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상가 고야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 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 @츠베탕 토도로프

Goya A L'Ombre Des Lumieres
글 입력 2018.04.28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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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
- Goya A L'Ombre Des Lumier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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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내용에 앞서


이 책은 고야의 삶을 세세하게 다 이야기 하지 않는다. 또한 그의 작품 전체를 분석하지도 않는다. 더더욱 그의 작품 세계의 주요한 면들인 초상화, 종교화, 정물화, 투우 그림 등은 다루지 않는다. 만약 고야의 그림에 대해서 알고자 이 책을 골랐다면 아마 꽤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저 이 책은 '고야의 사상'에 대한 이야기만을 다룰 뿐이다. 궁정화가로서 권력에 기대고 그것을 추구하던 고야는 예술을 통해 현실의 부조리를 직시한다. 전기와 이력 등 그가 남긴 그림과 글, 그리고 생애의 몇몇 행동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그의 사상에 대해 알 수 있다.

물론 '고야'의 이름을 들으면 괴물 같은 광기가 불러일으키는 섬뜩한 공포를 그린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가 가장 먼저 생각날 것이다. 나약한 인간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광기와 공포를 묵직하게 표현한 화가라고 기억되지만 사실 그의 삶을 살펴보면 단편적인 사실로 그를 쉽사리 일반화 할 수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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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가난하고 헐벗은 채로 간다


고야의 데셍 중 하나인 <철학은 가난하고 헐벗은 채로 간다>이다. 오른손에 작은 책을 든 소녀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옷 차림새와 신발이 없는 것을 보아하니 시골의 한 소녀인 듯 하다. 철학이 이렇게 가난한 사람 속에서 구현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작품의 제목은 '프란시스코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의 '칸초니에레(The Canzoniere)'라는 시에서 따온 문장이다. 다음은 그 시의 일부이다.


7. ‘La gola e ’l sonno et l’otïose piume’

Greed and sleep and slothful beds
have banished every virtue from the world,
so that, overcome by habit,
our nature has almost lost its way.

And all the benign lights of heaven,
that inform human life, are so spent,
that he who wishes to bring down a stream
from Helicon is pointed out as a wonder.

Such desire for laurel, and for myrtle?
‘Poor and naked goes philosophy’,
say the crowd intent on base profit.

You’ll have poor company on that other road:
So much the more I beg you, gentle spirit,
not to turn from your great undertaking.

식욕과 졸음, 태만함의 깃털 베개
모든 덕행을 세상에서 몰아내니,
습관에 굴복한 우리네 본성은
제 갈 길을 잃어버렸네.

헬리콘에서 물줄기를 끌어오려 했던 이
훌륭하다 일컬어지던 우리네 삶을,
일깨워 주는
천상의 빛조차 스러졌다네.

무엇이 월계수의 열망이며, 은매화의 열망인가?
가난하고 벌거벗은 채 가는 철학이여,
비루한 돈벌이에만 급급한 군중은 말 삼는다네.

그대, 달리 어디서도 친구를 얻지 못하리니.
청컨대 숭고한 영혼이여,
부디 그대의 고귀한 임무를 저버리지 마소서.



예술의 전통보다는 개인의 해방을 향해



회화에는 규칙이 없다.
각자 자기 정신의 경향에 따라
표현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고야는 과거의 신조와는 사뭇 다른 세 가지를 고집하였다. 첫째, 고야는 형태의 유사함이 아닌 그것을 생산해내는 행위의 유사함을 열망하며 모방이라는 신조를 거부하였다. 둘째, 학문들이 만들어 내는 지식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특수한 지식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셋째, 모든 예술가는 공통된 규범에서 벗어낙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일반화된 임의성이 아니라 각자의 개성에 주의를 기울이는 교육을 추구한 고야의 예술 이론이자 신조는 그 당시에 매우 진보적이었으리라. 그는 다가올 시대의 예술적 변동을 예고하듯 당시의 시대정신과 일치하지 않거나 혁명적인 것이 많은 만큼 창작의 자유를 우선시하였으며 19~20세기에 구현될 예술적 이상의 다원화를 예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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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덕43: 이성의 잠이 괴물을 깨운다



이성의 잠이 괴물을 깨운다


사람이 가장 이성적이지 않게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바로 이성을 붙잡지 못하고 있고 본능이 깨어난 잠이 든 뒤가 아닐까. 우리는 그 시간을 우리는 꿈이라고 부른다.

위의 변덕43으로 번호가 매겨진 <이성의 잠이 괴물을 깨운다>로 고야의 대표적인 판화집인 『변덕들』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책상에서 잠든 남자를 보여주는데, 그의 뒤편으로는 부엉이가 보이고 어두운 배경 아래 날아드는 박쥐도 보인다. 그리고 커다란 고양이에게 둘러싸여 있다. 고야 자신으로 보이는 남성 주변에는 모두 이성이 잠든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 동물들로 배치되어 있다.

고야는 이성과 상상, 깊이 생각한 것과 무의식을 공조시켰다. 그에게는 두 가지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인식의 차원에서, 바로 이러한 결합이 여타의 학문과는 다른 예술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고야는 관람자이자 독자를 모호함과 불분명함 속에 두기를 더 좋아했다. 아마도 자기 힘으로, 그럼으로써 자기 안에서의 의미를 찾게 하기 위해서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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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참화36)



전쟁의 참화들


1790년대 초 청력의 상실,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단두대 처형 소식, 알바 공작부인과의 실연 등 연이은 사건은 고야의 예술세계에도 변화를 몰고 왔다. 특히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촉발된 유럽의 정치적 사건들은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스페인을 점령한 나폴레옹 군이 계몽주의를 통치 수단으로 악용하자, 계몽주의 사상을 지지했던 진보주의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계몽주의 사상이 침략과 억압과 학살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된 고야는 계몽주의 사상이 폭력을 막기에는 충분하지 않았고, 오히려 반대로 계몽주의 사상의 이름으로 나폴레옹 군대는 자행했다. 이성의 잠만 괴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님이 드러난 것이다.

판화집  『변덕들』 이후 처음 등장하는 판화집 『전쟁의 참화들』은 고야가 인간 본성의 어두운 그늘, 폭력성과 광기를 꿰뚫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전쟁의 화려한 위용과 용기, 힘 등 영웅적 장면이 아닌 추잡한 학살을 담아낸다. 더불어 이러한 그림들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요소 중 하나는 행위의 폭력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심함, 나아가 냉점함에 있다. 작품 <여기서도 마찬가지다>를 보면 교수형 당한 사람 옆,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의 표정과 태도는 비인간적이고 비정상적인 느낌을 준다.



계몽주의의 그늘에서



고야는 관념론자도 예언자도 아니며
우리에게 교훈을 주려고 하지도,
설교자나 교육자를 자처하지도 않는다.

그저 한명의 예술가로서 그는
'강요'하려 하지 않으며
'제시'하는 데 만족한다.


이 책의 마지막 '고야의 유산'이라는 목차에서 위와 같은 문장이 인상 깊었다. 이 책의 이름이 조금은 이해가 가는 것 같기도 했다. 고야의 성찰은 계몽주의 사상에 반하지 않았지만 그것으로부터 생겨난 것도 아니다. 그저 그 그늘 아래에서 세계의 무질서를 관찰한 관찰자일 뿐이지 않을까.


[장혜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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