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환상을 믿고 싶은 당신에게, 라이프 오브 파이 [영화]

글 입력 2018.05.06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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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브 파이
[Life Of P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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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영상미와 심오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라이프 오브 파이'라는 영화를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내게도 라이프 오브 파이는 영화관에서 못 본 것이 굉장히 후회되는 영화였고, 나의 영화 추천 앱 [보고 싶어요] 카테고리에 오랫동안 담겨있던 영화였다. 그런 라이프 오브 파이가 지난 4월에 재개봉을 했다. IMAX 상영관이 없었던 게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망망대해에서 호랑이와 표류하다 기적같은 환상의 일들을 경험하고 살아난 파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12년에 개봉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초월하는 화려한 영상미와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라이프 오브 파이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하는데, 실제로 3D로 경험한 라이프 오브 파이의 아름다운 장면들을 정말로 황홀하더라. 별바다 속을 뛰어오르던 고래를 보기 위해 3D를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아마 평소 같았으면 황홀한 영상미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겠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한다.

 
바로 라이프 오브 파이에 나오는
'믿음'과 '환상'에 대해서.
 
 
▲ 라이프 오브 파이 中
 
 
파이는 바다에서 표류한 시간동안 직접 겪지 않았다면 믿기 어려운 일들을 경험한다. 매일 파이를 위협하는 맹수 호랑이와의 동침, 사람의 모습을 한 오아시스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밤이 되면 모든 생물을 다 죽여버리는 무서운 식인섬, 그에 반하여 바다에서 펼쳐지는 황홀하고 아름다운 믿을 수 없는 자연의 모습 등. 그리고 마침내 극 후반부에 기적적으로 구조된 파이는 그들을 취재하러 온 일본 취재진들에게 흥미로운 두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다.
 
첫번째는 말 그대로 영화가 표현하고 있는 동물들과의 기적적인 스토리이다. 함께 표류한 다른 동물들이 모두 강자에게 죽임을 당하고 결국 호랑이와 둘이서 바다에 표류하게 된 이야기. 그러나 일본인들은 그 이야기를 믿지 못한다. 원작인 책에서는 파이 이야기를 비꼬기까지 하며 현실적으로 용납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강요한다. 일본인들의 요구에 새롭게 들려준 파이의 두번째 이야기는 파이의 실제 가족 이야기로, 이는 극한의 상황에서 서로 살인을 일삼고 심지어 인육을 먹고 살아남은 파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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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의 이 두 가지 이야기 중
어떤 것이 진짜일까?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믿고 싶은가?
 
 
친절하게도 인터넷에는 이에 대한 수많은 해석본이 존재한다. 나도 처음에는 많은 블로그의 해석을 보며 파이는 '이성', 그리고 호랑이인 리처드파커는 파이의 '본능'을 상징한다는 이야기에 꽤나 수긍했다. 그러나 단 하나, 혼란스러웠던 것은 과연 파이의 두번째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많은 해석본이 두번째 이야기가 진짜라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자꾸 파이의 말도 안되는 그 첫번째 이야기를 믿고 싶었다. 그리고 점점 더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너를 죽게 하는 건
물이 아니라
두려움이란다."

-물에 빠진 파이를 꺼내준 수영 선생님의 말-
 
 
믿음. 사람들이 생각하는 믿음이라는 건 대체 뭘까? 어떤 것을 믿을것인가? 그리고 나아가 믿음이 우리의 삶에 끼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우리는 믿는 대로 사는 걸까, 사는 대로 믿는 걸까. 우리는 현명한 판단 아래 맹목적인 믿음은 피하고, 무엇을 믿을 것인가를 주체적으로 결정해야한다. 영화에 관련된 수많은 블로그 해석들을 보며 나는 그냥 많은 사람들이 믿는대로, 그냥 그런대로 믿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안 감독도 열린 결말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믿음의 형태를 경험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믿고 싶은 이야기를 믿으세요. 라고 말하고 싶다. 나를 우물 안 개구리처럼 만드는 건 어쩌면 나 혼자 다른 믿음의 형태를 가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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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파텔 :

호랑이는 존재해요.
구명보트도 존재하고, 바다도 존재해요.

당신의 좁고 제한된 경험에
그 셋이 다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당신은 거기서 벌어진 일을
믿지 않으려는 거예요.

하지만 침춤 호가
그 셋을 한꺼번에 불러 모았고,
결국 가라앉은 거죠.

- 원작 [파이 이야기] 中 -
 

어떤 이야기를 믿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이며 '선택'이다. 그저 그 선택이 한 사람에게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때로는 이정표가, 때로는 희망이, 그리고 힘이 되는 것만은 분명할 뿐. 파이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아주 극한의 순간에서 신에 대한 믿음으로 생존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어떤 이야기를 쫓을 것인가? 내 경험과 생각의 틀 안에 맞는 자칭 '상식적'인 이야기를 믿을 것인가, 아니면 믿어지지 않더라도 그 사람이 경험한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볼 것인가.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후자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물론 이렇게 말해놓고 실제로 내 앞에 파이 같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나는 또 다시 좁은 내 세상과 눈 안에 갇혀있을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파이의 이야기가 진실이든 아니든간에 세상에는 분명 내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도 많이 일어나고, 그건 마법도 환상도 아닌 우리 옆에서 살아 숨쉬는 이야기들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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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전 세계에는 종교가 아주 다양한 형태로 퍼져있다. 또 그에 따른 믿음의 형태도 아주 다양하다. 이러한 다양한 믿음의 형태를 한마디로 일축하기라도 하듯, 성경에는 '주를 부인하면 주도 너희를 부인하실 것이라.' 라는 구절이 있다.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며 어디선가 읽었던 이 구절이 이상하게 자꾸만 기억에 남았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믿느냐는 나의 믿음에 달린 것이 아닐까? 결국 나는 내가 믿는 이야기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갈 것이다. 첫째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내게는 답답하게 느껴졌던 일본인들이지만, 나 역시 언젠가 어떤 이야기를 들을때 누군가에게 그 일본인과 같은 태도를 취했을지도 모른다. 과연 우리가 믿어온 이야기는 무엇이었고, 앞으로 믿어야 할 이야기는 어떤 것인지. 늘 보고 들었던 것들만 쥐고 살았던 건 아닌지. 끝없는 고찰을 하게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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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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