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극단 산울림 : 고도를 기다리며 - 산울림 소극장 [연극]

글 입력 2018.05.21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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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_포스터.jpg
 

<고도를 기다리며>
-극단 산울림 제 159회 정기공연-

by. 사뮈엘 베케트

2018.4.19 ~ 5.20
산울림 소극장


산울림의 고도는 세계의 고도!
매년 봄에 공연되는 산울림의 든든한 대표작.

임영웅 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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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스틸컷 (1)


  이렇게나 가까이에서 고고와 디디를 볼 수 있다니.
 
  산울림 소극장은 크기가 크거나 화려하기보단 어떤 '터'에 더 가까웠다. 극을 위한 터, 최소한의 공간, 그리고 그 터를 둘러 둥그렇게 마련된 관객석. 그러니까 말하자면 최소한의 공간과 바라보는 이만 있다면 극을 올려보겠다고 강하게 말하는 듯한. 그 공간을 고요하게, 그러나 빼곡히 채워진 진중한 기운이 굉장히 좋았다. 무대가 굉장히 가까웠다. 이는 연극이 시작되고 배우들이 등장하자 더욱 실감났다. 정말 바로 앞에서 배우들의 들이쉬는 숨소리마저 들을 수 있다는 게 높은 무대를 바라만 보았던 다른 연극들과는 다르게 인상 깊었던 것 같다. 이렇게나 가까이에서 고고와 디디를 볼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었다.

*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희곡을 읽을 때도 무척 어렵게 느껴졌는데, 연극을 보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희곡집을 읽을 때가 훨씬 더 이해의 방향을 찾기가 어려운 건 맞다. 이해가 어려운 걸 넘어서서 내가 이해해가고 있는 방향성에 대해 고민할 때면 이 작품이 아주 촘촘하게 짜여진 직물 같다는 느낌이 든다. 어렵고, 복잡하고, 뭐라 말을 함부로 꺼낼 수 없는... 물론 이 작품에 대한 흥미와 작품을 보며 느끼는 행복도 바로 여기서 나온다. 희곡 자체에 대해 말하자면 내 감상과 자문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니, 산울림이 선보였던 극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짧게 줄이기로 한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제목에서도 이미 나와있듯, '고도'라는 한 인물을 기다리는 작품이다. 고고와 디디는 앙상한 나무 한 그루 밑에서 하염없이 고도가 오길 기다린다. 장난을 치고, 실없는 말을 주고받고, 애써 더디게 가는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은 고도를 왜 기다리는지, 고도가 정말 오긴 하는 건지 등에 대해 전혀 말해주지 않는다. 고도가 무얼 상징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사람일수도, 추상명사일수도 있다. 아무도 일러주지 않고, 극에서 몰아가는(?) 정답도 존재하지 않아서 고도에 대해 유추하는 건 이 극을 본 사람들에게 굉장히 자연스러운 절차다. 그러나 나는 이 극을 보며 고도가 누구인지 그리 궁금하지 않았고, 그게 스스로도 갸웃할만큼 이색적인 기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나도 고도가 무엇일지에 대해 고민할 줄 알았고, 그런 시선으로 연극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는 내내 든 생각은 고고와 디디의 관계에 대한 허탄함과 궁금함이었다. 이 극은 관계에 관한 극이 아닐까. 어떤 '관계'에서 보여지는 개인의 모습들이 우리가 관객으로서 지켜보아야 할 것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고도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달까. 이들의 관계에 나는 조금 더 초점을 맞추고 봤다. 고도를 기다리는 '헤어지는 게 낫다는 걸 알지만 결코 헤어지지 못하고 내일 다시 만나는' 이들의 관계가 나로서는 더 알고 싶은 관계였다. 같은 맥락으로 포조와 럭키의 관계도 무척 재밌다. 럭키를 부리지만 그에게 쩔쩔매는 포조와, 포조를 따르지만 그에게 없어서는 안 될 럭키의 아이러니한 관계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어딘가에 끊임없이 적용하게 한다.

