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특별한 유럽 순례 - 시간을 파는 서점

글 입력 2018.07.04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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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는 서점



서점을 좋아한다. 뭐랄까, like와 love를 넘어선 ‘adore’ 정도라 해야 할 것 같다. 이미 한 인터넷 서점의 5년차 파워블로그이기도 하거니와 서점순례와 서평 쓰기는 나의 취미이자 업이 된 격이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프리뷰에서 적었던 것처럼,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서점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곳이다. 책은 서점에서 독자들을 만나고, 독자는 서점에서 책을 만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어 책의 역사를, 작가의 생각을 만날 수 있다. 책과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은 어떨까? 성지 순례를 하듯, 서점을 순례하는 것도 많은 이들이 테마여행으로 즐기고 있다.

최근 가장 기억나는 서점여행을 꼽으라면, 지난 2월에 다녀온 뉴욕 소호에 있는 ‘Housing Works Bookstore Cafe’다. Homelee와 AIDS 환자들을 위한 중고서점 겸 북카페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책들은 모두 기부 받은 중고서적, 심지어 직원들 모두 자원봉사자인 사랑스러운 공간이었다. 그렇다. 서점은 우리에게 시간을 팔고 추억을 파는 상점이자 공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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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는 서점>은 유럽의 서점을 탐방한 네딸랜드 작가의 기록이자 여행기이다. 아니다, 나름의 육아 고충과 딸들에게 보내는 사랑의 책편지라고 해도 좋을 법 하다. 필명 ‘내딸랜드’를 쓰는 신경미 저자는 이 책을 네덜란드에서 함께 지낸 네 명의 딸에게 특별한 유산을 남겨주고 싶어서라 하였다. 네덜란드와 네 딸. 그녀의 정체성을 절묘하게 섞은 이 책을 읽으며 나 또한 유럽으로 서점여행을 가는 듯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이 책은 총 3부로 그녀와 그녀의 딸이 지낸 네덜란드에서, 2부는 벨기에와 프랑스, 3부는 독일과 영국, 포르투갈의 서점을 담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건 바로 ‘후회’다. 대체 왜 나는 유럽여행을 하며 서점 한번 제대로 간 일이 없을까? 라는 자책감이 물밀 듯이 몰려왔다. 아마도, 20대의 나는 책은 좋아했지만, ‘명소’를 쫓아 다니기 급급했던 것 같다. 심지어 30대가 되어 다시 간 유럽은 ‘미술관’ 가기에 급급했던지라 서점은 ‘쏙’ 빼놓았던 것 같다. 다시 유럽을 찾게 된다면, 그 땐 ‘맥주’와 ‘서점’, 이 두 테마로 즐거운 여행 코스를 짤 것이라 굳센 다짐을 하였다.

<시간을 파는 서점>의 매력 포인트는 정말 서점 같은 서점만 추려 놓았고, 그 후기를 적어 놓은 점도 있지만, ‘책마을 문화’를 소개했다는 점에 있다. 서점이 전혀 있을 법하지 않은 곳에 서점의 의외성, 옛 성이나 수도원을 서점으로 탈바꿈한 사례 등등.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서점여행임을 보여주는 실예들이 많다.

최근 우리나라도 ‘독립서점’, ‘북카페’가 인기몰이 중이지만, 수익구조나 장기적인 운영 면에서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대형서점의 편리함도 좋지만, 골목 카페처럼 주민들에게 사랑 받는 서점이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바람이 나 뿐만 아니라 전국민의 바람이었으면. 최근 김소영 작가이자 전 아나운서가 쓴 ‘진작 할 걸 그랬어’에도 이런 문장이 내 바람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기도 했다.


동네에 서점이 많아지면 좋겠다. 스타벅스나 로또 판매점만큼 서점이 많아져서 사람들이 서점에 익숙해지고, 책에 친숙해져서 독서라는 습관이 널리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나중에는 어릴 적 내가 손꼽아 기다리던 이동도서관 같은 이동식 서점도 생겼으면 좋겠다. 서점이 많아지면 우리 책방 운영에 어려움이 찾아오려나.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책을 일상 속에서 접하는 사람이 늘어아서 자연스럽게 독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다시 본론으로. <시간을 파는 서점>에서 공감가는 문장을 추려 보았다.
무채색으로 살고 싶은 담담한 수묵화 같은 인생도,
두텁게 덧바르는 강한 질감의 색채를 담은 유화 같은 인생도,
하얗고 검은 대조적인 색과 빛만으로도 무한한 존재감을 발상하는 흑백 사진도,
한 해를 보내고 익숙하지만 늘 새로운 새해를 맞이하는 시점에서는 모두 다 어설픈 인생살이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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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으로, 한 여자로, 한 엄마로, 낯선 타지에서 보내는 그녀의 새해살이를 엿볼 수 있는 문장이었다. 비단 서점여행이 아니라, 여자라면 누구나 겪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민할 새해 살이, 어설프지만, 우리는 그 어설픔의 사이사이를 책으로 보듬는다면 수묵화 같고, 유화 같고, 흑백 사진 같은 저마다의 멋진 인생살이를 할 수 있으리라.


