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물과 불의 만남 [도서]

글 입력 2018.05.2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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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posites Attract'라는 단어가 있다. 나와 많은 부분에서 상반된 사람과 연애를 하거나, 친구가 되어본 적이 있었던 사람은 이 단어를 듣자마자 '아!'하고 공감할 것 같다. 이 단어는 '정반대되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끌린다'라는 뜻이다. 서로 외모, 성격, 가치관까지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나서 큰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때로 서로 다르다는 것으로 큰 시너지 효과가 생기기도 한다. 지금으로부터 130년전인 1888년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아를에서도 상반된 두 사람이 만나 역사에 길이 남을 예술을 탄생시켰다.

이택광 작가의 '반 고흐와 고갱의 유토피아'는 고흐와 고갱이 아를에서 함께 작업을 한 뒤 두 사람의 만남이 파국에 이르고 그 남은 생을 어떻게 보내고,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주목한다. 작가는 머리말에 '고갱이 없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반 고흐는 없었다는 뜻이다. 이 책을 쓰고자 마음먹은 것은 이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고흐와 고갱의 강력한 연결 관계를 이야기한다. 닮은 듯 전혀 닮지 않은 두 사람이 만난 아를에서의 기간이 없었다면 고흐의 손끝에서 나온 위대한 명작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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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카페', 빈센트 반 고흐 (1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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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카페, 아를', 폴 고갱 (1888)



물과 불의 만남

 
지금은 반 고흐 카페로 유명한 아를의 '밤의 카페'를 고갱과 고흐가 각자의 시선으로 그린 작품이다. 같은 대상을 그렸지만 두 사람은 각자가 가진 독자적인 성향만큼, 그림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도 달랐다.

"고갱이 계획적이고 자기방어적이라면 반 고흐는 흔들리는 자아를 아무런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고갱이 면의 분활과 색조의 조절을 통해 정서를 전달한다면, 반 고흐의 그림은 내면에 들끓는 열정과 혼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고갱이 상징적이라면 반 고흐는 다분히 감정적이다."

언제나 관계가 시작될 때, 더 그 관계에 간절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더 마음을 주던 사람이 바로 반 고흐였다. 고흐는 '어떻게든 고갱과 함께 있고 싶어 했다'라는 말이 책에 언급될 만큼 고갱을 친구로서 살아하고 존경하고, 더 나아가 자신도 그렇게 되고자 했다. 하지만 고갱은 고흐가 마음에 품은 뜨거운 감정에 비해 계산적인 이유로 차가운 마음을 가지고 아를에 도착했다.

당시 두 사람이 그렸던 그림을 비교해서 바라보면 어쩜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낼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고갱과 고흐가 아를에서 자주 다투고, 고갱에 대한 집착으로 고흐가 귓불을 잘랐다는 아주 유명한 일화를 떠올리지 않아도 두 사람의 그림은 다르게 느껴진다. 나는 고갱의 그림을 보면 차갑지만 부드러운 '물'이 떠올랐고, 고흐의 그림을 보면 가까이 다가가면 타들어 갈 것 같은 크게 타오르고 있는 '불'이 떠올랐다. 실제 성격도 그랬지만 두 사람의 그림에서도 상반된 온도차가 느껴진다.



서로의 다른 빛깔이 스며드는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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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의 댄스홀', 빈센트 반 고흐 (1888)


고흐는 많은 부분에서 고갱의 영향을 받았다. 위 그림 역시 고갱의 영향을 많이 받은 그림이다. 눈을 번쩍이게 만드는 강렬한 색채의 대조보다 고갱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움과 단정함이 보인다.

"'아를의 댄스홀'은 우리에게 익숙한 반 고흐의 열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별이 빛나는 밤'에 표현되어 있는 그 소용돌이치는 반 고흐의 광기가 고갱의 옷을 입고 깔끔하게 단장하고 있는 느낌이다. 어쩌면 반 고흐는 주체할 수 없는 내면의 혼란을 담아내기 위한 형식으로 고갱을 갈구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고흐는 이 그림 말고도 다른 여러 그림에서 고갱의 그림을 따라 그린다거나, 그의 기법을 사용해 자신의 작품을 완성시켰다. 고갱은 어떠했을지 몰라도, 고흐에게 고갱이 준 미술적 영향을 대단했던 것 같다. 그림 안에서도 불타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줄 몰라 보는 이까지 생생하게 그 느낌을 전달하게 했던 고흐가 이런 차분한 그림을 그렸다는 자체가 놀랍다. 고흐는 고유하게 가진 자신만의 기법을 유지하면서 고갱이 가진 화풍을 자신의 작품에 곁들이며 아를에 있는 기간 동안 손 꼽힐 작품을 그렸다.



