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그래, 어쩌면 이것 역시도 일기

지극히 사적인 자기 고백
글 입력 2018.06.30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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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 10기 에디터로 활동을 시작했으니 아트인사이트와 연을 맺은 지 햇수로는 1년하고 반이 조금 안 되는 것 같다. ‘매주 글을 쓴다’는 것에 막연한 흥미를 느껴 며칠을 고민하며 지원서를 썼던 기억이 선연한데. 한편으로는 이렇게나 시간이 흘렀나, 싶은 진부한 생각이 든다. 사실 에디터 활동을 할 때에는 체감보다 빠르게 돌아오던 일주일에 매번 주제를 고민했고, 다른 유려한 글들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좌절감 같은 것도 조금 맛본 것 같다. ‘나는 글을 쓰는 일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일에 나보다 훨씬 큰 애정과 재능을 가진 분들이 많구나!’하는.

그래서, ‘잘’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느꼈던 감상을 솔직하게 담아두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 ‘글을 잘 쓰고 싶지만, 화려한 재능이 없다면, 문화생활을 하고 그 과정 속에서 느꼈던 이야기를 꾸밈없이 담자.’ 그래서 내게 아트인사이트는 하나의 기록이자, 일기이다.

대학교에 들어오고부터는 매년 다이어리를 쓰고 있다. 손재주가 없는 터라 흔히 말하는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는 잘 못하고, 특별한 일이 있으면 그 날 그 날 투박하게 글만 써두는 형식이다.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2014년의 일기를 읽어보니 부끄럽게도 새내기의 설렘 같은 것이 느껴지고, 그 다음해의 일기에는 스물 한 살의 어설픔이 묻어있었다. 지나고 보면 뭐든 낯뜨겁지만 그래도 돌이켜보면 추억 아닐까. 내가 이 때는 이런 일이 있었고, 그 상황 속에서 이런 생각을 했고, 그래서 나름대로 이런 생각을 했구나. 1년의 시간을 거슬러 다소 투박하고 부끄러운 글들을 보며 그런 교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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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시기나 사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학창시절부터 음악 듣는 일을 참 좋아했다. 중학생 때는 아이돌을 동경했고, 고등학교에 와서는 축제 때 밴드부에 반해 남몰래 혼자 수업 시간에 ‘드럼 선배’를 상상했다. 2012년 센세이셔널했던 ‘버스커 버스커’의 등장과 그들의 음악에 감동받아 수업시간 몰래 MP3를 들었었고, 당시 엠넷에서 하던 프로그램 <밴드의 시대>를 보며 ‘대학생이 되면 꼭 저런 경연 프로그램에 가봐야지’ 생각했더랬다. 친구들이 잘 모르는 노래를 찾아 듣던 게 왜 그리 재미있던지, 시험 기간만 되면 밤을 꼬박 새워 MP3 목록을 새로 교체하는 게 낙이라면 낙이었다.

마찬가지로 정확한 사유는 잘 모르겠지만, 늘 내 생활의 온도는 뜨뜻미지근하다. 처음에는 열의를 앞세우다가, 갈수록 흐지부지해지는 식이다. 휴학하면서 세웠던 계획들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그래도 그 중에서 꿋꿋이 실천하고 있는 일이 ‘아트인사이트’이다.

10기 에디터 기간을 마친 나는 아트인사이트에서 우.사.인(우리가 사랑한 인디뮤지션)의 PM으로 활동하게 됐다. 지방에 거주하고 있는 만큼 사실 처음에는 걱정됐던 부분이 분명 있었는데, 1년간 공연을 보고 음악을 들으면서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 본인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음악가들이 세상 곳곳에 참 많다는 것이었다. 음악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서울에만 있을 거라는 오만한 편견이 처음에는 있었는데, PRESS로 공연을 관람하고 서툴지만 인터뷰도 해보면서 많은 이들을 지탱하고 있는 힘은 열정이라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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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아트인사이트는 나에게 일기와 같다. 내 스물 셋과 스물 넷을 회상하면 그 가운데는 아트인사이트가 있지 않을까. 하루를 기록하는 방식이자, 좋은 책을 읽게 하고 좋은 공연을 볼 수 있게 하며, 때로는 새로운 사람들과 마주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 그게 아트인사이트가 내게 주는 의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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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아주 안하고 있는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그렇게나 치열하지는 못한 미적지근한 휴학 기간이었지만, 그래도 그 동안 가장 크게 깨쳤던 점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이었다. 나는 참 멋없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누군가에게 안식처가 되어줄 지도 모른다는 희망. 그 따뜻한 안도감을 비로소 20대의 중반에 들어서며 깨달아가고 있는 것이다.