  이 말고도 작품 안에는 상징성을 짙게 띄는 행동이나 대사들이 줄곧 나온다. 철학적인 사유들을 무수히 뱉어내는 것 같다. 희곡으로 읽을 땐 이해가 안 가던 대사들도, 이들의 대사가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안 가던 것들도 연출을 만나니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지더라. '이런 부분에서 연출은 이런 식으로 생각했구나.', '읽을 땐 몰랐던 이 장면이 굉장히 유쾌한 장면이었구나.'하는 식. 임영웅 연출의 <고도는 기다리며>는 솔직하고 친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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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스틸컷 (2)


  앞서 말했듯 화려하고 거창한 무대는 결코 아니었지만, 나는 이 극이 굉장히 세련되게 느껴졌다. 그 이유는 배우들이 뿜어내는 기운 역시 거셌지만, 이들 각자가 역할 별로 가진 개성을 표출하는 방식과 간결하지만 두드러지는 동작들, 배우들의 의상과 조명 덕인 것 같았다. 동작이 큰 것도 아니고 자주 동선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무대를 꽉 채워 공연한 느낌은 보는 중엔 몰랐지만 다 보고 돌이켜보니 더욱 크게 와 닿았다. 자칫 지저분했을 수도 있고, 희곡을 읽었을 땐 잘 그려지지 않던 동작들인데 대사마다 착실하게 그 몸짓을 채웠다는 것에서 정말 뿌리 깊은 극임을 느낄 수 있었다. 조명의 활용도 인상 깊었는데, 극 중과 극이 끝날 무렵 밤이 되었을 때의 차이가 극의 흐름을 따르지만 정확하게 다른 분위기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이 그랬다. 음악이 없었는데, 이를 조명이 채우고 있었다.

  의상에도 많은 신경을 쓴 것 같았다. 이들의 의상을 꼼꼼히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였다. 극의 역할을 최대치로 드러내기 위해 고민했을 의상들이 정성으로 느껴졌고, 그것이 곧 이 극의 세련됨으로 굳어졌던 것이다. 대다수의 경우, 의상이 부족하지 않더라도 그런대로 중간을 가지, (독특한 의상-광대 등-이 아닌 이상) 눈에 띠거나 기억에 남기 쉽지 않은데 이 극은 의상을 하나하나 뜯어보는 재미가 있었을 정도니 말 다 했다. 이런 세심한 부분들과 연기(동작)이 만나니 무대가 텅 빈 터일지언정 탄탄하게 느껴질 수밖에.

*

  인물 하나하나가 온전히 살아있는 것 같아 보면서도 마구 가슴이 설렜다. 포조 역할은 아직도 표정과 말투가 생생하다. 사실 모든 인물이 그렇다. 산울림의 <고도>를 무척 기다려 왔는데 그 단단하게 박힌 뿌리와 밑동을 알뜰하게 느끼고 왔다. 그래서 결국 그들의 관계는 무어란 말인가? 나는 고고와 디디가 아무도 남지 않은 세상에서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이라고 생각한다. 뜨겁고 열정적인 사랑의 차원이 아니라 사랑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이. 마치 이들이 죽지 못해 사는 것처럼. 디디는 '내일', '그 다음날'이라고는 하지만 아마 이들은 그렇게 그들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들을 버티며 꽤 오래 살아온 듯하다. 내일은 목을 맬 띠를 가져오자고, 또는 우리 이제 헤어질 때가 되지 않았냐고 말하며 늙고 병들어 바지를 스스로 추켜 올리기 힘든 날까지 살아온 거다. 그 바지를 추켜올리라고 말해줄 유일한 누군가와 함께. 이들이 버티는 외로운 시간들은 언제부터 지속되어 온 거고, 언제쯤 끝이 날까. 그들은 내일 다시 그 자리에서 만날 텐데. 아마 그래왔듯 여전히 지루하고 몸이 간지럽고 잠이오고 누군가를 도우며 애를 쓰는 시간들이 계속될 것이다.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것처럼. 극은, '고도'라는 삶을 버티는 다양한 관계들에 대해 말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다른 날 같은 연극을 본 다른 친구와 우연히 이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자신은 고고와 디디가 한 자아라고 해석했다는 말을 듣고 소름이 죽 돋을 정도로 놀랐다. 본능적이고 감정에 충실한 고고와 그런 고고를 흔들리지 않게 붙잡는 디디. 싫증이 나면 우리 그만 가자고 어린 아이처럼 내뱉는 고고와 '고도를 기다려야지'하며 달래는 디디가 사실 우리의 감정과 이성을 뜻하고, 그렇게 둘은 의지하며 시간들을 살아낸다는 것. 무척 그럴싸한 이야기다. 공감한다. 재밌는 대화였어서 첨언한다.

  산울림의 <고도>여서든,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여서든, 아니면 그 이유가 무엇이든 좋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고고와 디디를 볼 수 있다면, 그들을 마주하고 그들의 시간을 함께 버티고, 그렇게 나를 버티게 하는 것들을 떠올려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주어진 세 시간을 그들과 함께 버텨보길 감히 권해본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신비로운 힘을 얻어갈 수 있을 거라, 여운을 즐기는 동안 당신들이 굉장히 행복해질 거라 자신한다.


산울림 로고.jpg
극단 산울림


[김지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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