹는 건 왜 이렇게 맛있던지. 아, 학교 매점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중학교를 가서야 처음 만난 매점이라는 존재는 나에게 군것질의 신세계를 열어주었다. 그래서인지 입학 직후에 살이 상당히 불었던 것도 기억난다. 친구랑 다이어트 내기를 하며 내 방에 있는 온갖 초콜릿과 쿠키를 가족들에게 헌납하는 헛짓도 몇 번 했다만, 그럼에도 매점에서만 살 수 있는 낱개 몽쉘의 유혹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한 개에 400원이던가 500원이던가, 하던 그 작은 몽쉘은 나의 2교시와 3교시 사이의 쉬는 시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차지하던 존재였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하여튼 그 무렵부터 나는 디저트의 세계에도 조금씩 눈을 뜨게 되었다. 디저트라고 해서 별 건 아니고, 조각 케익이나 타르트, 프라푸치노나 마카롱처럼 마트나 매점에서 파는 것들보다 조금 더 비싸고 조금 더 분위기 있게 소비되는 단 음식들 말이다. 물론 중고등학생 때에도 이런 디저트들을 좋아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디저트 세계에 빠져든 건 성인이 된 후 시간도 많고 놀러가고 싶은 데도 많아지고 용돈도 조금씩 벌게 되면서부터였다. 어딜 가든 그 동네의 카페부터 살펴보고, 맛있어 보이는 디저트집 앞에선 항상 발걸음을 멈추고, ‘빵집을 그냥 지나치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는 신념으로 길가의 빵집이 보이면 꼭 한 번 들어가 구경이라도 해야 성에 찬다.

언제부턴가 사소한 작업 하나를 할 때에도 독서실보다는 카페를, 프랜차이즈 카페보다는 개성 있는 개인 카페를 찾게 되었다. 이제는 케익 단면만 봐도 그 맛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고, 카페 메뉴판과 인테리어에서 커피 맛을 대략 추측하는 것도 가능해진 스스로가 놀랍다. 같은 가격의 디저트도 맛과 질은 천양지차일 수 있음을 깨닫고, 그래서 더 현명하고 합리적으로 맛있는 디저트를 먹는 방법을 나름대로 고안해보는 중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의 [후食일담]은 오래 전부터 천천히 탄생하고 있었다.

*

디저트, 후식 혹은 간식, 아니면 주전부리.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잉여 음식’이라는 것이다. 굳이 먹지 않아도 되는 음식, 안 먹어도 사는데 큰 지장 없는 음식이다. 오히려 높은 당과 지방 함량으로 인해 잉여의 살만 늘어나니까 안 먹을수록 좋은 음식이라고 해야 적절하려나. 그래서 혹자는 굳이 돈 주고 이런 잉여 음식을 사 먹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사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고 육천 원짜리 케익을 먹고 만 원짜리 빙수를 먹는 건 돈 낭비라고, 차라리 그 돈 아껴서 옷이나 책이나 다른 데에 쓰겠다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상하게도 이 잉여의 음식에 애착이 간다. 잉여 음식답게 음식의 본질에 그다지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 나를 즐겁게 하는 것 같다. 이들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갖는다. 한없이 우울하고 무력할 때 먹는 달콤하고 바삭한 초코 페스츄리는 마법처럼 기분을 좋게 만든다. 오후 세시 쯤 햇살 드는 카페 테라스에서 마시는 한 잔의 차는 더없이 좋은 명상이다. 한편 골목골목을 밟아 어렵사리 찾아간 디저트 카페에서 맞이하는 근사한 쁘띠 케이크는 오직 나에게만 주는 선물과 같다. 이 작고 달콤한 것들은 몸이 아닌 영혼을 찌운다. 그래서 나는 밥값과 옷값을 줄여가면서까지 끝내 이 잉여 음식을 사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디저트나 커피 전문가는 아니니 시중에 나와 있는 카페 관련 칼럼이나 수준 높은 평론을 쓸 수는 없다. 이건 그저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다른 사람과 나누고도 싶은 그런 글이 될 것이다. 굳이 쓸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굳이 쓰고 싶은 그런 잉여의 글이 될 것이다. 덤으로 이 글을 읽은 나와 같은 잉여 음식 애호가들로부터 괜찮은 카페 하나 추천받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고 말이다.


이미지 출처 : 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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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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