휴학을 결심하기까지 나는 스스로를 작게 만드는 일에 참 익숙하던 사람이었다. 뭐랄까, 한 작가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학생과 성인의 과도기인 이 시기라면 ‘응당 그래야 할 것처럼’ 새까만 마음을 한 움큼 쥐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불필요하게 생각만 많았고, 손바닥만한 좁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자연스럽게 외로워졌다. 나만 그랬던 것은 아닐 텐데. 이기적이게도, 누군가가 내 작은 세상을 몰라주길, 그리고 또 알아주길 바랐다.

먼저 휴학을 했던 친구들이 ‘시간의 모양은 계획과 다르게 흘러갈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짬짬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벌이를 하고, 전공 관련 공부도 배워보고, 여기저기 여행도 다녀봐야지. 대신 너무 거창한 플랜은 지키기 힘들 테니 최소한의 계획만 세워야지. 그래. 이것만큼은 다 지켜서, 후회는 남기지 말아야지.

연애든, 공부든, 초심을 지키는 일은 뭐든 힘든 것 같다. 개강까지 두어 달 남은 지금, 안타깝게도그 때의 당찬 포부는 많이 흐려졌다. 전자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후자의 생각은 어느 정도 지킨 것 같다는 데에 위안을 받는다.

대학생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나는, 특이하게도 중고등학생의 세계로 들어갔다. 우연한 기회로 영어학원에서 일을 시작한 것이다. 요즘 10대들이 제일 무섭다던데. 포털사이트에서 지나가듯 봤었던 자극적인 뉴스 헤드라인들이 살풋 떠올랐다. 그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어색한 환경에 두려움부터 앞섰고, 인수인계를 받을 때 돈독한 이전 선생님과의 유대를 보며 과다한 ‘습관성 걱정증’이 또다시 슬몃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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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생활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재밌었다. 으레 누구나 그렇듯, 공부하기 싫다며 투정을 부리다가도 등을 톡톡 두드리며 장난을 걸어오던 아이들 때문이다. 계산하지 않고, 말 한마디에 쉽게 친구가 되며, 하잘 것 없는 농담에도 세상 즐거운 웃음을 터뜨리던 해맑음에 덩달아 매일 웃음이 났다. 감정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에게 정을 주는 일에 인색하던 나도 아이들 앞에서는 솔직해질 수밖에 없었다. 짜증을 날 땐 짜증을 냈고, 마지막 날에는 보고 싶을 거라는 낯뜨거운 말을 아낌없이 하며 마음이 꽤 많이 뭉클해졌다.

중학생 때, 벌을 받아 울고 있던 내게 학원 선생님이 붕어빵을 건네줬던 조각 같은 기억이 있다. 길지만은 않은 기간이었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추억으로 자리할 수 있을까. 어쩌면 아이들을 만나며 이면의 어두웠던 부분이 조금 밝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앞섰던 걱정과 달리 아이들 역시 진심으로 나를 따라줬고, 부족하다고만 생각했던 능력에 비해 어쨌든 복잡한 일을 나름대로 잘 해내지 않았는가. 지금까지도 이따금씩 연락을 해오는 아이들을 보며, 물을 먹은 휴지처럼 마음에 온기가 한 방울씩 퍼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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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적성과는 참 멀었고, 일전에는 전혀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전공과도 상관이 없는 일이었을 뿐더러, 나도 나를 못 타이르는데 누구를 인도하냐며 혼자 되뇌이곤 했다. 학원 일은 분명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간 방향이었고, 그렇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계획을 벗어나는 일도 또 다른 자양분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해야 할 것만 찾고 그 일에 실패해서 좌절감만 얻는 것보다는, ‘어제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역할은 시야를 넓혀주는 동기부여가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원에서 일을 시작했던 것,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던 것, 친구들과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났던 것, 공연을 보고 아티스트들과 직접 인사를 나눴던 것. - 영어점수나 자격증 같은 부분들은 (지금까지는) 실패한 상태지만, 어쩌면 휴학하면서 세운 가장 포괄적이고 궁극적인 목표는 이뤘는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 알지 못했던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의 소통을 통해 더 나은 내가 되는 것. 상대방이 비록 나보다 훨씬 어린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살아있는 동안은 빛나고 싶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을 먹어보고, 가본적 없는 곳을 가봐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일에 대해 쉽게 기뻐하거나 좌절하지도 않을 것이고, 대신 새로운 경험과 사람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지평을 넓히는 데 힘쓰는 것을 숙제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모든 결과는 스스로의 행동에 달려있다는 점에서 아주 어렵기도, 쉽기도 한 꿈이다. 정말로, 정말로 많은 이들과 더 넓은 곳에서 서로를 마주할 수 있기를. 마지막으로 ‘당신은 겉보기에만 노력하고 있을 뿐’이라는 책의 구절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더 멋진 세상을 만나기 위해서는 가본 적 없는 길을 가보고,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을 만나고, 해본 적 없는 고생도 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어떤 길이든 끝까지 홀로 갈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노력은 죽도록 자신을 괴롭히기 위한 것이 아니다. 더 크고 단단한 날개를 얻어, 다시금 익숙한 사람들이 있는 그 세계로 돌아오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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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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