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또 다른 세계이자, 추억의 한 페이지 : 타샤의 돌하우스를 읽고

글 입력 2018.06.30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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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들어가 본 타샤의 돌하우스 단순히 미니어처들을 보관하기 위한 '공간', 그 이상이었다. 돌하우수는 타사의 또 다른 세계였으며 또 다른 안식처였다. 따라서 타샤의 돌하우스 만들기는 세밀한 수정 작업을 수차례 거치면서 완벽한 집으로 거듭났다.

타샤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부엌에서 일을 시작하면 더없이 좋은 냄새가 온 집 안에 퍼지곤 해요. 맛있는 요리의 비결은 양철 구이통 같은 골동품 조리 도구들 덕분이지요."

인형의 집 공간들 중에서 타샤의 집과 제일 닮은 곳은 단연 부엌이었다. 나 또한 단순히 글과 사진으로 타샤의 부엌을 보았는데도, 음식을 조리할 때 나는 향수를 자극하는 그 더없이 좋은 냄새가 책을 뚫고 한 장 한 장 넘길 때 은은하게 퍼지는 종이 냄새와 함께 내 코로 다가오는 듯 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여러 인형의 집을 만들어왔던 타샤가 가장 흥미로워하는 공간 역시 부엌이었다.
곧 타샤는 자기 생각대로 인형의 집을 고쳤다. "내가 꿈꿔왔던 부엌과는 많이 달랐어요. 무척 비좁은 부엌이었죠. 나는 식당과 부엌 사이의 문을 떼어 내고 널찍한 부엌을 다시 만들었어요."
타샤의 일상은 부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는 엠마(인형의 집의 안주인)의 부엌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종류의 음식이든 척척 만들어내는 황동 냄비, 코발트 블루색이 입혀진 도자기, 바구니, 토기 믹싱볼, 나무와 철제 도구까지 온갖 조리 기구들이 그득하다. 인형 집의 부엌 소품들은 실제 타샤의 부엌 세간들과 거의 똑같은 모습이다.

타샤의 돌하우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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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엠마의 부엌과 타샤의 부엌은 그 실질적 크기만 다를 뿐, 같다. 타샤가 특별한 날이나 크리스마스가 되면 가족과 손님들에게 대접하던 닭이나 칠면조 요리를 하는 양철 구이통, 타샤의 집 부엌에 있던 것을 본떠서 그대로 만든 미니어처 씽크대 등이 그대로 엠마의 부엌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단순히 물건만 옮겨진 것은 아니다. 추억, 듣기만 해도 괜시리 뭉클해지고, 회상해보며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몽글몽글한 그 무언가가 문을 박차고 조금씩, 조금씩 위로 올라오는 듯 함을 안겨주는 타샤의 추억이 미니어처 부엌에 그대로 옮겨져있다. 타샤는 과거를 회상할 수 있을 뿐,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녀에겐 현재와 미래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속절없이 흘러버리는 시간과 세월을 붙잡을 수 없는 인간에게 과거는 추억, 혹은 미련, 혹은 후회와 아쉬움으로 얼룩져있다. 하지만 타샤의 돌하우스 속 엠마는 타샤의 지나간 과거를, 현재를 재현해준다. 그렇기에 돌하우수는 단순히 인형의 집이 아니라 또 다른 타샤의 세계이다.


매해 겨울마다 집을 따뜻하게 해주는 코기 코티지의 장작 스토브 역시 원형을 그대로 축소해 엠마의 부엌 한가운데 놓여 있다. 1830년대식 장작 스토브를 미니어처로 만든 것인데 워낙 정교하게 만들어져서 실제로도 사용할 수 있다. 타샤는 이 작은 스토브로 요리했던 추억을 잊지 않고 있다.
"예전에 아이들이 미니어처 스토브를 꺼내서 벽난로 곁에 두고 고양이가 먹을 베이컨을 굽곤 했지요. 작은 나뭇가지로 불을 때면 진짜 요리를 할 수 있었거든요."


타샤의 돌하우스 中


타샤의 돌하우스를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의 추억을 한 페이지를 어디가 새길 수 있을까? 나는 문득 타샤의 돌하우스가 부러워졌다.

정확히 말하면, 타샤의 모든 추억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는 돌하우스라는 공간이 부러웠다. 나의 머릿 속에 혹은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추억들을 어렵고 복잡한 퍼즐처럼 갈기갈기 찢어져 제 각각 다른 곳에 자리하고 있다. 나는 아직은 깜깜한 기억의 방에서 손을 더듬고 더듬어 조금은 긴 시간을 거쳐 그 조각들을 맞춰 퍼즐을 완성시킨다. 그제야 비로소 기억 저 편으로 묻어두었던 추억 속 감정과 장면이 살포시 등장한다.

하지만 타샤의 돌하우스는 완성된 추억의 퍼즐이다. 타샤는 그 공간에서 손님들을 초대했던 날, 부엌에서 풍기던 칠면조 요리 냄새를 맡으며,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웃음 소리를 들으며, 직접 짠 리넨으로 만든 침대보의 감촉을 느끼기 때문이다. 타샤의 돌하우스는 그녀에게 또 다른 세계이며, 추억의 페이지이며, 하나의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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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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