대형서점은 고객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하여 여러 가지 시도를 한다. 단순하게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책을 연결고리로 한 여러 가지 문화를 판다. 그래서 대형서점에 가면 문화의 소비자가 되면서 문화를 만들어가는 창조자가 될 수 있는 가변적인 공간이라고 느낄 수 있다. 자기 색깔을 드러내는 서점일수록 그 서점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이벤트는 하나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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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영감을 준 ‘지적자본론’과 문맥을 같이 하는 문장이었다. 아마도 서점의 위기와 상생은 ‘문화’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나는 미팅을 하러 가거나, 여행을 가거나, 혹은 취재를 갈 때 그 지역의 서점을 곧잘 찾는 편이다. 그리고 그 서점에서 하는 ‘문화’에 관심을 두고 두리번 거리기도 한다. 하나의 랜드마크처럼, 유동인구들이 모일 수 있는 서점. 아마도 공간과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벤트’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바라는 바다.) 있다면, 책을 더 사랑하고 책을 보고 책을 구입하러 서점에 가는 즐거운 발걸음이 잦아지지 않을까?


무거운 일상 속에 가벼운 산책을 하고 싶을 때
바쁘지만 한가로운 휴식 시간을 기어코 가지고 싶을 때
생각 없이 살아가지만 진지한 멈춤을 하고 싶을 때
어딘가 떠나고 싶지만 머물러야 할 때에 잠시 숨고르기하며 찾아가고 싶은 그곳의 이름은 헤이그 그리고 그 안에 자리하고 있는 서점들이다. 의외성을 보여주지만 억지스러운 면이 보이지 않는 자연스러운 반전의 매력을 보여주는 곳이 헤이그의 서점들이다.

- 본문 117페이지


여행을 좋아한다면, 서점을 좋아한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단하나의 서점을 고르라면, 바로 여기가 아닐까 싶다. 네덜란드 행정수도라고만 인식해 온 헤이그의 숨은 매력이 바로 여기였을까? 1993년, 헤이그의 가장 번잡한 거리 가운데 생겨난 여행책전문 서점 스탠리 앤 리빙스톤 Stanley & Liveingstone은 내가 꿈꾸던 서점의 모습을 갖춘 곳이다. 다음 유럽 여행에서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여행가고 싶은 곳, 서둘러 마음 속에 찜하기 버튼 하나를 눌러 두었다.


우리가 사는 지구별에는 중세시대의 프레스코화가 천정에 그려져 있는 아름다운 서점이 있다. 그 서점이 너무 아름다워서 2008년 영국의 <가디언 Gurdian>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10곳 중 1위로 매기고 ‘천상의 서점 Bookshops made in heaven’이라고 극찬한 곳이다. 또 2007년에는 렌스벨트 인테리어 건축상 Lensvelt de Architect Interior Prize을 수상하고, 2011년 론니 플래닛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중의 하나라고 발표한 시점. 바로 부칸들 도미니카건 서점 (구 셀렉시즈 도미니카넌)이다.

- 본문 121페이지


내가 쓴 책 <오늘은 수제맥주> 중 알쓸신맥(알아두면 쓸모 있는 신기한 맥주상식)에서 맥주 발전의 1등 공신은 다름 아닌 ‘중세 수도원’이라고 적어 두었다. 중세 수도원이야말로 그 시대의 지식의 집약체이자 문화발전의 큰 공로를 해 준 존재다. 맥주는 금식 기간 중 수도사들이 유일하게 마실 수 있는 음료였고, 수많은 책을 쓰고 집필하고 전파한 이들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이 내용은 영화 ‘장미의 이름’을 시청하면 간접적이지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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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중세 수도원이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탄생한 순간,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지금은 천상의 서점이라 불리는 곳 (사실 이 서점은 도미니코회 수도원에서, 군대의 주둔지로, 무기창고슈도로, 축제용품 보관 창고로 수많은 쓰라림을 간직한 곳이었다.)

하나 더, 알트 맥주의 명소로만 알고 있던 독일 뒤셀도르프의 하인리히 하이네 서점과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고 실제로 갔던 포르투갈에서 만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 버트란드 Bertrand,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두 남녀 주인공이 다시 만났던 파리 5구에 위치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까지. 모두 다 내 눈속에 담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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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네딸랜드 작가는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일상을 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추억들을 담아 서점 속으로의 여행을 안내하였다. 서점마다 책마다 숨겨둔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감성적인 유럽의 서점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실제 몸은 떠날 수 없지만, 책으로도 충분히 여행이 가능하다) <시간을 파는 서점>을 만나보자. 잠시 더위를 잊고 책 속으로 풍덩! 빠질 수 있을 것이다.


[오윤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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