다른 길로 떠난 두 사람


아를에서 고흐가 귓불을 자른 큰 사건이 있고 나서 고갱은 고흐 곁을 완전히 떠난다. 고갱은 '나는 아를을 떠나야 했어. 반 고흐가 너무 이상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참을 수가 없었지'라고 친구 베르나르에게 편지를 보내며 고흐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빈센트와 자신 사이에 무슨 일치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빈센트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사람을 싫어한다'라고 편지에 쓸 만큼 두 사람은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었다. 고갱은 이렇게 자신과 다른 고흐에 지친 것이다.

고갱은 도시가 주는 지긋지긋한 문명 사회에서 벗어나 태초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원시성의 공간'인 '타히티'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명작을 그려낸다. 반면 고흐는 아를에 남아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여러 정신병원을 전전한다.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그 역시 미술사에 손꼽히는 위대한 작품을 만든다. 고갱은 후에 고흐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안쓰럽게도 고흐는 그 힘든 시간에도 고갱을 계속해서 생각하며 그리워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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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가셰의 초상', 빈센트 반 고흐 (1890)


"죽음을 향해 치달아갔던 그 시절에 우리가 알고 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유며한 작품들이 완성되었다는 것은 분명 아이러니이다. 가장 불행했던 시절이 가장 독특한 작품들을 낳았다는 사실에 반 고흐의 비극성이 드리워져 있을 것 같다."

고흐는 정신병원을 다니면서 극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고통이 강화될수록 하얀 캔버스에 표현되는 그림은 더욱 아름답고 강렬해졌다. 그는 예술을 위해 자신의 고통까지 껴안은 화가였다. 고흐가 '1세기 뒤 사람들이 계시의 출현이라고 생각할 초상을 그리기를 소원한다.'라고 하며 그렸던 명작 중의 명작인 '의사 가셰의 초상' 역시 고흐가 밝히기로는 고갱의 그림 '올리브 동산의 그리스도'를 흉내 내서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이 당시 고흐의 정신적, 신체적 상황은 최악이었는데 이런 와중에도 고갱을 생각했다는 것만으러도 고갱이 고흐에게 준 영향의 깊이를 떠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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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정령이 지켜본다', 폴 고갱 (1892)


고갱은 '인상파가 그토록 혐오하던 프랑스 브르주아 문화에 대한 완벽한 실존적 거부이지 항거'라는 의미를 담고 타이티로 떠났다. 고갱은 유럽이 가진 이미지가 아닌 원시사회가 가진 새로운 공간을 화폭에 담고자 했다. 고갱의 '죽음의 정령이 지켜본다'와 같은 작품에서 고흐를 떠난 고갱이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그림에 담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고흐가 자신의 삶을 뜯어내서 그림 속에 담아내가는 동안 고갱 역시 원시의 세계로 돌아가 예술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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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에게 바치는 자화상', 폴 고갱 (1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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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빈센트 반 고흐 (1889)


불을 사그라들게 만드는 '물'을 닮은 고갱, 뜨거운 기운으로 물기를 마르게 하는 '불'을 닮은 고흐. 이렇게 전혀 다른 두 사람이었지만 예술에 대한 두 사람이 가진 생각과 열정은 결코 다르지 않았다. 고흐는 조금 더 순수한 눈으로, 고갱은 조금은 계산적이지만 현실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색채와 다양한 구도로 캔버스에 자신들의 마음을 담고자 했다. 다르기 때문에 더 강렬히 끌리고, 그래서 더 강렬히 충돌해서 만들어내는 스파크는 세상에 지워지지 않을 자국을 남겼다.


[김하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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